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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본정, 한 곡 뽑다

기자명 법보신문

我 있으면 아무리 수행해도 道 이해 못해

본정선사, 황제 앞서 한곡 뽑아
아집에 갇힌 승려·대신들 경책

 

도, 복잡하고 거창히 설명말고
강남스타일 처럼 쉽게 전해야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전세계인들이 그 음률과 율동에 열광하는 것을 보면 역시 음악의 힘은 대단하다. 대중의 마음을 뒤흔드는 매체 가운데 음악보다 폭발적인 파급력을 가진 수단은 아마 없지 싶다. 그래서일까, 종교의 영역에서도 음악은 대중의 공감을 이끄는 주요한 포교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불교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경전에는 수많은 게송(偈頌)들이 등장한다. 게송은 ga- tha- 의 번역어로 곧 노래라는 뜻이니, 불교집안 최고의 명가수는 역시 부처님이셨다고 하겠다. 그리고 대승경전에서는 수많은 보살들이 끝없는 노래로 삼보를 찬탄하고 육바라밀을 권유하고 있으니, 보살(菩薩)들 역시 그 가맥(歌脈)의 전승자들이라 하겠다. 선종(禪宗)도 마찬가지다. 동토 초조이신 달마대사부터 육조 혜능대사에 이르기까지 그 주요한 가르침이 게송으로 요약되어 전파되었고, 그 후로도 영가 현각·동산 양개·용아 거둔 등 수많은 선사들이 게(偈)·송(頌)·가(歌)·잠(箴) 등의 형태로 노래를 불렀다.


아름답고 인상적인 그들의 노래는 쉽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대중의 마음을 뒤흔들어 쉽게 동의를 이끌어내는 효과를 발휘하였다. 사공산(司空山) 본정(本淨)선사 역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명가수였다. 황제의 안방에서 멋들어지게 한 곡 뽑아 인터넷과 TV가 없던 그 옛날에 온 당나라를 들썩이게 만들었으니, 작금의 싸이와 비교해도 그 인기가 결코 못하진 않았을 것이다.


스님은 강주(絳州) 출신으로 성은 장(張)씨이다.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조계에서 육조대사의 수기(授記)를 받았고, 사공산(司空山) 무상사(無相寺)에 승적을 두고 조용히 늙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당나라 천보(天寶) 3년(744)에 현종(玄宗)이 중사(中使)인 양광정(楊光庭)을 산으로 보내 상춘등(常春藤)을 캐오게 한 일이 있었다. 양광정은 지나는 길에 무상사를 들렀다가 스님을 뵙고 큰 감명을 받았다. 대궐로 돌아온 양광정은 산에서 만난 도인 이야기를 자세히 아뢰었고, 황제는 그 자리에서 선사를 불러들이라는 칙령을 내렸다.


그 해 12월 13일에 서울에 도착한 스님은 백련사(白蓮寺)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정월 대보름, 황제는 서울에 머물고 있던 선종과 교종의 명승들을 모두 내도량(內道場)으로 초청한 자리에서 본정선사에게 설법을 청하였다. 듣도 보도 못하던 어수룩한 시골스님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황제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으니, 잘나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던 서울 스님들이 가만히 둘 리 없다. 법상에 오르자마자 원(遠)선사라는 이가 따지듯 큰 소리로 스님에게 말했다.


“황제 앞에서 종지를 밝히는 자리니 곧바로 묻고 곧바로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잡다한 말들을 늘어놓을 생각은 마십시오. 선사는 무엇을 도(道)로 여기고 있습니까?”


스님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무심(無心)이 도입니다.”


원 선사가 기다렸다는 듯 되물었다. “도는 마음을 의지하여 있는 것입니다. 어찌 무심을 도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도는 본래 이름이 없으니, 마음이 도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만약 마음이라 부를만한 것이 있다면 도도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을 궁구해보면 그 실체가 없는데 도가 무엇을 의지해 성립할 수 있겠습니까? 두 가지 모두 허망하니, 모조리 거짓 이름일 뿐입니다.”


원 선사의 깐깐한 추궁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리 묻고 저리 따져도 막힘없이 척척 대답하자 심기가 꽤나 불편해졌다. 해서 외모를 들먹거리며 은근히 비아냥거렸다.


“선사는 몸집은 쪼끄마한데 이런 도리까지 알고 있었군요.”


본정선사는 키도 작고, 얼굴도 못생기고, 촌구석에서만 살아 에둘러 웃고 넘기는 일에 미숙했나 보다. 스님은 또렷한 눈빛으로 상대를 응시하며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했다.


“대덕께서는 이 산승(山僧)의 모습만 보고 산승의 모습 없음은 보지 못하는구려. ‘금강경’에서 ‘존재하는 모든 모습은 다 허망하니, 만약 모든 모습이 모습 아닌 줄을 보면 즉시 여래를 보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겉모습을 진실이라 여긴다면 겁이 다한다 해도 도를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대학생에게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거론했으니, 잘 생기고 똑똑하고 말 잘하는 서울스님이 그냥 넘길 리 없다. ‘금강경’ 정도는 잠꼬대로도 외우던 원 선사는 “옳거니, 촌놈이 얼마나 아나 한번 보자” 싶어 짐짓 진중한 표정으로 청하였다. “모습이 버젓이 있는데 왜 모습이 없다고 말씀하셨는지 선사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허나 병들은 시늉을 하면서 발톱을 감추고 반격의 틈을 노리는 그 속내를 본정 스님이 모를 리 없다. 아집(我執)에 사로잡혀 승부와 우열에만 눈길이 쏠린 원 선사에게 스님은 다시 초등학생의 눈빛으로 호소하였다.

“‘유마경’에서 ‘4대(大)에 주재자는 없다. 몸을 나[我]라고 여기거나 나의 것[我所]이라 여기는 견해가 없어야 도와 상응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대덕께서 만일 4대에 주재자가 있다고 여기면 이는 ‘내[我]’가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나라는 소견이 있으면 겁이 다하도록 수행해도 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초등학생에게 “담배꽁초 함부로 버리지 마세요”라는 지적을 받은 어른처럼, 당황스럽고 또 부끄러웠을 게다. 하지만 낫살이나 먹었다는 자존심에 은근슬쩍 피해버리듯, 원 선사 역시 본정 스님의 충고에 미적거리며 자리를 피하려 들었다. 그러자 본정 스님이 그 뒤통수에 대고 멋들어지게 한 곡 뽑았다.


4대가 엉긴 이 몸/ 주인은 없어라/ 흐르는 저 강물처럼/ 굽이지건 내쳐 달리건/ 가리지 않으면/ 꽃밭도 좋을 것 없고/ 똥밭도 싫지 않은데/ 막히거나 뚫린다고/ 울고 웃을 일 있을까/ 흐르는 저 강물처럼/ 무심할 수만 있다면/ 울퉁불퉁 세상만사/ 뭐가 걱정일까.


도(道), 붓다의 평안으로 가는 길, 꼭 복잡하고 거창하게 설명해야 할까? “옵,옵,옵 오빤 강남 스타일”처럼 쉽고 편한말들을 엮어 붓다의 가르침을 노래하는 유행가가 많았으면 좋겠다. 그 깊은 속내까지 다 이해하지 못해도 붓다와 선사들의 평안과 안락에 대중들의 마음이 절로 끌리는 그런 멋들어진 불교노래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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