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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서방(西方)-5

기자명 법보신문

‘십만억’은 측정할 수 없는 절대 거리
예토와 정토 차이 말하기 위한 장치

원래 서방정토라는 사상과 말은 불교경전에서 유래한 것이다. 하지만, 그 원전을 편집한 인도인들이 사물을 생각하는 방식에는 상상력이 풍부하게 작용하였기 때문에 언제나 사상(思想)에 형태를 수반하였다. 인도인의 환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여실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오히려 구체적이다.


예를 들어, 무변제(無邊際, 가이없음)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무변제에 대한 묘사는 언제나 수적인 표현으로써 한다. 그럼으로써 현실에서 무변제의 세계를 절감하게 된다. 무한을 일정한 숫자로 나타내는 것은 오히려 무한을 유한으로 만드는 감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끝없이 큰 수로 나타내는 것이야말로 무한대를 좀 더 절실하게 느끼게끔 하는 것이다. 다만 무한이라고 말한 것만으로는 추상에 빠져버리기에 통절(痛切)히 경탄케 할 수는 없다.


이런 정도만 서술해 보더라도, 불전에서 왜 정토가 이 세상으로부터 십만억의 국토를 지나서 있는 것처럼 묘사하기에 이르렀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결국 예토와 정토의 사이에는 십만억의 국토가 있다 함으로써, 그 간극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하는 점을 묘사한 것이다.


이는 예토와 정토의 엄청난 차이를 말하고자 한 것이다. 그것은 더러움과 깨끗함의 차이를 묘사한 것이다. 이러한 불국토를 상상해 보면, 예토를 싫어하여 떠나고 정토를 기꺼이 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대비(對比)를 단지 먼 거리로만 이해한다면, 어떻게 그렇게 멀리 떨어진 땅으로 이 범부가 갈 수 있겠는가 라고 한탄할 것이다. 이상하게도 불전의 주석자들 대부분은 그 수적인 거리를 글자 그대로 이해한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늘날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이런 묘사를 하찮게 생각하는 것은 글자의 뜻에 떨어져서 비판하기 때문은 아닐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예토와 정토 사이의 한없는 차이를 ‘십만억’이라는 수로써 나타낸 것은, 오히려 그 거리를 유한한 것으로 삼는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오히려 “무한한 피안에 있다”라고 하는 것이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무한이라는 말에 어느만큼 절실함이 있을 것인가, 박력이 있을 것인가. 그것은 지극히 추상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무한한가를 사람들의 눈앞에 실감시키기 위하여 ‘십만억’이라는, 터무니없는 숫자를 제시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십만억’이라 하여 유한으로 표현한 것이 무한을 더욱 절실하게 상기시키는 힘을 갖는다. 단지 ‘무한’이라 하는 것만으로는 살아있는 환상(幻像)을 수반하지 않는다. 그러한 무한으로는 오히려 눈에 보이는 유한에 뒤쳐지게 된다.

 

▲야나기 무네요시

그러므로 ‘십만억’을 단지 숫자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소박한 이해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예토와 정토의 엄격한 차이를 말하기 위함이지, 단순한 숫자는 아니다. 공간적인 수로 끝나는 수가 십만억의 참된 의미는 아니다. 그 수는 공간을 떠난 세계에서의 수인 것이다. 이를테면 절대적인 거리이지, 측정할 수 있는 수적인 거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불교사연구소 번역



*저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서방’이나 ‘십만억토’ 등 공간 개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상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십만억’ 같은 표현을 이렇게 상징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현대의 젊은이들에게도 정토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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