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4. 서방(西方)-6

기자명 법보신문

정토와 예토 거리는 망집 거리
망집 일어나면 십만억토 괴리


얼핏 모순적인 표현이지만, 실제 ‘십만억’이라는 수는 숫자를 초월한 세계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지금까지 이를 ‘수’로서 받아들였던 사람에게는 많은 오해가 따라다녔는데, 글자의 뜻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리라.
‘십만억’은 셀 수 있는 거리의 길이와 같이 간단한 것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잇펜 스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 무엇보다 적절한 해설이 될 것이다.


“‘십만억토를 지나서 서쪽으로’라는 것은 실제로 십만억이라는 거리의 길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와) 중생 사이(에 존재하는) 망집(妄執)의 간극을 가리킨 것이다.”(‘법어’)


이 경구(經句)의 참된 의미를, 진정 이보다 더 명확하게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스님의 성찰이 견줄 수 없는 깊이를 갖고 있음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우리들의 허망한 집념이 서를 동과는 다른 것으로 나누고, 도를 먼 곳으로 떼어 놓는다. 그런 뒤에, 안타깝게도 그 거리의 길이를 헤아렸던 것이다.


예토와 정토의 거리는 망집 그 자체의 거리라고 해야 한다. 나의 탐착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떠나서 그 어디에 십만억의 거리가 따로 있겠는가. 예토에 빠진다는 것은 정토를 달성하고자 뜻할 수도 없는 먼 곳으로 쫓겨나는 일이 된다.


그 거리는 참으로 죄의 무거움에 정비례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무명 때문에 동떨어진 것이다. 그 먼 거리는 바로 우리들의 망집, 그 한 가운데 있는 것이다. 차안과 피안 사이의 공간적인 거리가 아니라 자기의 죄업이 갖는 무게를 가리키는 것이다. 끝없는 단절은 나의 내부에 있는 것이지, 나의 외부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상대적인 견해에 떨어진 망집이 끊어져 떨어진다면, 정토는 지금 바로 나타날 터이다. 경전에서는 “여기서 멀지 않다”라고 말하지만, 그 표현 역시 아직은 미온적이다. 정토는 ‘여기’의 ‘지금’에 있는 것이다. 바로 지금 밖에 정토의 출현은 없다.


그곳이 중(中)의 자리이고, 둘이 아닌 자리이다. 망집의 두 가지 모습이 끊어지는 그 찰나에는 자타(自他)도 생사(生死)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를 보고서 정토라고 우러르는 것이다.


잇펜 스님의 말씀으로 말하면, “생사 없는 본분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 본분을 떠나서 정토는 없다. 망집이 일어나면 본분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정히 십만억토가 된다.


“원래부터 나의 본분은 윤회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망집이 윤회하는 것이다.”(‘잇펜법어’)


윤회에 떨어지면 정토는 볼 수 없다. 윤회란 두 가지 모습에 떨어지는 것이다. 예토란 그 두 가지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정토는 아직 둘로 나누어지지 않은 것이다. 아직 둘로 나누어지지 않은 것이 본분인 것이다. 둘과 둘이 아님은 차원이 다르다.

 

▲야나기 무네요시

그 차이를 십만억으로 나타내고도 실은 부족하다. 십만억이란 양(量)의 문자가 아니라 질(質)의 문자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모든 불법이 지향하는 곳은 불이(不二)의 경지이다. 그것을 객체화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나 자신을 떠나서 불이가 있을 리 없다. 서방은 나의 마음 속 지금의 자리이다. 서방이라는 것은 불이의 자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일본불교사연구소 번역

 


*수로서 받아들이다 : ‘십만억’이라는 표현을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저자는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 정토를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찾는 선적(禪的)인 정토관을 보여준다. 잇펜 스님에게서도 찾고 있는데, 잇펜 역시 그러한 염불선의 입장이다.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