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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 원망하며 쓸쓸히 떠난 거사님

기자명 법보신문

농사지어 동생들 챙겼지만
부동산 개발계획 발표되자
땅지분부터 요구한 동생들

 

정토마을은 여러 가지 상황들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다. 세상 떠날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을 전문적으로 돌보는 사람들, 그리고 힘이 되고 싶어 머무르는 사람들까지…. 저마다 입장은 다양하지만 아릿한 아픔과 아쉬움, 한없이 베풀고 싶은 사랑의 마음이 한데 어우러지며 오롯이 담겨 있다.


민족최대의 명절 추석이다. 이맘때쯤이면 달처럼 둥근 얼굴 속에 깃들어있는 슬픔을 감추지 못했던 거사님이 생각난다. 췌장암 말기 67세 거사님의 슬픔이 내 기억 깊은 곳에 각인된 탓이리라.


육남매의 맏이인 거사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아들 둘과 딸 한명을 키워냈다. 땅에서 난 것들을 형제들과 나눠먹는 것이 유일한 재미였으며, 그것이 형제간 우의를 돈독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명절이 되면 객지에 살고 있는 형제들에게 농작물들을 보낼 생각에 힘든 것 모르고 추석준비를 하곤 했다. 아내도 거사님 의사를 늘 존중했으며 또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그 지역에 대한 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모든 것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개발대상으로 땅값이 오르자 거사님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에 대한 분쟁이 일어났다. 동생들이 몰려왔다.


“땅을 팔아 돈을 나누자.” “내 몫의 땅을 돌려 달라.” “법으로 해결하자.”


고뇌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져만 갔다. 결국 동생들은 거사님이 소중하게 가꿔온 땅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동생들에게 시달려온 탓에 육체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깊은 병에 걸린 것이다.


“태어난 집에서 평생을 살며 땅을 목숨같이 여기셨어요. 때가 되면 수확물들을 동생들에게 보내는 재미로 사셨고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땅, 팔겠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으셨죠. 그런데 남편 동생들이 땅을 팔자고 그렇게…”


흐느끼던 아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동생들은 형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거사님은 그들 요구대로 땅을 팔면서 병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는 황달로 찾아간 병원에서 췌장암 말기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3개월 투병 끝에 모든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정토마을에 입소해 아내와 함께 마지막을 준비하는 여정을 보냈다.
추석 사흘 전, 한 번도 고향 밖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았던 거사님은 정토마을 법당에서 조상님을 모셨다. 죽어서 조상님 얼굴 어떻게 뵐 수 있을지 염려하면서도 쌀은 햅쌀인지, 송편 속에는 무엇을 넣어야 하는지, 솔잎은 깨끗한 곳에서 채취했는지 묻고 또 물었다. 아내는 준비한 장거리를 손수 다듬는 내내 눈물을 쏟아냈다.


늦은 밤, 거사님 병실을 찾았다. 창문에서 쏟아지는 달빛이 방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스님. 고향에서 보던 달이 여기도 있네요. 저는 일평생 고향을 떠나 살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이번이 제 인생 마지막 추석일 것 같아요. 병이 들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조상님 제사를 이렇게 지내도 되는 겁니까? 그리고 동생들이요. 그놈들이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지금도 괘씸하고 서운해 마음이 이렇게 아픕니다.”


목소리에서 깊은 회한이 묻어났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가슴에 남은 것은 오직 동생들에게 입은 충격뿐이었다. 한평생 농사일만 해온 굵고 거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우는 거사님의 그 아픈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드려야 할지 몰라서 나도 울었다. 추석날 아침 몸을 힘겹게 움직이던 거사님이 결국 차례상에 꼬꾸라졌다. 부축을 받아 간신히 일어날 수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은 결국 그렇게 오고야 말았다. 거사님은 추석을 지내고 1주일 후 고향으로 돌아가 숨을 거뒀고 농사짓던 땅이 내려 보이는 작은 언덕에 묻혔다.

 

▲능행 스님

용서되지 않는 동생들의 모습을 기억 깊이 묻고 떠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에 너무 깊이 중독된 것은 아닌가. 돈이면 부모, 형제, 친구를 아무렇지 않게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진정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이번 추석을 계기로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능행 스님 정토마을 이사장 jungtoh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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