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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존재와 공의 이중성

기자명 법보신문

공과 존재는 이해하고 깨달아야 할 차원
공이 허무 아니 듯 존재도 존재자가 아님

“있음(존재)을 버리고 공에 집착함은 병이기는 같으니, 물을 피하다가 도리어 불로 뛰어듬과 같도다.”


있음의 존재가 있다는 것으로서의 존재자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앞에서 여러번 반복적으로 지적하였다. 삼라만상으로서의 존재자는 구체적인 명사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존재자들은 그 존재자들의 존재방식과 다르다. 존재자들의 존재방식은 구체적인 지시사항이 아니라, 모든 존재자들이 일시에 존재하고 있는 방식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존재자가 존재하는 상태를 언급한다는 것은 텅빈 허공에 어떤 것이 생겨나서 감각을 자극하기에 일어난 일이다. 감각에 와 닿는 그 어떤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의 정체인 본질을 묻는 것이지만, 그 어떤 것의 존재를 묻는 것은 아니다. 그 어떤 것의 존재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그 어떤 것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고 묻는 질문이 아니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질문의 성격을 띨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종류의 질문은 다 대상의 성격을 띠는 것에만 제한되는데, 존재는 어떤 대상의 성격을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존재는 대상이 아니고, 따라서 어떤 개념으로 여겨질 수 없다.


그러므로 존재는 존재자와 다르다. 존재자는 대상이고 개념이지만, 존재는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본질을 지니고 있다. 존재를 사람들이 쉽게 버린다는 것은 무엇이라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잊어버리거나 무시하려 한다. 그래서 하이데거와 같은 20세기 독일의 대철학자인 하이데거는 서양 철학사가 존재를 망각해 왔었다고 언명하였다. 그러나 서양 철학사만 존재를 망각한 것은 아니다. 동양 철학사도 존재의 의미를 제대로 반추해 왔었다고 보기 어렵다. 동양철학사 중에서 유교철학사는 비록 무(無)를 중시하였으나, 그 무를 언설불가의 차원에서 생각하였기에 무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유교 철학사도 불교철학의 공사상을 본질적으로 이해하여 그것의 의미론적 중요성을 제대로 살려 내지 못하였다.


존재는 존재자적인 대상도 아니고 의식의 자각을 요구하는 감각 가능한 것도 아니므로, 의식의 수준에서 보면 그것은 하나의 공(空)에 가깝다. 존재는 곧 공이다. 따라서 공을 존재론적으로 사유해야 하기에 공을 허무론적으로 읽는 것은 존재를 존재자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가대사의 지적처럼 하나의 사유상의 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과 존재는 다 같이 언설불가이고 개념불가이고 파악불가한 그런 오묘한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그것이 파악불가이므로 존재와 공은 엄청난 힘을 함유하고 있다. 허공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장사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존재와 공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그것을 무시하거나 아예 없다고 도외시하면, 그것은 큰 착각을 범하는 것과 같다. 존재와 공은 기독교적인 신학의 관점에서 보면 곧 신(神)과 같다. 그것이 신과 같지만, 절대로 신이 아니다. 신은 기독교 교인에게 절대적으로 믿어야 할 대상이지만, 공과 존재는 그런 의미의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공과 존재는 마음이 성숙해서 이해하고 깨달아야 할 차원이지, 결코 의식이 추구해야 할 대상의 영역은 아니다.

 

▲김형효 교수
존재는 바로 공의 의미와 연결되어 있다. 존재론이 바로 공론의 본질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공론은 허무론이지 존재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일부의 소견은 천부당 만부당하다. 앞에서 언급된 영가대사의 ‘증도가’의 일구는 공이 허무가 아니듯이, 존재도 존재자가 아님을 갈파한 구절이라 여기지 않을 수 없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kihyhy@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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