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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있음(有)

집착을 조건으로 발생
십이연기 지분 가운데
가장 난해한 개념 간주


있음이란 무엇인가. 무명으로부터 시작되는 십이연기의 지분들 가운데 10번째에 해당하는 항목이다. 있음은 태어남(生)의 조건이 되며 또한 자체적으로는 집착(取)을 조건으로 발생한다. 이것에 대한 경전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있음에는 이러한 3가지가 있다. 감각적 욕망에 의한 있음(欲有), 물질현상에 의한 있음(色有), 물질현상을 지니지 않은 있음(無色有)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있음이라고 한다(SN. II. 3).”


초기불교 경전에서 있음에 대한 자세한 해설은 찾아보기 힘들다. 위의 인용문 또한 해설이라기보다는 양상의 나열에 불과하며, 이것만으로는 명확한 의미가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있음은 십이연기의 지분들 가운데 가장 난해한 개념의 하나로 간주되곤 한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태어남의 조건이 된다는 사실은 그 의미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있음이란 태어남을 가능하게 해주는 어떤 무엇이다. 이것은 태어남의 여건 혹은 배경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있음에 대한 이해를 위해 삼계(三界)의 가르침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삼계란 감각적 욕망에 지배되는 세계(欲界), 물질현상에 지배되는 세계(色界), 물질현상을 벗어난 세계(無色界) 등을 가리킨다. 이들 삼계는 다시 지옥계·아귀계·축생계·수라계·인간계·천상계 등의 육도(六道, 六趣) 윤회의 세계로 나뉜다. 이들 중에서 앞의 넷은 괴로움으로 점철된 세계이며 뒤의 둘은 즐거움과 괴로움이 뒤섞인 세계이다. 특히 뒤의 둘 가운데 인간계는 우리와 같은 인간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세계를 가리키며, 천상계는 신(神)들의 영역으로서 물질현상을 벗어난 차원의 세계까지를 포함한다.


삼계는 태어남과 늙음·죽음이 반복되는 장소이다. 인간계에 속한 중생들은 어머니의 모태를 통한 태생(胎生)의 방식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축생계의 중생들은 태생과 난생(卵生) 등으로, 지옥계·아귀계·수라계·천상계에 속한 중생들은 마음으로 홀연히 나타나는 화생(化生)으로 태어난다. 한편 인간계의 일부 수행자들은 현재의 상태 그대로 홀연히 천상계를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언급되기도 한다(DN. I. 215이하). 십이연기의 태어남과 늙음·죽음은 바로 이러한 양상들에 대한 묘사라고 할 수 있다(SN. II. 3). 이러한 삼계는 앞서 언급한 3가지 유형의 있음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있음에 대해 후대의 주석가들은 ‘업의 있음(業有, kammabhava)’ 혹은 ‘재생의 있음(生有, upapattibhava)’으로 풀이한다. 전자는 새로운 몸으로 재생하도록 이끄는 ‘업 지음’에 해당하고, 후자는 그 결과로서 받는 ‘과보로서의 업’을 가리킨다. 이 해석에 따르면 있음이란 내생(來生)의 태어남으로 연결되는 현생(現生)의 업 지음일 수도 있고, 또한 전생(前生)의 업을 조건으로 한 현생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러한 있음이란 돌고 도는 윤회의 굴레에서 죽고 난 이후 새로운 태어남으로 이어지는 씨앗과 열매라고 할 수 있다.

 

▲임승택 교수

3가지 있음은 갖가지 모습의 태어남과 늙음·죽음이 펼쳐지는 연극무대에 비유할 수 있다. 무대 위의 배우들은 각자 고유한 대본을 지닌다. 그러하듯이 중생들은 자신이 속한 무대에서 자신들의 각본대로 살아간다. 그들을 위한 무대장치와 각본은 전생에 지은 업으로 구성되며, 또한 거기에 현생에서 품는 결의나 의지가 일부 반영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업 지음’을 바탕으로 새로운 존재로의 태어남이 펼쳐진다. 이러한 태어남이란 죽고 난 이후의 재생일 수도 있고, 현생에서 경험하는 거듭남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 sati@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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