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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주지 동명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자성 찾은 이에게 두려운 삶은 없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저잣거리 나선 뜻은
방편 사용해서라도
중생 이끌려는 자비


본래 청정·구족하기에
부처·중생이란 이름도
너절한 군더더기일 뿐

 

 

▲동명 스님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를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무명이라는 도적을 죽여 법신불을 나타낸데 있다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기도를 하시면서 지장보살님을 부르고 관세음보살님을 불렀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우리가 우리의 본심을 알게 하는데 가장 공로가 많으신 분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이 안 계셨다면 우리는 과연 어디서 원력을 얻을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관세음보살님은 여러 이름으로 불리십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얼굴이 11개라는 의미의 십일면관세음보살이라는 칭호입니다. 또 서른두 가지 모습을 가지셔서 삼십이응신 관세음보살로 부르기도 합니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라는 이름에는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을 갖고 계시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들의 모습이 각각 다릅니다. 그렇듯 마음도 다르고 원력도 다르고 생각도 다릅니다. 그러니 이처럼 각기 다른 중생들을 제도해 이끌기 위해 관세음보살께서는 그렇게 많은 화신을 나타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불자들은 가정과 자식들에게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길 바라며 절에 오셨을 것입니다. 기도를 하고 공덕을 쌓으면 소원이 이뤄진다하여 절에 오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 소원과 바람을 관세음보살님이 들어 주시니, 관세음보살님이 안 계셨다면 아마 여러분들이 불교와 인연 맺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천 가지 부처님에게 공양 올리는 공덕이 닦을 것도 증득할 것도 없는 이에게 공양 올리는 것만 못하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왜 이런 말씀이 있을까요. 여러분만 해도 전등사와 인연을 맺어 얼마나 많은 불사를 하셨습니까. 여러분의 손으로 법당을 짓고 사찰 주변을 정리해서 도량을 만들었습니다. 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공덕을 쌓기 위해서였습니다. 공덕을 쌓기 위해 불사에 동참했고, 모든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님을 열심히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닦지도 않고, 증득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공양 올린 것만 못하다니요.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의심해보셨습니까.


닦을 것도, 증득할 것도 없는 이가 누구겠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자성, 본성입니다.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본래 면목입니다. 자성은 너무나 청정해서 부처니, 중생이니, 공덕이니 하는 이름을 붙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심은 그야말로 깨끗해 부처라는 이름도 그저 너절너절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깨끗한 본심 어디에 중생이 있고 어디에 부처가 있겠습니까.


관세음보살님께서는 일평생 방편을 쓰셔서 본심을 알도록, 본심으로 이끌도록 노력하셨습니다. 방편이 아니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원력이 아니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관세음보살님 뿐 아니라 석가모니부처님께서도 일평생 거짓말을 하셨습니다. 부처님이 거짓말 하셨다니 여러분들이 크게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일평생 거짓말을 하셨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본심에 비추어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남을 이끌기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말을 많이 하다보면 거짓말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또 많은 말 속에는 나쁜 말이 껴있기도 하고 실수하는 말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진실한 말은 말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성도하신 후 49년 동안 수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마다 마음 쓰는 것이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행동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모두 본심으로 이끌려다보니 거짓말이라는 방편도 쓰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거짓말이라는 방편까지 사용하신 이유를 절실히 생각해보면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심이 무엇인지, 우리가 본심을 알고 사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면 부처님께 참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관세음보살께서도 마찬가지 이유로 천백억 화신을 나투시었으니 중생을 위하시는 그 뜻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뿔을 이고, 털을 쓰고 저잣거리로 들어오신 뜻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절에 다녀서 소나 돼지로 태어난다면 절에 올 사람이 하나도 없겠죠.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일평생 거짓말을 하시고 스스로 속세에서 소가 되고 말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소가 돼야 소를 제도하고 돼지가 돼야 돼지를 제도하기 때문입니다. 도둑놈을 제도하려면 도둑이 돼야 하고 감옥에 있는 사람을 제도하려면 감옥에 들어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모든 것을 본심에 비추어 본다면 해결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요즘 정치인들은 어디를 가든 “무슨무슨 일을 반드시 해결하겠다”며 약속도 잘 하던데 그들이 해결 못해줍니다. 대통령이 부자로 살게 해주겠다고, 경제 좋아지게 하겠다고 해서 한 표씩 찍어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 여러분 부자로 살고 계십니까? 대통령이 해결해주었습니까? 모든 것은 자기가 해결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습니다. 자기가 깨달아야 합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마음을 바꾼다는 것, 내 본심이 이처럼 청정하고 훌륭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노력해야 할 것은 바로 여러분이 각자 갖고 있는 자성, 본심,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렇게 저렇게 이름 짓는 것뿐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느껴야 합니다. 제 은사이신 해안 스님께서는 그것을 느낀 다음부터 거기에 밥을 먹고, 거기에 잠을 자고, 거기에 생활을 하고, 거기에 비추어 사람을 만나고, 그러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관세음보살님처럼 하나의 몸을 만 개로 만든다는 것, 나툰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께서는 몸 하나를 갖고 만 개를 만드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등을 켭니다. 등은 하나가 있어도 한 빛이고 두 개가 있어도 한 빛이고 천 개가 있어도 한 빛입니다. 빛은 결코 옆의 빛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등사에서는 등불로써 등불을 켠다는 말씀을 자주 드립니다. 본심을 알지 못하는 것이 무명이고 이 무명을 없애는 데에는 밝은 등불이 으뜸입니다. 등불이란 무엇입니까. 밝은 지혜입니다. 밝은 지혜라는 것도 역시 이름일 뿐이지요. 이름이 지혜이고, 부처이고, 중생일 뿐이지 목적은 하나, 나에게 있는 본심을 아는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것입니다. 어둠을 몰아내서 실수하지 않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곤 합니다. 본심을 살피지 않아서입니다. 본심을 알면 아무리 어두운 곳에 있어도 환합니다.


여러분들이 행하는 만 가지 불사 역시 모두 본심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본성을 알기 위해 공덕을 심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모든 불사를 공화(空華)라고 합니다. 텅 빈 꽃, 허공의 꽃이라는 뜻입니다. 허공에 핀 꽃처럼 가늠할 수도 측량할 수도 없고, 크다고 좋을 것도, 넓다고 좋을 것도, 화려하다고 좋을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공화가 필요한 것은 그러한 방편을 통해 법을 접하고 공덕을 심고 궁극에는 내 마음, 자성을 깨닫는 길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쇠로된 소는 사자가 아무리 큰소리로 울어도 놀라지 않습니다. 이처럼 본성을 꿰뚫어 알면, 깨달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많은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까. 병에 걸리지 않을까, 자식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까 늘 걱정합니다. 하지만 부처님 가르침으로 무명을 물리치고, 어두운 생각을 버리고, 모든 것을 자성에 비춰서 생활한다면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보리를 이루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고 보리를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불교는 냉철합니다. 자성을 아는데 있어서는 털 끝 만큼도 거짓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거짓말하지 않으셨습니다. 거짓말을 하시고 난 다음에 한 마디도 거짓말 안 하셨습니다. 그 뜻을 늘 헤아리고 수행 정진하여 모두가 자성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 법문은 10월15일 서울 성북동 전등사에서 열린 초하루 정기법회에서 주지 동명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동명 스님은 1950년 전북 부안 출생으로 1964년 해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내소사에서 사미계를, 통도사에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75년 해인강원을, 1987년 동국대 불교대학원을 졸업했다. 부안 내소사 주지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서울 개운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해인사, 통도사, 백양사 등 제방선원에서 참선정진했다. 성북동 전등사에 재가불자들을 위한 수행처 전등선원을 열어 수많은 불자들을 수행으로 이끌고 있다.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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