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견보탑품
38. 견보탑품
  • 법보신문
  • 승인 2012.10.2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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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탑을 통한 찬란한 문화유산 복원

이 품은 범어로 Stūpa saṃdarśana parivartaḥ인데, Stūpa는 탑을 뜻하며 saṃdarśana는 바라보는 행동 혹은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한역에서 ‘견보탑품’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견보탑품에서는 부처님 앞 땅에서 갑자기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칠보탑이 솟아나 ‘세존께서 법화경 설법하시는 것이 모두 진실’이라 말한다. 모인 대중들은 이 신비로운 일에 놀라움과 찬탄을 하고 한편으로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이 때 대요설이란 보살이 세존께 대중들을 대신해서 그 이유에 대해 질문을 한다.

 

부처님 앞에 솟아난 칠보탑


이 탑은 옛날 동방으로 무량 아승지 세계를 지나 보정(寶淨)이란 나라에 다보불(多寶佛) 계셨는데 큰 원력을 세우되 자신이 멸도한 이후 어디든지 법화경 설하는 곳이 있으면 자신의 탑이 경전을 듣기 위해 그 앞에 솟아나 증명하고 찬탄하리라는 서원을 세웠다. 세존께서는 그 대의 원력으로 이 탑이 지금 나타난 것이라 말씀하신다. 대요설이 다보불을 친견하고 싶다고 하자 세존께서는 시방세계에 흩어져 법을 설하는 자신의 모든 분신이 모여야 비로소 다보불을 친견할 수 있다하시며 세존의 분신을 왕사성 기사굴산에 모이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그 때 부처님의 미간 백호상에서 한 줄기 광명을 놓으시니, 동방에 있는 무수한 국토의 부처님 설법하시는 모습이 보이며, 무수한 보살들이 중생을 교화하시는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사바세계는 그대로 청정한 국토로 바뀌게 된다. 그 때 부처님의 모든 분신이 사바세계 기사굴산에 모이신다. 비로소 석존은 손가락으로 다보탑을 열고 다보불은 그 속에서 깊은 선정에 들어 계시다가 석존의 법화경 설법을 증명하시며 자리를 반반으로 나누어 앉으신다. 그리고 두 분이 동시에 진리를 펼치신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은 법화경의 견보탑품에서 유래한다.


석가탑은 국보 제21호이며, 본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이다. 다보탑은 국보 제20호로 본래 이름은 ‘다보여래상주증명탑’이다. 법화경 견보탑품의 내용으로 석가모니불이 법화경을 설하자 과거불인 다보불이 그 설법을 증명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석가탑 아래에는 사방에 여덟 개의 연화좌가 있는데 이것도 견보탑품에 석존이 자신의 분신을 팔방에 앉게 한다는 내용에서 유래한다.


지금 용산의 국립박물관 중앙에 있는 경천사 석탑과 종로에 있는 국보 2호인 원각사 석탑에도 견보탑품에 나오는 칠보탑이 허공에 솟는 장면과 두 분의 부처님이 자리를 나누어 앉으시는 이불병좌상(二佛坐像)이 있다. 앞의 장면은 법화회상도라 하며, 후자는 다보회상도라 한다. 이렇듯 견보탑품의 내용은 우리 민족의 찬란한 문화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민족의 가장 아름다운 문화유산 중에 하나인 석가탑이 지난 9월말 창건된 지 1000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최초로 전면 해체 복원에 들어갔다. 해체·복원은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경주시에 의해 추진되며, 2014년 12월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석탑의 전면적인 해체 수리는 물론이고 석탑의 하부 지반도 조사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석가탑은 다보탑과 함께 신라 경덕왕 10년(751) 김대성이 건립했다. 1966년 석가탑 해체 때 사리공에서 나온 중수기에 따르면, 석가탑은 고려 현종 15년(1024)과 정종 2년(1036), 정종 4년(1038)에 각각 대규모 지진 피해를 봤다. 이때 석탑 상당 부분이 무너졌고 현재 보는 석가탑은 복원 과정을 거친 것이다. 조선 선조 20년(1596)에는 우레에 상륜부가 파괴되었고, 400년 가까이 지난 후인 1970년 남원 실상사 삼층석탑을 모델로 복원한 것이다. 1966년 석가탑 도굴 미수사건으로 탑이 훼손되어, 부분 보수할 때 당시 사리공에서 세계 최고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석가탑 중수기’가 발견되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석가탑, 신라의 타임캡슐
 

▲법성 스님

문화재 발굴 전문가들에 따르면 석가탑 사상 최초의 전면 해체 복원에서 당시 신라의 풍습상 땅속에 신라인들의 장신구나 허리띠 장식, 관식(冠飾)등 다수의 매장품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야말로 석가탑은 ‘신라의 타임캡슐’이다. 이번 복원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우수한 불교문화를 알려주기를 크게 기대해 본다.


법성 스님  법화경 연구원장 freewheely@naver.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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