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5. 느낌(受)

접촉을 조건으로 발생
고락 등 일체감정 망라
느낌에 지배되면 ‘노예’

 

느낌이란 무엇인가. 무명으로부터 시작되는 십이연기의 지분들 가운데 7번째에 해당하는 항목이다. 느낌은 갈애(愛)의 조건이 되며 또한 자체적으로는 접촉(觸)을 조건으로 발생한다. 이것은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일체의 감정을 망라한다. 십이연기의 느낌은 발생 경로에 따라 여섯으로 분류된다. “느낌에는 이러한 6가지가 있다. 눈의 접촉에서 생겨난 느낌, 귀의 접촉에서 생겨난 느낌, 코의 접촉에서 생겨난 느낌, 혀의 접촉에서 생겨난 느낌, 몸의 접촉에서 생겨난 느낌, 마음의 접촉에서 생겨난 느낌이다(SN. II. 3).”


느낌은 다섯의 경험적 요인 즉 오온(五蘊)의 하나로 언급되기도 한다. 즉 물질현상(色)·느낌(受)·지각(想)·지음(行)·의식(識) 가운데 두 번째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온은 인간의 실존을 구성하는 전형적인 5가지이다. 오온의 가르침에서는 이들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라든가 경과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다. 다만 순간순간 경험하는 이들 현상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할 때 괴로움이 증폭된다고 가르칠 뿐이다. 오온설은 이들 각각에 대해 ‘나’ 혹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우는 데 주력한다. 오온에 귀속되는 느낌은 즐겁거나 괴로운 감정 자체를 가리킨다. 그러나 십이연기에서의 느낌은 첫 번째 지분인 무명으로부터 비롯되어 마지막 지분인 늙음·죽음이 구체화되는 과정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등장한다. 따라서 이들은 동일한 개념이지만 전달하는 메시지가 다르다. 오온과 달리 십이연기의 느낌은 그것이 발생하는 인과적 조건과 함께 그 이후의 경과에 대해서도 밝힌다. 따라서 이것은 각자가 경험하는 즐겁거나 괴로운 느낌이 도대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사색이 가능하도록 해준다.


십이연기의 연쇄적 과정에 입각할 때 무명(無明)이라든가 지음(行) 따위가 존재하는 한에서 느낌의 발생은 불가항력적이다. 전생에 지은 것이든 혹은 현생에 뿌린 것이든 이전에 지녔던 인식과 행위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지금의 상황에 영향을 미친다. 바로 이것이 6가지 감관의 접촉을 통해 드러나는 느낌의 양상이다. 예컨대 누군가를 오해하여 그에게 해로움을 끼쳤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그 앙갚음이 되돌아온다고 보아야 한다. 바로 그 결과가 지금 이렇게 눈이나 귀나 몸을 통해 경험하는 괴롭거나 쓰라린 느낌이다. 이러한 느낌의 발생을 억지로 거스르거나 부정할 수는 없다. 사실 즐겁거나 괴로운 느낌 자체는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 설령 나쁜 행위의 과보로 괴로움을 겪는다손 치자. 마땅히 받아들이고 감당해야 하지 않겠는가. 삶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이러한 부류의 개인적인 느낌들은 어느 누구도 대신 겪어 줄 수 없다. 어쩌면 각자만의 고유한 인생은 감당하기 힘든 괴롭고 쓰라린 느낌에 직면했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로 그것을 어떠한 태도로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야말로 곧 그 사람의 인격을 의미한다.

 

느낌에 지배되면 본능의 노예로 살아가게 된다. 바로 그 순간부터 탐욕과 분노의 사슬에 매이게 된다. 갈애(愛)와 집착(取)과 있음(有)으로 이어지는 십이연기의 나머지 지분들은 그러한 과정에 대한 묘사라고 할 수 있다. 늙음·죽음(老死)으로 대변되는 괴로움의 실존은 그것의 최종 귀결이다. 느낌은 고귀한 삶과 저속한 삶으로 갈라지게 만드는 갈림길이라고 할 수 있다.

 

▲임승택 교수

“즐거운 느낌을 느낄 때 매이지 않고 느끼고, 괴로운 느낌을 느낄 때에 매이지 않고 느낀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사람이 잘 배운 고귀한 제자이다. 그는 태어남과 늙음·죽음, 슬픔·비탄·괴로움·불쾌·번민에도 매이지 않는다(SN. IV. 209~ 210).”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 sati@knu.ac.kr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