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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받는 공양게

공양은 베풀어 기른다는 뜻
음식은 뭇생명 희생의 결과


쌀 한톨에도 천지은혜 스며
그 속에 깃든인연 감사해야

 

식당에 가면 유독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다. 음식을 앞에 놓고 두 손 모아 경건하게 기도하는 사람들. 바로 기독교인들이다. 유난을 떤다며 아니꼽게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도 있지만 자신들이 믿는 신과 가르침에 충실하려는 모습엔 속기(俗氣)를 넘어선 숭고함이 있다. 음식을 앞에 두고 기도하는 전통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교에도 있고 힌두교에도 있다. 신을 믿는 종교는 항상 식사 전에 기도를 한다. 음식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니, 세상을 창조한 신의 은총이 지중할 것이다.


유일신을 믿지 않는 불자들도 식사 전에 기도를 한다. 기도문이라 하지 않고 공양게(供養偈)라 부른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고/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불교에서 식사를 공양이라고 부르니 공양게는 식사 전에 읊는 게송이다. 공양게는 오관게(五觀偈)라고도 한다. 식사를 하기 전에 음식에 담긴 다섯 가지 의미를 관찰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연기적인 세계관과 치열한 수행의 결기가 담겨있다.


하나의 씨앗이 세월을 더해 열매를 맺기까지 온 우주가 힘을 쏟아야 한다. 태양은 자신의 몸을 태워 빛을 내고, 대지는 가진 것을 양분으로 내놓는다. 여기에 농부들의 노동이 더해진다. 그래서 공양게는 한 방울의 물에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으며 한 알의 곡식에 만인의 노고가 담겨 있다는 연기적인 통찰이며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반드시 깨달아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굳건한 서원이기도 하다. 공양은 베풀어(供) 기른다(養)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가 음식을 받는 것은 온 우주와 뭇 중생들로부터 받은 시은(施恩)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되는 타종교의 기도문이 신을 향해 있다면 불교의 기도문은 자신을 향해 있다. 음식은 신의 은총이 아니라 온 우주와 중생이 함께 노력한 결실이며 그 공덕으로 얻게 된 음식은 수행의 양약이며 정진을 위한 격려다. 어찌, 한 톨의 쌀이라도 헛되이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요즘 공양게가 천대받고 있다. 불자라면서 식사 때 공양게를 하는 이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식당에서 공양게라도 할라치면 기독교인으로 오해받기 일쑤다. 공양게는 음식을 먹는 매 순간 내가 불자이며 수행의 길을 걷고 있음을 확인하는 의식이다. 그런데 세상의 시류에 따라 계율의식이 갈수록 엷어지다 보니 공양게에 대한 의식도 가벼워지고 있다. 불자들이 마음은 비우지 않고 계율과 의식들을 자꾸 비우고 있다.


우리는 음식의 풍요 속에 살고 있다. 너무 많이 먹고, 자주 먹고, 많이 버린다. 북쪽동포들은 식량난으로 굶어 죽는데 우리는 늘어나는 살을 주체 못해 난리다. 불자들 또한 탐욕의 물결에 그대로 휩쓸리고 있다.

 

▲김형규 부장
불자라면 공양게를 해야 한다. 음식에 깃든 인연과 공덕을 명상하면 식탐(食貪)의 불은 절로 꺼진다. 그게 아니더라도 불자로서 당당해져야 한다. 공양게는 스스로 불자임을 나타내는 자신감이며 세상에 부처님을 드러내는 환희로운 찬탄이다. 음식을 대할 때마다 합장을 하고 공양게를 해야 한다. 아무리 소박한 밥상이라도 그 속에 깃든 여러 인연들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고마움에 절로 경건해 질 것이다. 

 

김형규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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