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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지옥 헤매며 떠난 자식 놓지 못한 보살님

기자명 능행 스님

매미가 떠난 숲속은 고요하다. 들판의 나락이 하나 둘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계절의 변화가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텃밭에 심은 고추가 발갛게 익어가던 어제 오후, 딸을 먼저 떠나보낸 보살님이 찾아왔다. 악성 종양으로 6년을 투병하던 연희는 2년 전, 16세의 나이로 가족 곁을 떠났다. 보살님은 지치고 메마른 얼굴로 언양 자재병원 현장에 나타났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그 모습에 내 마음도 함께 무너질 듯 내려앉았다.


“아침에 딸아이를 묻은 자리에 갔지만 가슴이 먹먹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49재를 치른 절에도 가봤지만 서글프긴 마찬가지였고요. 우리 연희 떠나기 전에 스님께서 임종기도 해주셨잖아요. 스님 보려고 이렇게 왔어요.”


보살님은 마르지 않는 눈물에 흠뻑 젖은 솜뭉치 같은 몸으로 부산에서 언양까지 찾아왔다. 가슴에 묻어둔 아픔들을 쏟아내는 어깨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문득 연희를 처음 만나던 순간이 생각났다.


2년 전 어느 날, 임상사목과정(CPE)을 함께 공부했던 수녀님이 부탁이 있다며 찾아왔다. 불자가족이 있는데 아이 임종이 가까워지고 있고 그 가족들은 깊은 절망 속에 있다고 했다. 곧장 달려간 병원에서 연희를 만날 수 있었다. 연희는 이미 10살에 악성 종양으로 두 번씩이나 수술을 한 상태였다. 입·퇴원이 반복된 6년 세월 동안 보살님은 아이를 극진히 보살폈다. 생계비와 병원비는 남편이 작은 회사를 다니며 버는 돈으로 충당했다. 하루가 다르게 몸과 마음이 약해지는 딸에게 부부는 언제나 든든한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죽어가는 자식을 지켜봐야 하는 부부 심정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죽어서야 끝이 날 것 같은 고통의 무게가 가족을 짓눌렀다. 아이와 함께 삶을 끝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마다 옥죄어오는 죄책감으로 부부는 더욱 힘들어했다. 아이가 웃는 순간에는 극락에 있다가 아이가 열이 나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삶을 6년간 살아냈다. 아이가 죽음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던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지도 못했다고 한다. 보살님은 지금에서야 생각하니 그것이 가슴을 너무 아프게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불자였지만 필요할 때 사찰을 찾아 절을 하고 마음에 평안을 찾던 것이 다였다는 보살님. 그래서 딸이 아플 때 어느 스님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는 보살님은 병원에서 사목을 하는 수녀님의 보살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수녀님은 아이와 함께 죽고 싶어 했던 보살님의 마음을 다잡아주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인 병실, 그 적막한 공간에서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는 것은 너무나도 허기지고 외로운 일이었다. 눈앞에서 자식이 죽어가고 있기에 따뜻한 밥 한 그릇 허리 펴고 먹을 수 없는 숨 막히는 시간이 지나갔다. 점점 앙상해지는 딸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는 보살님을 보며 내 마음은 더욱 답답해졌다.


‘잘 가거라. 엄마는 널 많이 사랑한다’. 보살님은 마지막 순간에 꼭 이 말을 딸에게 속삭여 주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하지만 평소 병실을 떠날 수 없기에 밥 대신 물로 배를 채워야 했고 기력을 모두 쇠진해버린 보살님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딸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것이 너무 가슴 아프고, 저리고, 슬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보살님은 무너져 내릴 듯 눈물을 쏟아냈다.

 

▲능행 스님

자식이 죽어간다는 것은 부모에게는 무간지옥이다. 그 고통의 무게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픈 아이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부모의 고통 역시 깊어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불치의 질병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채 살아가야 한다. 죽어가는 자식을 안고 6년 세월 고통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렸고 지금까지 아이를 찾고 있는 보살님을 부처님께서 자애와 연민으로 보살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능행 스님 정토마을 이사장 jungtoh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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