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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먹고 사는 사람들

기자명 법보신문

역사가란 까놓고 말하면 과거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필자 또한 역사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언저리에서 다소 송구스럽게 생계를 꾀하고 있는 축이다.


그런데 과거를 통해 먹고 사는 부류가 또 있다. 노인세대들이다. 황혼을 맞은 이분들은 앞으로 살아갈 일보다는 지나간 날들이 많기에, 인생의 새로운 설계보다 과거의 삶을 갈무리하는 데 오히려 더 많은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지나온 삶이 길었고 남은 삶이 짧다는 것은 앞으로 지어야 할 과보의 업보다 이미 쌓인 과보의 업이 더 많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노년에 들면 자신의 과보를 헤아려 보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미래에 내가 쌓을 공덕보다 과거에 쌓은 공덕의 비중이 너무 크기에.


역사가가 과거를 캔다면 노인은 과거를 되새김질 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과거로 돌아가려는 부류도 있다. 자신이 영광을 누리던 찬란한 과거를 잊지 못해 오로지 과거의 영광에 매여 사는 사람들이다. 나아가 그 영광의 기억들을 현재와 미래세대에게 영원히 기억하고 기념할 것을 강요하는 부류가 있다.


6.25나 월남전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이들이 이제는 80세를 넘긴 할아버지가 되어 훈장을 주렁주렁 단 군복을 입고 태극기를 들고 집회에 나선다. 빨갱이로부터 목숨 걸고 대한민국을 지켰는데 이제 와서 대한민국은 ‘빨갱이천지’가 되었다고 통탄하신다. 이분들에게 있어 대한민국이란 자신들의 반공투쟁에 의해 지켜진 나라에 지나지 않는다. 반공투쟁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 자신들이 타인에게 ‘공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큰 가치이기에 반공은 그들에게 불멸의 가치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무엇보다 반공만을 으뜸의 가치로 존재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들의 조국은 대한민국이 아니고 반공이다.


이른바 박정희 시대에 젊은 날을 불태우며 열심히 살았던 분들도 이제는 노년이 되어 새삼 박정희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건만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아무도 자기세대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소외감이 커지고 있다. 과거 아버지세대가 누렸던 가부장의 권위도 사라지고 있다. 장남이라면 당연히 부모를 모시던 풍조마저 흔들리고 있다. 애써 길렀던 아들은 며느리 눈치를 살피고 자신은 그런 아들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가는 처지가 새삼 서글플 뿐이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허덕이는 자식 내외를 보면 함께 살기도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노인의 위한 복지는 아직도 먼 남의 나라 일이다. 지하철을 타노라면 노인들이 손자뻘 되는 녀석과 자리다툼을 하는 말세의 꼴에 차라리 눈을 질끈 감고 싶을 뿐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분들에게 과거란 ‘좋았던 옛 시절’로 더욱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여기에 누군가가 속삭이고 있다. ‘어르신! 어르신들은 더 이상 초라한 노인이 아닙니다. 님들이야말로 박정희각하와 함께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일군 위대한 조국근대화의 기수입니다’라고.


박정희향수는 이렇게 해서 다시 과거로부터 불려나와 현재의 시대 이념으로 노인들과 함께 부활하고 있다. 본디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이분들께 이러한 유혹은 너무나 강력하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노인을 위한 나라를 만들려는 데에 관심이 없다.

 

▲박한용 연구실장
과거에도 한창 때의 이들을 산업전사라 추켜세우면서 정작 부와 권력은 자기네들끼리 챙겼던 그룹의 후계들이 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노인이 된 이들에게 배팅을 할 따름이다. 그러면서 낡은 가치를 되살리려고 한다. 노인에게는 살아야 할 미래가 짧기에 오히려 과거보다는 더 나은 미래의 삶을 긴급하게 마련해 드려야 하건만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라며 사이비 ‘청춘의 샘’을 팔아먹는 정치배들의 꾐이 가증스럽기만 하다.


박한용 phyk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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