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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 선사와 그 제자들

  • 법보시론
  • 입력 2012.10.08 11:12
  • 수정 2012.10.0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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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이 없다”


한국불교의 중흥조로 추앙받는 경허 스님의 ‘오도가’ 첫 대목이자 마지막 말이다. ‘사고무인’(四顧無人), 문자 그대로다.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한 번 사람 몸 잃으면 만겁토록 다시 만나기 어렵나니, 하물며 허망한 목숨 아침에 붙어 있다고 한들 어찌 저녁을 기약할 수 있으리오”에는 자신의 깨달음을 전하고 싶은 강렬한 의지가 드러난다. 하지만 경허는 “저 사람도 같고 이 사람도 같네”라고 개탄한다. 경허의 고독, 그 깊이를 절감할 수 있다.

 

새삼 경허의 오도가를 꺼낸 까닭은 승단의 살풍경 때문이다. 보라. 국내 유일의 불교전문 평론지 ‘불교평론’이 폐간 당했다. 처음 ‘폐간’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마침내 재정적 어려움이 닥쳐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폐간의 발단은 사뭇 생게망게하다. 최근 발간된 ‘불교평론’에 실린 윤창화 민족사 대표의 경허 스님 관련 논문이 문제가 됐다. 윤 대표는 경허 스님이 일대사에 매진했던 진정한 수행자임은 틀림없지만 주색의 일탈행위는 용납될 수 없고 경허 자신도 뉘우쳤다고 분석했다.


윤 대표의 논문이 언론의 관심을 끌면서 수덕사를 비롯한 경허 스님 문도회가 크게 반발했다. 경허 열반 100주기를 맞아 학술세미나를 비롯해 각종 행사를 준비하던 수덕사와 경허 스님 문도회는 논문이 게재된 ‘불교평론’의 회수를 요구하며 반발했다고 한다. 그 움직임에 신흥사와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아예 폐간을 결정했다.


신흥사 쪽은 “불교평론이 불교계의 화합과 발전을 도모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분란의 원인이 됐다”며 “이번에도 경허 스님과 관련된 일부의 문제를 부각시켜 일반인들로 하여금 경허 스님을 잘못 인식토록 하고 신흥사를 지극히 곤란한 상황으로 만들었다”고 사뭇 ‘피해자’인 듯 말했다. ‘불교평론’이 불교계의 화합과 발전을 도모하지 못했다는 논리인데 대체 신흥사가 주장하는 ‘화합’의 의미는 무엇인가? 수덕사는 책임론이 불거지자 자신들은 ‘불교평론’의 폐간을 요구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폐간 결정으로 다시 경허 스님을 욕보이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어떤가. 독자가 이미 짐작했듯이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이 없다며 남긴 경허의 개탄 “저 사람도 같고 이 사람도 같네”가 꼭 들어맞지 않는가. ‘저 사람’ 수덕사와 경허 스님 문도회나 ‘이 사람’ 신흥사와 만해사상실천선양회나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이 없다”는 경허의 한탄을 새겨볼 때다.


어쩌면 이 글조차 수덕사와 신흥사는 자신들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차분히 짚어보기 바란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불교평론’에 실린 윤 대표의 논문을 다시 읽어보았다. 논문은 여러 자료에 근거해 탄탄한 논리를 전개했다. 만일 그 논문에 문제가 있다면 수덕사에서 논리적으로 반론을 펴면 될 일이다.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연기한 결정도 생뚱맞다. 오히려 윤창화를 발표자나 토론자로 불러 학술대회를 연다면 더 풍부하지 않겠는가.


일방적 찬사로 경허 100주년을 기념한다면, 과연 그것이 경허를 참되게 기리는 일일까? 어쩌다가 한국을 저마다 대표한다는 큰 절들이 “저 사람도 같고 이 사람도 같네”라는 말을 실감나게 할 만큼 옹졸해졌는가. 오늘의 조계종단을 보며 ‘살불살조’의 결기를 들먹이는 일은 차라리 사치 아닐까.

▲손석춘

그럼에도 나는 이 칼럼을 법보신문에 보내며 내심 기원한다. 이 칼럼이 ‘기우’이기를. 칼럼을 보내는 날과 신문이 나오는 날 사이에 수덕사나 신흥사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입증해주기를 간절히 소망하기 때문이다. 옹근 100년 전, 경허의 그 개탄을 오늘의 스님들이 넘어서길 바란다. 하여, 다시 꼭꼭 눌러 쓴다, 경허의 한탄을.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이 없다.”

 

손석춘 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20g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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