31. 신해품
31. 신해품
  • 법성 스님
  • 승인 2012.09.0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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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을 통해 이어져 내려오는 효의 정신

신해품은 범어로 adhimukti parivartah.  인데 adhimukti는 믿음을 뜻하고, parivartah. 는 품을 뜻한다. 곧 ‘신해품’으로 한역되었다. 이 품에서는 수보리, 마하가전연, 마하가섭, 마하목건련 등 4대 성문이 사리불의 수기 받는 모습과 화택의 비유를 듣고 나서 자신들의 수행이 작은 수레(양거)와 같다고 느끼고 반성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보살도(일불승)를 닦아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깨닫게 된다. 궁자(窮子)의 비유를 들어 부처님께 자신들이 깨달아서 알게 된 내용을 밝히고 있다. 특히 장자궁자의 비유는 부자 아버지가 잃어버린 가난한 아들을 만나 그에게 천천히 단계를 밟아서 자신의 전 재산을 상속시킨다는 내용으로 신해품에 나오는 유명한 비유이다.


이 품에 나오는 4대 성문들 중에는 마하목건련이 있는데, 즉 목련존자다. 전국에서 백중기도가 한창 진행되고 음력 7월15일이면 백중법회를 성대히 거행한다. 전국 선원에서는 3개월의 하안거도 해제하게 된다. 백중의 유례는 이러하다. 목련존자가 열심히 수행해서 큰 신통력을 얻게 된다. 그리고 나서 신통력으로 자신의 어머니가 어디에 있는지를 살핀다. 목련존자의 어머니는 살아생전에 인색하고 행실이 바르지 못하여 죽어서 극심한 지옥고를 당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스님들이 열심히 수행하고 마칠 무렵인 음력 7월15일에 온갖 음식들을 두루 갖춰 훌륭한 스님들께 공양 올리면 그 공덕으로 어머님의 악업이 가벼워지고 마침내 좋은 곳으로 다시 환생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온갖 좋은 음식을 다 갖추어 스님들께 공양 올린다는 의미로 백중(百種)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다.


7월 백중은 승공(僧供)의 의미와 영가 천도 및 효의 실천, 그리고 하안거 해제 의미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목련존자가 지극한 효성으로 훌륭한 수행자들에게 공양 올려 어머니를 천도하였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와 아들 태종 이방원의 일화는 아버지와 자식 간의 극심한 불화를 보여준다.


“…서기 1398년 5월 병진일에 태조 이성계가 용산강에 행차하였다. 대장경판을 강화 선원사에서 옮겨왔다. 무오일에 비가 오자 대장과 대부 2천명으로 하여금 대장경판을 지천사로 옮기게 하였다. 그 해 가을, 무안군 방번이 죽으니, 그 때 나이 열여덟 살이었다. 임금이 방번과 방석의 죽음을 애도하여 여러 차례 사원에 행차하여 명복을 빌었다. 경순공주가 흥안군 이제에게 시집갔는데, 방석의 난에 이제 또한 죽었다. 임금이 친히 나아가 공주의 머리를 직접 깎으면서 흐느끼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왕자의 난을 계기로 태조 이성계는 함흥으로 피하였다. 아들 태종 이방원에 대한 엄청난 분노와 상심에 휩싸여 함흥에 머무르며, 이방원이 보낸 사신들이 멀리서 보이기만 하면 화살로 쏘아 죽였다. 여기서 함흥차사라는 속언이 생겨나게 된다. 이처럼 조선 왕조 건국 직후 극에 달했던 아버지와 아들의 불화를 화해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왕사인 무학 대사가 맡게 된다.


무학 대사가 함흥으로 찾아오자, 태조는 버럭 화를 내며 “대사께서는 어찌 이방원을 위해서 유세를 하는 것입니까?”하고 따져 묻는다. 그러자 무학은 웃으면서 “전하는 어찌 저를 믿지 못하십니까? 저와 전하가 서로 알고 지낸 세월이 도대체 몇 년 입니까? 오늘은 특히 전하를 위하여 한 번 위로할 따름입니다.”라며 수십일 동안 태조와 한 집에서 머물며 서로의 마음을 소통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깊은 밤 무학 대사가 태조를 설득하게 된다.


“태종은 진실로 죄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하가 사랑하는 아들들은 이미 다 죽었습니다. 다만 이 사람만(이방원) 남았는데, 만약 그를 끊어 버린다면 전하가 평생토록 어렵게 이룬 대업을 장차 누구에게 위탁하시렵니까? 남에게 부탁하기보다는 내 혈속에게 주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원하옵건대, 세 번 거듭 생각하시옵소서.”

 

▲법성 스님

무학 대사의 이 말에 태조 이성계는 드디어 한양으로 환궁을 결정하게 된다. 신해품에 나오는 목련존자의 효도, 즉 백중의 유래와 태조 이성계, 태종 이방원의 이야기에서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실천해야할 효도는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효도는 단순한 유교적 훈시가 아니다. 불교에서도 효는 천륜이며 지극한 수행이야말로 진정한 효도라 여겨지고 있다. 백중이라는 세시풍습을 통해 효의 실천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법성 스님  법화경 연구원장 freewheely@naver.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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