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치병에도 병원 건립 도왔던 도반

기자명 법보신문

10년간 병원불사 발원하며
힘들때도 격려해주던 스님
스님 떠난 자리 아쉬움 커

 

자재병원 건축현장을 홀로 걸으며 가을 옷으로 갈아입을 채비를 하는 대지를 바라본다. 풍요와 결실의 계절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꿈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온 사람들에게 가을은 희망의 계절이다. 저마다 가슴 속에 품은 희망을 성취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해 본다.


말법시대를 살아가는 중생들이 자재병원을 통해 지혜·자비심을 기를 수 있다고 믿는다. 삶과 죽음의 순환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수행처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자재병원이 온갖 번뇌와 갈등 그리고 욕망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피안에 이르는 나침반 역할을 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건축현장을 돌고 또 돌았다.


그동안 질병과 죽음으로 고통 받았던 스님들의 마지막 모습을 많이 봐왔다. 건강한 모습으로 수행할 수 있을 때와 그렇지 못할 때의 상황은 너무나 다르다. 우리 수행자들은 서로 말하지는 않지만 모두 알고 있다. 출가사문의 질병과 늙음, 그리고 죽음의 과정에서 전문성과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존엄성에 대한 요구와 욕구는 도처에 존재하지만 함께 마음을 모아 승가의료의 질을 높이는 일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찾기란 바다에서 진주를 찾는 것보다 어려운 것 같다.


요즘은 성오 스님이 참 그립다. 우리는 청원 정토마을에서 10년을 함께 살았다. 스님은 불치의 질병에 시달리며 몸을 반쪽밖에 쓸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출가사문의 역할을 다 해내주었다. 내가 자재병원 건립을 위한 탁발에 나가면 스님은 법당 좌복에 앉아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왼손으로 목탁을 치셨다. 자재병원 건립을 위한 천일기도에 정성을 들이시던 나의 도반 성오 스님. 뇌혈관출혈로 기억력·인지능력을 상실했음에도 다시 한글공부를 해 ‘천수경’을 외우던 나의 도반은 반쪽밖에 사용할 수 없는 어눌한 몸이었지만 불사에 힘을 실어주었다. 힘들 때마다 가장 먼저 내 어깨를 토닥이며 웃어주던 것도 역시 성오 스님이었다.


그런 도반이 내 곁을 떠났다. 그가 떠난 이후 자재병원 불사를 위해 기도해줄 스님 한 분 인연이 없다. 아마도 당신이 답답해 극락에서 기도를 해주고 계실 것만 같다. 오늘 아침에는 유난히 성오 스님이 그립다.


추석 연휴라 고요하다. 환자들과 가족들의 소식이 궁금해 전화 한 통 넣어보고 혼자 호젓하게 자재병원 현장을 두 바퀴 돌았다. 햇살이 살갑게 내리쬔다. 나는 15년 전, 불치의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과 그 가족들에게 힘이 되어 주리라 마음먹었다. 또 사람과 뭇 생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이 되도록 기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결정이 2012년 추석 아침 이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파도처럼 밀려와 내 몸과 마음을 덮는다. 곧 황금빛으로 물들어갈 가을들판처럼 자재병원 건립의 원이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언제가 될까. 건축현장을 둘러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나는 이 병원 불사를 수행할 권리와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온전히 수용한다. 나는 욕망하지 않는다. 그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 단 나는 희망한다. 의료와 교육을 통해 이 세상 모든 중생들이 서로 공존하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힘이 될 것을 희망한다. 이 서원은 본래부터 내 안에 있었던 본원이며 구도의 길에서 스스로 선택한 고귀한 소임이다.

 

▲능행 스님

자재병원 기공식은 지난해 5월에 있었고 현재 공정률은 65%에 불과하다. 더딘 진행에 때로는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담쟁이 이파리 같은 정토마을 후원자들과 함께 벽을 넘어 뭇 생명이 서로 공존하는 숲을 이룰 것을 또 다시 다짐해 본다. 이 순간도 묵묵히 벽을 넘고 있는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들이 있어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의료와 교육에 뜻을 둔 사람들이 나와 같은 서원을 품고 있다면 이 길을 함께 걸어가면 좋겠다.


능행 스님  정토마을 이사장 jungtoh7@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