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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밝히려 도솔천서 촛불되어 오신 ‘님’

기자명 법보신문
  • 집중취재
  • 입력 2012.09.12 10:53
  • 수정 2012.09.12 12:06
  • 댓글 0

김택근의 달빛 걸음으로 산사에 들다-관촉사

반야산 관촉사는…
울음 터뜨리며 태어난 바위
38년 대역사로 미륵불 조성
미간서 밝은 빛 뿜어 ‘관촉’
황산벌 바라보며 중생 위로

 

 

▲천년 세월 변함없이 한 자리를 지키고 계신 충남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 투박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의 미륵부처님은 백제와 신라의 처철했던 전투가 벌어졌던 황산벌이 내려 보이는 언덕에서 오늘도 수많은 중생들의 소원을 묵묵히 굽어보고 계신다. 

 

 

여인이 봄날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꺾고 있었다. 갑자기 갓난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를 나는 곳을 찾아가니 아기는 보이지 않고 큰 바위가 막 땅에서 솟아올랐다. 바위가 태어나며 울고 있었던 것이다. 여인이 기이한 광경을 마을에 내려와 퍼뜨렸고, 결국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임금이 말했다.


“불상을 만들어 세우라는 하늘의 계시임이 분명하다.”


광종 20년(969년)의 일이었다. 광종은 고승 혜명을 불러 불상을 만들어 세우라고 명했다. 혜명대사는 석공 백 여 명을 모아 부처를 만들었다. 38년이 걸린 대역사였다. 이윽고 갓난바위는 미륵보살입상으로 환생했다. 그동안 임금이 바뀌어 목종 9년(1006년) 은진미륵(은진은 옛 지명에서 유래)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높이 18.1미터, 몸통 둘레 11미터, 귀의 길이만 3.3미터의 거대한 불상이었다. 도솔천에 살며 훗날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불 미륵보살, 그 미륵불상이 세상에 나타났다. 그러자 미간의 옥호(玉毫)에서 밝은 빛이 나왔다. 그 빛이 누리를 비쳤다. 송나라 명승 지안 스님이 그 빛을 보았다. 여인이 울음소리를 듣고 바위를 찾았듯이, 스님은 빛을 보고 불상을 찾았다. 지안스님이 찬했다.

“빛나는 미륵불, 마치 촛불을 보는 것 같구려.”


그래서 미륵불상 아래 지은 절 이름을 관촉(灌燭)이라 했다. 충남 논산시 관촉동에 있는 은진미륵(보물 제218호)과 관촉사(주지 화봉스님)에 얽힌 이야기이다.


창건설화는 이렇듯 신비롭지만 거대한 미륵불상을 조성한 것은 정치적인 ‘거대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미륵불이 백제와 신라의 처절한 전장이었던 황산벌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역사의 피비린내는 가시고 이제 부처님의 거대한 미소가 남아 있다. 한 자리에서 정확하게 1006년 동안 서 있었다. 계절이 4000번 바뀌는 동안 인간의 절을 얼마나 많이 받았을 것인가. 은진미륵을 보지 않았어도 언젠가는 봐야할 부처였다. 민초들은 소원 하나씩 지고 와서 부처님 앞에 풀어 놓았다. 팔도 사람들이 모여들어 근처 밥집에는 사투리가 가득했을 것이다.


은진미륵은 얼굴이 지나치게 커서 4등신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얼핏 보면 조금 촌스럽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위엄이 느껴진다.


‘고려시대 장인들은 돌부처에 어떤 권위와 자비를 새겼을까.’


그런 생각으로 자세히 올려다보면 문득 거칠지만 유려하고 투박하지만 범접하기 어려운 기품이 서려있다. 저승에서도 논산 사는 사람이 오면 은진미륵의 생김새를 물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가보지 않아도 ‘아는 체’ 해야 하는 논산의 은진미륵, 지금도 당연히 논산 제1경에 꼽히는 보물이다.


관촉사는 상대적으로 아담하다. 불상의 거대함이 손상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했을 것이다. 최근에 이뤄진 불사들도 단정했다. 경내에는 석등(보물 제232호), 사리탑, 관음전, 석조 해탈문 등이 있다. 특히 석등은 거대 불상을 비춰야 하기에 그 자태가 장엄하다.


1000년불이니 그 안에 품은 얘기가 얼마나 많겠는가. 또 근처의 풍경은 얼마나 바뀌었을 것인가. 일제 강점기에 찍은 사진을 보면 은진미륵 주변에 달랑 법당 하나만 남아 있었다. 그래도 은진미륵은 외롭지 않고 오히려 당당해 보였다. 거대한 불상은 반야산과 그 일대의 산과 들을 모두 경내로 삼아버리기 때문이다.


은진미륵 앞으로 별별 사연을 이고지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것이다. 1000년 동안의 세월이지만 인간의 번뇌는 변하지 않았다. 걱정과 근심은 옛 것과 새 것이 없음이니 그 때의 사람이 지금도 찾아오고 있음일 것이다. 지금도 미륵불은 우뚝하다. 간절히 기도하면 소원 하나씩은 꼭 들어준다는 은진미륵, 지금도 경향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소원을 빌고 있다.

 

 

▲새벽 기운 맑은 도량에서 이상금 보살은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춘다. 근심과 걱정도 그 절 한자락 아래에 내려 놓는다.

 

 

이상금 보살과 관촉사는…
삯바느질 가난한 생활에
병든 몸으로 찾아온 도량
채식하며 도량 청소 울력
번뇌 지우니 건강도 회복


논산에서 태어나 평생을 논산에서 살아온 이상금 보살(84)도 미륵불상 가피를 받았다. 이 보살은 소학교 4학년 때 소풍을 가서 처음 은진미륵불상을 보았다. 그러나 그 때는 부처가 무척 크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어릴 적 본 은진미륵이 결국 그녀를 또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어쩌면 불상이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들과 다름없는 평범한 삶을 살던 그녀는 결혼과 함께 불행이 찾아들었다. 철석같이 믿었던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이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집을 나와 버렸다. 그리고 혼자서 살았다. 그러나 혼자 사는데도 제 몸 하나 건사하기가 힘들었다. 세상은 참으로 험했다.


그녀에게는 딱 하나 재주가 있었다. 바느질을 잘했다. 그래서 삯바느질로 하루하루 연명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을 얻었다. 병은 그나마 남아 있던 살아보겠다는 의욕을 앗아가버렸다. 그런데 병원에서도 병명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냥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그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참으로 기구한 삶이구나. 그리고 몸은 작은데 왜 이리 걱정은 큰지 모르겠구나.’


그때 불현듯 어릴 때 보았던 은진미륵불이 생각났다. 환갑을 넘긴 62세 때였다. 무조건 미륵불상을 찾아갔다. 부처님 오신 날을 며칠 앞둔 관촉사는 수많은 등불로 무척 고왔다. 이상금 보살도 등 하나를 사서 달았다. 평생 써먹지 않았던 이름 석자가 적힌 연등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마음속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무조건 부처님 곁에 있기로 했다. 관촉사 근처에 겨우 몸 하나 뉠 수 있는 단칸방을 얻었다. 새벽에 일어나 부처님 앞에 엎드렸다. 병 든 몸을 끌고 가려니 힘이 들고 부처님께 절을 하려니 지난 세월이 서럽기만 했다. 문득 올려다보니 부처님 얼굴이 근엄했다. 그때부터 시간만 나면 부처님 앞에 엎드렸다. 이를 주지인 태관스님이 눈 여겨 보았다.


“보살님, 기도도 좋지만 복도 지으십시오.”
“스님 저 같은 하찮은 것이 어떻게 복을 지을 수 있습니까.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 미륵부처님을 기쁘게 해드리면 됩니다.”

 

 

▲“부처님 기쁘게 해 드리는게 복 짓는 일”이라는 태관 스님의 가르침이 이상금 보살에게 새 삶을 열어 주었다.

 


스님의 말을 좇아 그날부터 미륵전 앞에 풀을 뽑고 법당을 청소하고 공양전에서 온갖 궂은 일을 다했다. 그러자 스님은 법보화라는 법명을 지어주었다. 새벽에 일어나 경내에 들어 남몰래 일을 했다. 키 큰 미륵불이 이를 지켜보았다.
이 보살은 모든 고기를 먹지 않기로 맹세했다. 실제로 채식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몸이 아프고 기운이 없었다. 불현듯 명태가 먹고 싶었다. 끝내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명태를 먹고 말았다. 그날 밤 이 보살의 꿈 속에 명태가 나타났다. 크기가 엄청나게 컸다. 집채만한 고기가 덮쳤다. 이 보살은 소스라치게 놀라 깨었다. 그리고 먹은 것을 토하기 시작했다. 이 보살은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것도 어른 고기를 먹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이 보살은 명태를 고기 중의 어른이라고 했다. 그 이유를 묻자 설핏 핀잔을 주었다. 제사상에 올라가고 제물로 쓰이니 어른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했다. 그 후로 부처님과의 약속은 철저하게 지켰다. 하루도 빠짐없이 해탈문을 지나 미륵불상을 찾아갔다. 다른 보살들과 어울려 열심히 일했다. 울력은 점차 이 보살 자신을 깨웠다. 노동의 참맛을 알았다. 일하고 나니 잠이 달았다. 아침이 갈수록 개운했다. 자고 나면 작은 몸뚱이가 천근만근이었는데 어느날부턴지 가뿐했다. 새벽 경내 기운이 맑고 나아가 향기로웠다. 병마가 물러난 것처럼 보였다. 부처님 가피였다. 비로소 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풀하나 뽑으면 걱정하나 뽑히고 법당 청소가 곧 번뇌 청소였다. 또 해탈문을 그토록 많이 들락거렸으니 그것은 또 다른 세심(洗心)이었다. 어느 날 보니 근심과 걱정이 사라져 버렸다. 또 어느 날 보니 근엄했던 부처님의 얼굴이 자애롭게 펴져있었다. 온화하게 웃고 계셨다.


이 보살의 얼굴이 밝아졌다. 부처님이 곁에 있으니 무서울 것이 없다. 요즘은 오히려 죽음이 기다려진다. 이 보살의 마지막 소원은 관촉사가 잘되는 것 하나이다. 절이 자신처럼 못나고 미련한 것들을 거둬줘야 하기 때문이란다. 이 보살의 얼굴에서는 속기가 지워져 있었다. 작은 얼굴에는 큰 기쁨이 그득했다. 경을 읽지 않았어도, 3000배를 하지 않아도, 용맹정진을 하지 않아도 이 보살은 가피를 받고 있었다.


관촉사 그곳에는 오늘도 간절한 소원이 무릎을 꿇고 있다. 크고 위대한 은진미륵은 웃고 계신다. 1000년 동안 그 미소를 제대로 본 사람은 몇이나 될 것인가. 1000년 불상의 가피가 고여 있는 관촉사. 

 

김택근 wtk2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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