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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하]

“책의 지식에 중독되지 말라”

▲출판사에 소로의 ‘숲속의 생’ 한국어판 출간을 청하기도 했다.

서울 봉은사 다래헌을 떠나 불일암으로 내려온 법정은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책 읽고 글 쓰고 ‘화엄경’을 번역했다. 창 옆에는 ‘선가귀감’ 중 자신이 직접 고른 “출가하여 중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편하고 한가함을 구해서가 아니며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고 한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해서도 아니다. 번뇌를 끊어 생사를 면하려는 것이고, 부처님의 지혜를 이어 끝없는 중생을 건지기 위해서이다”는 글귀가 적힌 가리개를 세워놓고 항상 스스로를 경책했다.


비 오는 어느 날인가는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소설이나 읽는 것이 제격이다 싶어 다락에 더듬더듬 올라가 니코스 카잔차스키의 ‘희랍인 조르바’를 뽑아들기도 했다. 즐겨 읽는 책 중 하나였다. 수많은 책을 탐독했던 법정은 특히 생명파 시인들의 시를 좋아했고,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도 주변에 권할 만큼 애독했다. 그리고 ‘홀로 있어야 전체가 된다’며 홀로 살았던 자신처럼, 월든 호숫가에서 명상하면 살았던 소로의 문명비판적 삶이 투영된 ‘숲속의 생(활)’은 읽은 후 출판사에 한국어판 출간을 간곡히 요청할 정도로 특별하게 아꼈다.


불일암은 법정이 홀로 살면서 수많은 세상 사람들이 저마다의 삶 속 고통을 호소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법정은 그들을 일러 편안히 안주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당시 불일암에서의 생활은 좌선, 책 읽고 글쓰기가 전부였고 이따금 연장을 꺼내 무엇인가를 만들곤 했다. 법정 입적 후 삶과 사상이 세간에 회자되면서 세상 사람들이 한번쯤 앉아보기를 원하는 일명 ‘빠삐용 의자’도 그때 직접 만들었다. 불임암에서의 생활이 번다해지자 또다시 걸망을 메고 강원도로 훌쩍 떠나갔다. 이때 역시 오두막에서 홀로 지내면서도 법보전 장경각 주련 ‘부처님 계신 곳이 어디인가. 지금 그대가 서 있는 그 자리!’ 만큼은 마음에 새기고 살았다.


그러나 그의 향기는 어쩌다 한 번씩 하는 법문과 글을 통해 늘 세간에 전해졌다. 하지만 2009년, 천식에서 시작된 폐질환이 더 깊어져 더 이상 법문도 어려워졌다. 그리고 마지막 봄 법문에서 “부처님은 자신에게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라고 했습니다. 자귀의 법귀의입니다. 나머지는 다 허상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참 면목입니다. 봄날은 갑니다. 덧없이 갑니다. 거룩한 침묵을 통해서 듣기 바랍니다”라고 봄이 어떻게 오는지 각자 봄소식을 들어보라는 화두를 던지고는 법상에서 내려왔다.


지병이 깊어지면서 제주도로 떠날 때 걸망에는 세면도구와 지갑이 전부였다. 지갑에는 운전면허증, 고속도로카드, 종이쪽에 적힌 전화번호, 그리고 제주도 가는 경비 정도의 지폐가 있었다. 또 하나는 행동지침을 적은 초록빛 스티커였다. 그 행동지침은 과속문화에서 탈피, 아낌없이 나누기, 보다 따뜻하고 친절하기, 놓아두고 가기였다. 무소유의 삶 그대로였다.


병원 침상에 누운 법정은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상좌들을 불렀다. “관을 짜지 말라, 승복이면 족하니 수의를 입히지 말라, 장례의식을 치르지 말고 간소하게 다비하라”고 했다. 그리고 2010년 3월11일 오후 1시51분, 길상사 행지실에서 일곱 상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입적했다. 법정은 동서양 고전을 사숙하면서 팔만대장경의 대의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내 부처님 말씀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한 선지식이었다. 또한 하루 한두 시간 글을 읽고 쓰는 일 외에는 오로지 정진에 몰두한 수행자였다. 그리고 수많은 책을 읽고 세인들의 감성을 되돌리는 책을 썼던 법정은 이렇게 말했다. “책의 지식에 중독되지 말라.”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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