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민주화
미얀마의 민주화
  • 김형규 기자
  • 승인 2012.10.22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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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의 민주화운동으로
자유보장…독재정권 일소


욕망 추구 자본주의 아닌
불교적인 민주주의 기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오는 나라가 있었다. 아름다운 탑이 있고 전설 깃든 도량 가득한 곳. 이른 새벽 뿌연 운무 속 열을 지어 맨발로 탁발하는 스님들이 사는 나라. 바로 미얀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미얀마를 독재의 나라로 기억한다. 그 미얀마가 변하고 있다. 독재에서 민주화로 방향을 틀더니 무섭게 질주하고 있다.


지난 10월7일, 3박4일의 일정으로 미얀마를 방문했다. 미얀마의 경제 수도 양곤은 평온했다. 매섭게 사람과 가방을 살펴보던 관리들이 사라진 공항입국수속 코너엔 한국말로 인사하는 앳된 여성 관리들이 등장했다. 환한 얼굴과 웃음기 머금은 표정에서 민주화된 달라진 나라의 모습이 읽혔다. 양곤 시내도 마찬가지다. 군인들에 의해 철의 장막으로 둘러쳐 있던 아웅산 수치 여사의 집은 산뜻하게 단장한 채 사람들을 맞이했다. 많아진 자동차로 도로가 막히고 임금 관련 파업도 일상으로 벌어졌다. 특히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아웅산 수치 여사의 기자회견은 군부독재로 연상되는 미얀마의 어두웠던 과거 그림자를 말끔히 지워버렸다.


미얀마의 개방과 개혁 이면에는 민주화의 상징 아웅산 수치 여사가 있다. 미얀마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미얀마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이다. 영국의 평범한 대학 교수 아내였던 그는 1988년 어머니의 병환을 돌보기 위해 잠시 미얀마를 방문했다. 그러나 민주화 시위를 탱크로 짓밟는 군부의 폭압을 목격하고 영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기로 한 것이다. 그것은 국민들의 요구이기도 했다. 민주화의 구심점이 된 그를 군부는 가만두지 않았다. 무려 15년간 집밖을 나올 수 없도록 연금을 했다. 그렇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위파사나를 통해 평정심을 유지했고 자비심을 잃지 않았다. 국민들은 그에게서 희망을 봤다. 그를 의지하고 그를 중심으로 뭉쳤다. 민주화는 이렇게 이뤄졌다. 스님들의 공로도 빼 놓을 수 없다. 민주화는 2007년 스님들이 시위 전면에 나선 ‘샤프론 혁명’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31명의 스님들이 숨지고 수백 명의 스님들이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불교의 나라에서 스님들에 대한 폭력은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왔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군부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다음해 서둘러 민주국가 건설을 위한 헌법 초안을 마련하더니, 지난해엔 선거를 실시했다. 일시에 군부독재를 일소하고 민간정부가 탄생했다.


물론 현재 대통령 세인은 군인 출신이다. 그래서 군부가 옷을 갈아입은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세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반체제 인사의 귀국을 보장하고 언론 자유를 비롯해 각종 포용정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야당의 대표 주자가 된 수치 여사와 공식 회담을 갖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해외를 방문하며 투자 유치를 이끌고 있다.

 

▲김형규 부장

미얀마의 민주화 실험은 불교의 민주화 실험이다. 자자와 포살을 통해 평등 승단을 구현했던 불교의 오랜 전통이 민주화로 꽃 피울지 주목된다. 그러나 미얀마의 민주화가 물욕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곤란하다. 기독교적 사유 속에서 꽃피운 욕망의 자본주의가 아닌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면서도 물욕을 절제하는 중도적인 불교적 민주주의 표본이 돼야한다. 금은보화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도 인간의 욕심을 채울 수 없다는 ‘자타가’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미얀마 앞날에 부처님의 가피가 함께 하기를. 

 

김형규 kimh@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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