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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이 곧 큰일이다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2.10.15 14:07
  • 수정 2012.10.15 14:16
  • 댓글 0

추석 무렵 지인의 아파트를 방문했다. 오랜만에 차를 마시며 향기로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저녁 공양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공양을 하려는데 아파트 경비실에서 보내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오늘 밤 7시부터 10분간 모든 아파트 단지의 실내 전등을 끄고 대신 촛불을 켜는 날이니 협조해달라’는 것이었다. 지인에게 그 연유를 물었더니 이곳에서는 매달 한 번씩 하는 행사라고 한다.


한 달에 한 번 눈부신 문명의 불빛을 잠시 쉬게 하고, 은은한 촛불 앞에서 가족이 함께하는 모습은 참 운치가 곁들여진 정겨운 시간이었다. 그날 나는 지인에게 한 가지 아이디어를 주었다. 마치 민방위 훈련 안내 방송처럼 하지 말고 다른 방식으로 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명상 음악과 함께 여는 말씀을 낭송한다. “우리 마을의 좋은 벗님들! 따뜻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보내셨는지요. 깊은 의미와 소박한 기쁨으로 이웃들과 사랑을 나누었는지요. 이제 분주하고 얽힌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어느 수행자는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말은 소음과 다름이 없다’라고 말했지요. 우리도 소리 없는 촛불 아래서 침묵으로 내면을 살피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리고 마무리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 제안에 지인은 매우 좋아하며 반상회 때 꼭 건의하겠다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지인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인데, ‘캠페인에 문화의 옷을 입히면 격조 있는 촛불 행사가 되겠다’며 나에게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말을 건넸다.


나는 그날 이 작은 사례에서 큰 희망의 불씨를 보았다. 먼저 주민들의 발의와 합의 아래 기존의 고착된 관습과 관행을 깨고 기꺼이 에너지 절약을 실천에 옮겼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흐뭇했다. 그리고 이 아파트에서는 수시로 작은 음악회도 열어 마을 같은 분위기로 살고 있다고 한다. 자칫 삭막해지기 쉬운 도시생활에서 대안을 찾아 실천하는 모습은 매우 창의적이고 용기 있는 모습이었다. 최근 들어 ‘불편한’ 삶의 방식을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실천하는 사람과 모임이 늘어나고 있다. 20여 분 정도의 거리는 차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 다니기. 되도록 채식 위주로 살아가기.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층수는 승강기 이용하지 않기. 불필요한 에너지 사용은 자제하기. 먹을 만큼만 음식을 먹는 빈 그릇 운동. 진공청소기보다는 손걸레질하기. 집에서 야채 길러 먹기. TV는 없애고 자전거로 통학하기. 개인용 컵 사용하기. 장바구니는 반드시 지참 하기 등등. 이른바 많이 소유하고 가볍게 소비하는 삶, 속도에 매몰된 삶, 몸을 쓰지 않고 기계에 의존하는 삶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보면 결코 유별난 성격을 가진 이웃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한결 같이 말한다. 과다한 소유, 멈출 줄 모르는 속도가 자신들의 삶을 긴장과 강박으로 얽어매 그것들을 기꺼이 거부했노라고. 불편하고 단순하게 살아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몸까지 건강해졌노라고. 나는 그들의 체험에 충분히 공감한다. 삶의 방식을 바꾸면 몸과 마음이 바꾸어지고,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의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법인 스님
어떤 하나를 단호하게 바꾸면 내 삶 전체가 변한다. 오늘 시민들이 선택한 불편한 삶은 적은 소유로 넉넉하게 살아가는(少欲知足) 불교정신과 맞닿아 있다. 우리 불자들이 이런 운동에 참여할 때 ‘무소유’의 정신은 선언과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현장에서 실현될 것이다. 불편한 삶의 선택에 수행과 보살행의 옷을 입혀야 할 때다. 과다한 소유와 집착으로부터 자유, 관계의 그물망에서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작은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그 부분 그대로가 곧 전체다. 

 

abcd369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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