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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늙음·죽음(老死)

기자명 법보신문

고통으로 뒤엉킨 인간 실존의 대명사

늙음·죽음이란 무엇인가. 무명으로부터 시작되는 십이연기의 연쇄적 과정에서 마지막 항목에 해당한다. 늙음·죽음은 태어남(生)을 조건으로 발생하며 생명을 지닌 존재라면 예외 없이 맞이하는 보편적 괴로움이다. 이것이 가져오는 심리적 중압감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따라서 늙음·죽음은 슬픔·비탄·괴로움·불쾌·번민 따위의 수식어와 함께 묘사되곤 한다. 늙음·죽음은 괴로움으로 뒤엉킨 인간의 실존을 대변한다. 십이연기의 가르침이 의도하는 궁극의 목적은 바로 이러한 상태를 극복하는 데 있다.


경전에 나타나는 십이연기의 정형구는 다음의 형식을 취한다.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지음(行)이 있고, 지음을 조건으로 의식(識)이 있고, 의식을 조건으로 정신·물질현상(名色)이 있고, 정신·물질현상을 조건으로 여섯 영역(六入)이 있고, 여섯 영역을 조건으로 접촉(觸)이 있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受)이 있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愛)가 있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取)이 있고, 집착을 조건으로 있음(有)이 있고, 있음을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있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老死), 슬픔·비탄·괴로움·불쾌·번민 등이 있다(SN. II. 2).”


위의 정형구는 늙음·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무명으로부터 출발한다. 또한 무명에 대해 꿰뚫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선언적으로 제시되는 방식을 취한다. 따라서 무명의 교리를 미리 알지 못하면 이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순서는 무명 즉 ‘진리에 대해 모르는 상태’가 괴로움의 근본 원인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해준다. 나아가 무명을 제거하면 괴로움을 소멸시킬 수 있다는 교훈을 부각시킨다(SN. II. 4). 따라서 괴로움을 없애기 위한 처방으로서 십이연기의 취지를 밝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십이연기를 다루는 대부분의 경전은 위의 정형구를 먼저 제시한다. 그러나 각각의 지분들에 대한 구체적인 해설로 옮겨가면 맨 마지막의 늙음·죽음부터 다룬다. 이것은 십이연기에 대한 세부적 이해가 현실의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됨을 의미한다. 갖가지 괴로움에 노출되어 하루하루 불안하게 연명해 나가는 바로 그러한 상태가 십이연기를 깨닫는 첫 관문이 된다. 슬픔·비탄·괴로움·불쾌·번민으로 가득 찬 현실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십이연기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시도될 수 있다.


경전에서는 늙음·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그렇고 그런 중생들의, 그렇고 그런 중생들의 무리에서의 늙음, 노쇠, 이빨빠짐, 머리희어짐, 주름짐, 수명의 감소, 감관의 쇠퇴이다. 이것을 늙음이라고 한다. 또한 그렇고 그런 중생들의, 그렇고 그런 중생들의 무리에서의 사라짐, 사라져감, 파괴됨, 무너짐, 죽음의 신에 의한 죽음, 임종을 맞이함, 경험요소(蘊)의 무너짐, 시체로 놓여짐이다. 이것이 죽음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늙음·죽음이라고 한다(SN. II. 2~3).”

 

▲임승택 교수
위의 내용은 대체로 생리적 현상에 초점을 맞추어 늙음·죽음을 묘사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 제삼자의 시각으로 접근하면 그냥 무덤덤하게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적용되는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사뭇 다른 무게로 느껴진다. 한 발짝 한 발짝 ‘나’에게 다가오는 늙음·죽음은 결코 후퇴하는 법이 없다. 십이연기는 이렇듯 절박한 ‘나’의 현실에 대한 자각이 전제될 때 비로소 ‘나’ 자신을 위한 가르침이 될 수 있다.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 sati@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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