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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에서 달을 보다] 고불총림 백양사 주지 진우 스님

‘북 마하연, 남 운문’ 위상 다시 세울 터

20살 못 넘긴다 한마디에
13살 보현사로 강제 출가

 

억울·서러움에 매일 울음
원효 대자유심에 재발심

 

 

▲퇴락해 있던 담양 용흥사를 10년의 불사 끝에 선방 등 15채의 전각과 요사채를 갖춘 명실상부한 선찰로 자리매김 시킨 진우 스님은 이제 고불총림 백양사의 위상을 높이는데 진력하겠다는 각오다.

 

 

 

화창한 가을이다. 쌍계루 앞 연못에 백암산이 선연하게 들어앉았다. 목은 이색이 쌍계루라 이름 한 이후부터 쌍계루는 물속의 백암산을 도반 삼아 그렇게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 세월이 600여년! 그 둘이 나눈 법거량을 헤아려볼 만한 근기 없으니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여볼 뿐이다.

쌍계루를 지나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목에 보리수 한 그루 당당하게 서 있다. 담 안의 소나무 한 그루, 보리수에게 법을 청하는 양 담 밖으로 나와 있다. 그 소나무가 자리한 곳에 고불총림 백양사 주지 진우 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주지로 임명되기 전까지 교계 언론에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스님이지만 사중에서는 이미 평판이 높았던 스님이다.

1998년 펼쳐졌던 무차선회, 고불총림 방장 서옹 스님 다비식 당시 총 도감을 맡았다는 사실이 명료하게 방증하고 있다. 퇴락해 있던 담양 용흥사를 10년의 불사 끝에 선방 등 15채의 전각과 요사채를 갖춘 명실상부한 용흥사로 자리매김 시킨 장본인이 진우 스님이다.

동진 출가한 스님의 출가인연은 참으로 기구하다. 당시 강릉의 화주보살로 명망이 높았던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월정사, 법흥사는 물론 강원도 일대의 유수 사찰은 거의 다 돌아보았다. 스님 기억에 따르면 태백 정암사 적멸보궁을 참배한 게 4살 때였다고 한다. 어린 마음에도 보리심 씨앗 하나 따뜻하게 심어 놓고 싶었던 게 할머니 마음이었을 터. 3대 독자였으니 그 마음 오죽 할까!

어느 날 인연이 깊었던 당시 정암사 주지 동화 스님을 만났다. 이 때 스님의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할머님, 이 아이는 스무 살을 넘기지 못합니다.” “어찌 합니까?” “절에 있어야 연명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는 그 어린 아이를 강릉 보현사에 맡겼다. 세납 열세 살 때 일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울었다. 자신이 언제 단 한번이라도 순례하고 싶다고 할머니에게 조르기라도 했단 말인가! 절에 있어야만 살 수 있다는 근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절에 머물며 학교를 다녀야만 하는 이 상황은 자신의 뜻과는 전연 상관이 없었다. 그래도 일주문을 나가지 않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심사는 뒤틀리기 시작했다. 친구가 건네 준 기독교 성서가 더 좋을 때도 있었고, 심지어 법당에서 ‘주기도문’을 외우적도 있다. 야속하기만 한 할머니에 대한 나름대로의 ‘복수’였으리라. 그래도 억울함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불무도, 유도 등 운동에 매달렸다. 자신의 몸이 극한의 상황에 처할 때나마 그를 짓누르는 잡념이 해소되는 듯했기 때문이다.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평행봉을 하던 중 손목 인대가 끊겼다. 그래도 공부는 곧잘 했다고 한다. 성공해서 보란 듯이 할머니 앞에 나타나기 위해서라도 공부만은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젠, 펜 하나도 제대로 잡기 어려웠다. 절망에 이르렀다. 희망하던 법대도 포기했다. 공부도 뒷전으로 밀려났다. 동아대도 몇 달 다니다 집어 치웠다.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주위의 토닥거림에 뒤늦게 관동대에 입학했다.

어느 날, 또 다른 인연이 찾아왔다. 7촌 아저씨가 책 한권을 주고 갔다.

“제 인생에서 저를 가름해 준 책 네 권이 있습니다. 은사이신 백운 스님의 선소설 ‘양치는 성자’, 소천 스님의 ‘금강경 강의’, 황산덕 법사의 ‘중론송’, 그리고 춘원 이광수의 ‘원효대사’입니다.”

‘양치는 성자’는 대강백이었던 백운 스님이 천재적 선기를 뿜어냈던 편양 언기 스님의 일대기를 소설로 담아낸 책이다. ‘금강경 강의’는 소천 스님이 금강경을 역해한 것으로 스님의 혜안이 번뜩이는 역저. 법무장관을 그만 둔 황산덕 법사는 이후 세속과의 인연을 거의 끊었는데 그 무렵 내놓은 책이 ‘중론송’이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된 1976년 당시로서는 중론과 관련된 책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책 서문에 쓴 ‘법학자들이 생각하는 법은 없다’는 말은 지금도 법학계에 회자되고 있다.

‘금강경 강의’를 통해서는 ‘부처님 말씀의 진의’를, ‘중론송’에서는 실재와 실체의 차이, 나아가 이토록 명료하게 서있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읽어냈다고 한다. 세파와 번뇌에 흔들림 없는 보림의 진가를 느껴볼 수 있었던 건 ‘양치는 성자.’ 불교에 대한 나름대로의 통찰력을 갖춘 것이리라.

하지만, 무엇보다 춘원 이광수의 원효대사를 통해 무엇을 감지했는지가 궁금했다.

“원효를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대자유를 만끽했습니다. ‘이 공부는 생사를 뛰어 넘는 공부’라 했던 선지식들의 일언이 그 때야 들리더군요.”

재발심, 진정한 출가다!

그 즈음 할머니가 찾아왔다. 20살이 넘었으니 ‘이젠 절에서 나오라’ 했다. 이미 대발심을 한 진우 스님이 하산할 리 만무했다. 그렇다고 모든 게 정리되는 건 아니었다. 할머니가 진우 스님 초등학교 시절 배필로 점찍어 두었던 여자를 단념시켜야 했다. 직접 만나, 자신이 가야할 길을 오롯하게 전했다. 진우 스님의 진의를 들은 그녀도 물러섰다. 수년 전 딱 한 번 그와 통화했다고 한다.

“그 분도 비구니 스님이 되셨더군요.”

속세의 이별이 법연으로 다시 이어진 것이다.

일반 사찰의 주지도 녹록치 않은 일인데 총림의 주지를 맡았으니 그 어깨가 무거울 터였다. 물론 용흥사를 비롯해 완도 신흥사, 광주 관음사를 맡으며 보여준 주지로서의 면모만도 탁월하니 별달리 우려할 바는 없다. 더욱이 1998년부터 백양사와 인연을 맺었으니 살림살이와 대중의 뜻을 누구보다 잘 살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총림이 주는 무게는 예사롭지 않다.

“제가 잘 해야 한다기보다는 저부터 잘 해야겠지요. 풀이 어지럽지 않게 자라는 것을 총(叢)이라 하고, 나무가 가지런하게 자라는 것을 숲[林]이라 하지 않습니까. 이미 백양사 대중이 함께 정진해 가며 수행의 깊이를 더해 가겠다는 원력을 세웠으니 제가 할 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중이 공부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보살펴 드리는 게 다입니다.”
하심의 일언에 배인 의미 하나가 읽혀진다. 그 무엇보다 대중 화합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뜻이다.

총림의 근간은 역시 선원이다. 선풍(禪風)에 따라 총림의 위상이 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떨어지기도 하는 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점에 비춰보면 지난 수년 동안 제대로 문을 열지 못한 고불선원, 한국 선원의 최고봉으로 꼽혔던 운문선원이 빛을 잃어가고 있는 건 너무도 안타깝다.

“북 마하연, 남 운문선원의 옛 위상을 다시 찾을 겁니다.”

 

명실상부 율·염불원 곧 개원
승·재가 함께하는 총림 지향

 

자비심 원천은 따로 있지 않아
집착 않는 승화된 마음서 시작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있는 왼편의 보리수. 마치 오른편 소나무에게 청량한 법음을 전하는 듯하다.

 

 

 

예로부터 북쪽의 마하연과 남쪽의 운문선원이 최고라는 말이 선객 사이에 회자 되었었다. “운문선원에서 수행한 스님 중 교정과 종정이 된 스님만도 7명입니다. 근대 선지식 만암, 현대 선지식 서옹 스님이 주석하며 납자들을 제접한 선원이 바로 백양사 운문선원입니다. 그 면모를 다시 되살려야 합니다. 우선, 운문암을 재정비 하고, 선원 시설을 손보려 합니다. 아울러 고불 선원에도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겁니다. 하루아침에는 안 되겠지만 최단 시간에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강원은 폐쇄 직전이지만 시설만은 괜찮다는 진단이다. 당장 학인을 모집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다만, 가능하다면 한문 경전을 토대로 한 강독 중심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고 한다. 여기엔 그만한 스님만의 이유가 있다. 한글 경전만으로는 한문에 담긴 함의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진우 스님은 금강경 한 구절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 중 ‘범소유상’을 예로 들었다.

“범을 보통 ‘모든’ 이라고 번역합니다. 하지만 모든 이라고 할 때 직감적이지도 않거니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범’은 우리 눈에 보여지는 것 뿐 만 아니라 보여지지 않는 것 까지도 포함합니다. 한 마디로 우주 전체요, 삼라만상을 포함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부족하지요. 여기엔 시간도, 공간도 다 포함 한 ‘범’입니다. ‘상’도 형상이라고만 하면 안 됩니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등의 사상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점을 처음 공부할 때 사유하지 않으면 금강경 도리를 알기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현재 교육원이 제시한 프로그램도 분명 일리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경전을 한문으로 공부하고 싶은 대중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만은 없습니다. 고불강원은 그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고자 합니다.”

청류암은 율원으로 활용하고 염불원 역시 새롭게 문을 열 것이라고 한다. 율원 개원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백양사 율주 혜권 스님이 현재 용흥사에 주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불총림의 향후 계획을 듣는 내내 분명하게 느꼈던 게 한 가지 있다. 총림의 위상을 격상 시키겠다는 그 의지, 그건 ‘가능하다’는 게 아니라 ‘해야만 한다’는 대원력이었다. 원효를 접한 순간 ‘혼돈’의 마음을 제 자리로 ‘딱’ 돌려놓은 선지라면 못할 게 없을 듯싶다.

그래서 궁금증 하나가 일었다. 총림을 통해 ‘진우 스님’은 무엇을 펼치고 싶은지 말이다. 놀라운 일언이 나왔다.
“고불총림은 2부 대중의 총림에만 머물지 않을 겁니다. 사부대중의 총림을 지향합니다.”

어떻게 사부대중의 총림을 조성한다는 것일까?

“각계의 전문가가 포함된 참사람운동본부를 구성하려 합니다. 이 기구를 통해 승가와 재가가 소통할 겁니다. 선과 교는 물론이고 염불, 절, 기도 등 공부에 필요한 학술, 수행, 신행 모든 것에 대한 의견을 사부대중이 서로 나누며 함께 정진해 가고자 합니다. 아직 구상중이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총림에서 거둔 결실을 세속의 공부인과 나누겠다는 의미다. 아니다. 풀과 나무가 숲에서 함께 자라듯, 재가와 승가가 함께 이 길을 걷자는 것이다. 고불의 새로운 ‘숲’이다. 진정한 총림! 신선한 충격이다.

한 말씀이라도 더 듣고 싶었다. 혹, 가슴에 담아두고 있거나,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부처님 말씀이나, 선구 하나만을 부탁드렸다. 진우 스님은 주저 없이 금강경 사구게 하나인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을 들었다.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낸 그 마음은 승화된 마음입니다. 자비심은 여기서 흐릅니다.”

‘승화된 마음’ 일언이 가슴에 꽂힌다. 사구게 하나가 좀 더 명확해 진다. 사유해 볼만한 일언이다.

오늘도 보리수가 소나무에게 청량한 법음을 전하고 있는 연유도 보리수의 ‘승화된 마음’에서 비롯됐으리라! 보리수와 소나무가 함께 하는 한 고불총림은 선풍을 휘날릴 것이다. 어찌 알았는지, 벌써부터 새들은 새로운 숲에 모여들고 있다. ‘고불’의 위력이다.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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