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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또 다른 계열의 탑당굴-네모형

진리 상징 스투파 바로 앞 예배 확산

인도 중부 아라비아 해안
쿠다 석굴은 말굽형 탈피
조성 때부터 네모 형태로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아
좁은 방에 스투파 봉안해

탑돌이 예배 의례 불가능

 

미리 예고한 불상의 도입으로 바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전 편에서 말굽형 탑당굴 차이탸에 있던 스투파를 승원굴 독방에 모시게 되면서 석굴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즉 거주 승원굴이 탑당 예배굴화 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승원굴로 스투파가 들어오게 된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예 처음부터 네모반듯한 방에 스투파를 모신 전혀 다른 계열의 탑당굴이 엄연히 존재해 왔음을 알았다.


지금까지 죽 탑당굴 뒤가 둥근 긴 말굽형 평면을 보아왔다. 속에 모신 둥근 스투파 탑돌이 예배를 위해 스투파와 벽 사이의 돌이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네모반듯한 방의 탑당굴은 예배상 중요한 둘 중 하나인 탑돌이 예배는 생략되고 대신 스투파 앞에서 경배하는 의례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1. 석굴에서 내다본 아라비아해.

 


네모형 스투파 석굴을 보려면 인도 중서부 아라비아 해안의 쿠다 석굴로 가면 된다. 뭄바이 남쪽 해안 고대 무역항 일대에 석굴군이 여럿 있다. 신세 많이 진 불교철학에 정통한 김창수씨네 지프차로 중부 대도시 뿌네에서 출발했다. 지도상 거리는 얼마 안 되어 보여 아침에 떠나 가볍게 소풍처럼 저녁에 돌아오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험준하게 가로막은 콘칸 산맥 깊은 계곡과 저수지를 넘어 오솔길에서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저녁 무렵 쿠다 마을에 도착해서도 안내 팻말도 없어 갈림길을 한참 지나쳤다가 어렵사리 묻고 물어서 찾아갔다. 힘들게 언덕을 올라가니 눈앞에 확 트이는 전망, 이미 석양에 물들어 가는 아라비아해가 장관이었다(그림1). 풍광이 마치 강진 다산초당 산위 천일각에서 내려다보는 남해바다 비슷했다.

 

 

▲ 2. 쿠다 15굴 평면.                    ▲ 3. 쿠다 15굴 전면.

 


나지막한 암벽에 여남은 개의 작은 석굴들이 죽 늘어 파져있다. 굴 앞부분 특히 기둥과 벽들이 상당 부분 파괴되어 있었다. 석굴에 들어가니 장식이라고는 거의 없이 그저 소박한 벽면으로서 적막한 가운데 초기 불교 수행자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승원굴도 보아오던 넓은 안마당 둘러싼 독방들로 이루어진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돌침대 독방들이 몇 개 자유롭게 놓여있었다. 아주 특이한 것은 늘 보아오던 거대한 말굽형 차이탸 탑당석굴은 없고 그 대신 승원굴 사이사이에 스투파를 자그마한 네모 방에 모신 소박한 탑당굴 네 개가 있었다. 외관만 봐서는 승원굴인지 탑당굴인지 구분되지 않게 거의 같았다. 먼저 15굴을 보자. 암벽 앞에 전면 네 기둥의(하나는 부러진) 전실 베란다가 있고 안에 네모 굴을 파서 속에 스투파를 모시고 있다(그림2, 그림3). 스투파는 끝에 난간 장식을 새긴 약간 긴 원통 대좌위에 알 모양 불란(佛卵)을 모시고 있는 단순한 형태이다. 베란다 양 날개 끝에 독방을 하나씩 팠다. 속 스투파 방은 좁아서 탑돌이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예배는 굴 앞의 널찍한 마당에서 안에 모신 스투파를 향해 함께 경배하는 의례가 있었을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 네모 탑당굴은 바로 스투파를 모신 사당이다.

 

 

▲ 4. 쿠다 1굴.                              ▲ 5. 평천정 내부 홀의 쿠다 1굴.

 


간단한 15굴에 비해 1굴은 좀 더 격식을 갖추었다. 입구 전실 베란다를 들어가면 속에 스투파를 모신 지성소 사당방을 만들고 그 앞에 넓은 마당의 홀을 파서 만들었다(그림4, 그림5). 안에서부터 배열을 보면 ‘스투파사당+전실+예배홀+베란다전실’의 2중 전실로 되어있다. 바닥은 울퉁불퉁한 돌 그대로다. 작업상 둥근 스투파 원형 곡면에 따라 맞춰 뒷벽을 둥글게 하는 말굽형 벽면이 직각 파내기보다 쉬웠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직각 네모 방을 고집했다. 이는 스투파 탑당굴 형태를 별다르게 취급하지 않고 옆에 죽 이어 있는 거주 승원굴과 같은 모양으로 소박하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지금까지 보아온 다른 말굽형 탑당굴의 높고 웅장한 궁륭천정과 좌우 기둥열 없이 그저 낮고 소박한 평천정에 민 벽면이다.

 

 

▲ 6. 쿠다 6굴 벽면 불상 조각. 왼쪽이 스투파 사당방. 장구형 음각, 남녀 문지기 조각.

 


평면은 1굴과 거의 같지만 6굴은 좀 특별하다. 스투파 사당 앞 넓은 홀 벽면에 불상이 여럿 조각되어있는 것이다. 속의 스투파 사당 지성소 양쪽 문지기로서 카를리 석굴에서 본 대로 거의 벌거벗은 관능적 남녀 쌍쌍이 지키고 있다. 문벽에 불교 석굴 도처에 나타나는 기둥을 나타내는 장구형 음각이 새겨져 있다. 홀 벽에 전법륜인(轉法輪印:법륜돌리는, 일명 說法印) 불상이 셋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다. 제일 바닥 식물에서부터 올라온 굵은 줄기 위의 연꽃 대좌위에 앉아있다. 부처님 좌우에 파리쫓개(拂子)를 어깨에 맨 시종이 옹위하고 있다. 아래에 각종 경건히 경배하는 신자들의 모습이 새겨져있고 하늘에는 좌우 비천(飛天)상이 보좌하고 있는 상당히 구체적 화려한 조각이다.

 

쿠다 석굴은 A.D. 1~2경에 판 것으로 추정하는 비교적 초기 석굴이다. 쿠다 석굴 전체적으로 소승불교로 추정되는 무장식 순수형태인데 이 굴에만 불상이 조각된 것이 이상하였다. 원래 무장식 평벽면이었는데, 필자는 불상이 생기고 난 후대에 나중에 부가하여 새겨 넣었다고 해석하게 되었다. 그 근거로 조각을 잘 보면 원래의 기준 수직 벽면의 뒤로 후퇴하여서 새긴 것이다. 만약 조각을 만들기로 석굴 개창 처음부터 마음먹었다면 벽면보다 튀어나오게 만들었을 것이다. 인도 석굴 전체를 다니며 소승불교 무불상 시대 석굴에다가 후대 불상 시대 대승불교에서 부가하여 조각해 넣은 예를 허다하게 볼 수 있었다.

 

 

▲7. 준나르 레냐드리 15굴 네모 탑당굴.

 


네모방 탑당굴은 쿠다 인근 아라비아해 연안의 석굴 콜, 카라드는 물론 조금 멀리 준나르에까지 분포되어있다(그림7).

 

오늘 얘기를 정리하면 검소한 네모 탑당굴 형식은 탑돌이 의례는 배제된 채 스투파를 모셔놓고 그 앞에서 예배 보는 방식의 사당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전편에서 본 바와 같이 옆에 탑당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승원굴 속에 스투파가 들어와 사당처럼 모셔졌다는 해석은 여기서와 같이 원래 네모 탑당굴 지성소 사당 개념이 그대로 승원굴과 합쳐졌다고 제2의 해석을 할 수 있다.

 

▲이희봉 교수

다음 편에는 예고한 대로 석굴에 불상이 들어오게 된 커다란 변화를 제대로 보기로 하자.


이희봉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hblee@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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