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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흥천사 주지 정념 스님

‘바람길’ 열어놓듯상대 배려하는 내 마음도 열어야

‘이웃, 눈물 흘리게 말라’
오현스님 일언 각인 실천

 

낙산사 복원불사 여념불구
화재민 160가구 먼저 챙겨

 

 

▲정념 스님은 ‘네 이웃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지 말라’는 신흥사 조실 오현 스님의 일언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촛불 하나가 다른 촛불에게 불을 옮겨 준다고 그 불빛이 사그라지는 건 아니다./ 벌들이 꽃에 앉아 꿀을 따간다고 그 꽃이 시들어 가는 건 아니다.’


흥천사를 오르는 길 내내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아마도 그동안 흥천사가 가졌던 내력 때문일 것이다. 복마전(伏魔殿) 흥천사.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도 왕실 보호를 받았던 유서 깊은 산사 흥천사는 1962년 조계종 통합종단 출범 이후 제 자리를 잃었다. 사찰의 대표권은 조계종에 있었지만 다른 종단 소속 스님들이 점유하며 관리 감독하는 기형구조에 22세대의 가구까지 불법 입주해 있었다. 이로 인해 사찰기능은 완전히 마비되었고 종단 불사라는 미명 아래 흥천사 소유의 땅이 팔려나가곤 했다. 이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의혹이 일곤 해 흥천사는 복마전이라는 불명예를 떠안아야만 했다. 2011년 11월 정념 스님의 주지 취임 직전까지 흥천사에 걸린 연등이 한, 두개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편치 않음 마음 한 구석에서도 박노해 시인의 ‘나눔의 신비’ 첫 구절이 떠오른 건 정념 스님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념 스님은 흥천사 주지취임 직후 의미 깊은 한마디를 대중에게 전했다. ‘포교와 전법이라는 이유로 반드시 신자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누구나 편하게 쉬었다 갈 수 있는 쉼터와 같은 도량으로 가꾸어 가겠다.’


신선한 충격이다. 강북포교의 전진도량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기대만 가졌던 사부대중에게 내린 일갈이었다. 그렇다. 도량은 불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본질을 꿰뚫고 있기에 흥천사에 거는 기대는 커져만 간다. 화마에 쓸려 간 낙산사도 다시 일으킨 정념 스님 아닌가. 더욱이 정념 스님은 이 불사를 진행하는 동안 화주한 번 안 하고 ‘기왓장 보시’로 이를 완성했다. 그 원력과 동력은 쉽사리 가늠되지 않는다.

 

 

▲흥천사는 ‘나눔’이라는 화두를 풀어가며 새롭게 변모되어 갈 것이다.

 


‘쉼터와 같은 도량’ 을 조성하겠다! 내 불교, 내 절이 아닌 우리 불교, 우리 종교, 우리 산사를 꿈꾸고 있음이다.

 

‘내 것’이 아닌 ‘우리 것’이 되려면 일단 내 것을 내놓아야만 한다. 나눔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정념의 나눔 철학’은 무엇인지 말이다. 그 마음 하나에 낙산사 복원 동력까지 합쳐진다면 그 힘은 태산을 옮겨 놓고도 남을 것이다.


“백담사 조실 오현 스님께서 이르셨습니다. ‘낙산사 복원과 정념은 하나다. 복원하면 살 것이요, 실패하면 죽을 것이다.’ 지금도 생생합니다.” 불길에 타들어가는 낙산사! 당시 심정을 스님은 지금도 말로 표현하지 못 한다. “잿더미 위에 새로운 낙산사를 세우자! 저에겐 이게 화두였습니다. 하지만 먼저 보아야 할 게 있었습니다. 당시 주민 160가구가 불에 탔습니다.”


5만원 상품권을 주민들에게 나눠주었다. 당장 구호품도 도착하지 못했으니 라면이라도 끓이고, 빵이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주민들은 놀랐다. ‘낙산사도 불탔는데 생명부지인 주지 스님이 우리를 먼저 살피시다니....’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네 이웃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지 말라.’ 종교여부를 떠나 그들도 화마에 당한 피해자고, 낙산사 이웃입니다.”


정념 스님은 ‘인재’라며 분노한 주민들을 달랬다. “화만 낸다고 사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 설득했지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약속 했어요. 낙산사는 못 지어도 여러분 집은 지어주겠다.” 정념 스님의 큰 품안과 의지에 주민들도 고집을 꺾었다.


정념 스님은 정부와 관계기관을 맹비난하는 현수막을 철거하고 ‘읍소’의 현수막을 걸었다. ‘대통령님 살려주십시오’, ‘산림청장님 나무를 심어주십시오.’, ‘농림수산부장관님 벼를 심어주십시오.’ 선기의 역설이다. 정부와의 양자 대결로 치달았다면 낙산사는 차치하고 주민들 역시 지금도 보상비 하나 제대로 받지 못했을 것이다. 정념 스님은 투쟁 대신 화해를, 반목 대신 공생을 택한 것이다.


“자비 앞에 적은 없습니다. 혼내야 할 일과, 용서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더욱이 천재지변 앞에서는 냉철해야 합니다.”

 

포교·전법 매진 욕심보다
행복도량·쉼터사찰 지향

 

‘일’은 생계를 위한 수단
나눔은 또 다른 인생설계

 

 

▲김홍도의 ‘낙산사’도에 근거해 복원한 낙산사는 정념 스님의 혜안이 빚어 낸 걸작이다.

 


정념 스님은 대중 앞에 고개를 숙였다. ‘모든 건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이후 낙산사, 주민, 정부는 모두 공생의 묘책을 찾아 실마리를 풀어갔다 ‘기왓장 보시’도 새 활력을 얻었다. 교계 사부대중은 물론이고, 이웃종교인들까지 가세했다. 그러나 정념 스님은 복원불사를 서두르지 않았다. 가람배치부터 전문가들과 상의해 가며 심혈을 기울였다.


“화마를 겪으면서 하나 배운 게 있습니다. 물이 지나는 길이나 사람이 다니는 길도 함부로 막지 않듯이, 바람길도 막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복원불사를 추진하면서 주안점을 둔 것 중 하나가 사람길과 바람길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다. 그 나눔의 마음! 어디서 출발한 것일까? 오현 스님으로부터 ‘네 이웃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 이를 실천한 것 뿐이라 하지만 뭔가 더 있을 듯싶었다. 줄탁동시(啄同時)라 하지 않는가. 언젠가부터 일어난 마음 하나가 있었기에 오현 스님의 일언을 체득했을 것이다.


“오현 스님 말씀은 골수입니다. 지난 여정 속에서 큰 스님이 직접 캐낸 보물입니다. 큰 가르침이니 깊게 새겨들어야 하지요. 새겨들었다면 실천해야 하고요. 그 뿐입니다. 다만, 그 이전에 작은 마음 하나 낸 게 있다면…”


정념 스님은 봉정암 시절에 젖었다. 강원을 졸업한 스님은 100일 기도를 올리자는 마음으로 설악산 오세암에 오른 후 봉정암을 오가며 10년 동안 설악산에 머물렀다. 지금의 봉정암과는 달리 당시 봉정암의 시설이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뜨거운 물에 목욕 한 번 해보는 게 소원’이었을 정도다. 지금도 그렇듯 당시에도 등산객들이 봉정암을 찾았다. 정념 스님은 그들을 위한 ‘불사’하나를 시작했다.


“라면 하나 끓여 드리는 겁니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뜨거운 물 한잔 건넸지요.” 한겨울 칼바람을 헤치고 봉정암에 당도한 사람들에게 그보다 더 좋은 공양은 없을 터였다. “눈빛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얼마큼 고마워하고 행복해 하는지. 타인을 기쁘게 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게 아니구나 싶더군요. 작은 것 하나도 나누면 나와 너가 모두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감지한 듯싶습니다.”


2003년 봉정암 주지로 부임하며 도량정비에 나섰다. 태풍에 훼손된 길을 정비하고 해우소를 비롯한 대중 편의 시설에 만전을 기했다. 도량을 정비하고 나니 불자는 물론 등산객이 기존보다 더 찾았다. 당시만 해도 공양 시간이 지나면 밥 한 그릇 얻을 수 없었다. 정념 스님은 이를 조정했다. 밤 12시부터 새벽 4시를 제외한 시간에도 공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안 등산객들은 설악산 소청에서 아침공양을 위해 단숨에 달려왔다. 처음엔 종무원들이 이를 제지했다고 한다. 이도 개선했다.


“불자가 아니라고 공양 못할 이유가 없지요. 부처님이 상주하시는 도량에 들어선 이상 그냥 돌려보낼 순 없습니다.”


100원을 넣고 커피를 빼는 자판기. 스님 눈에는 이것도 거슬렸다. 오히려 자판기 옆에 100원짜리를 수북이 쌓아놓았다.


그랬다. 낙산사에서도 그랬다. 1년에 10만여 명에게 나눈 그 국수 한 그릇을 공양한 적이 있다. 공양을 한 후 의상대로 향하다 커피자판기를 본 적이 있다. 그 때도 자판기 옆에 100원짜리 동전이 있었다. ‘공짜’와는 다른 개념이다. 옆에 있는 동전을 넣었으니 ‘공짜’는 아니다. 다만 그 동전이 내 주머니에서 나온 게 아니라 사찰에서 내놓았다는 것만 다르다. 여운이 드리워진다. 뭔가 얻은 듯한 푸근함이랄까!


‘나눔의 신비’ 다음 구절이 지나간다. ‘내 미소를 너의 입술에 옮겨준다고 내 기쁨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빛은 나누어 줄수록 더 밝아지고 꽃은 꿀을 내줄수록 결실을 맺어가고 미소는 번질수록 더 아름답다.’

 

 

▲흥천사 주지 취임 직후에도 불사보다 주민들부터 챙겼다.

 


정념 스님의 나눔과 불사 동력이 이해됐다. 둘이 아니었다. ‘나눔’을 통한 자비가 불사의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정념 스님은 언젠가 행정이나, 불사도 놓고 ‘걸림 없이 살고 싶다’고 한다. 그래도 바람이 있다면 한 가지.
“향기는 있었으면 합니다. 누군가 흥천사나 낙산사, 봉정암을 찾았을 때 ‘아, 그 때 그 스님, 그 때 차 한 잔, 그 때 국수 한 그릇, 이런 아련함이 떠올랐으면 합니다. 이것도 욕심입니다. 바람길도 열어놓듯이 제 마음부터 열어야겠지요. 그럼, 다 행복하겠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흥천사에도 정념 스님의 향훈이 배어갈 것이다. 벌써 100여명의 불자가 법회에 동참하고 있지 않은가. 스님은 이 도량에서도 ‘나눔’을 실천하고, 전할 것이다.


“우리는 일을 합니다. 가장 중요한 생계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눈다는 건 인생에 있어서 또 다른 여정입니다. ‘나와 당신의’ 인생을 함께 만들어 가는 또 다른 불사입니다. 내 꿈을 이루고 당신의 꿈을 하나씩 이루어가는 겁니다.”


꿈이란 단순한 ‘이상’이 아닌 ‘행복’을 말하는 것이리라. 산사에서 내려오며 흥천사 앞에 붙었던 ‘복마전’은 떨어져 나갔다. 그 자리에 ‘당신의 꿈이 이루어지는’이 들어섰다. 당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흥천사! 너무도 멋진 불사(佛事)다!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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