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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아잔타 승원굴이 불상 사당굴로

스님들 집회 공간이 경배처로 변화

초기엔 예배·승원 분리
시간 흐를수록 경계 모호
거주 독방도 부처님 조성
인도 전통종교 영향 받아

 

 

▲ 그림1. 불상 사당이 된 승원굴. 안마당 공양 공간 ‘만다파’. 11굴.(좌), 그림2. 아잔타 11굴 평면. 속 사당방과 안마당 네 기둥 만다파.(우)

 

 

전편에서 본대로 불과 다섯 개의 예배 탑당굴과 거주 승원굴로 시작한 조용했던 초기 아잔타 석굴은 5세기 후반 바카타카 왕국에서 총 29개 굴을 연이어 파는 대대적 역사를 벌였다. 그 전까지는 없던 부처님 형상이 석굴을 휩쓸게 되는, 이름하여 대승불교라는 큰 변화를 가져온다. 민짜였던 초기 스투파와는 달리 불상 합체 스투파의 화려한 예배 탑당굴 19굴 26굴 두 개를 판 것과 마찬가지로, 스님 거주 독방들의 승원굴도 불상을 중심에 모시게 계획하여 죽 파나갔다. 즉 승원굴 뒷벽 제일 속 깊숙이 별도로 사당을 파서 불상을 모시기 시작한다(그림1).


후기 첫 시작을 초기의 탑당굴 10굴과 승원굴 12굴 사이 공간 암벽에 11굴을 팠다. 계단을 몇 단 올라가 전면에 기둥이 있는 전면 베란다를 들어가면 예의 독방군으로 둘러싸인 안마당이 나오고, 뒷벽 한 가운데 독방 하나를 잡아 더 깊이 파고 그 속에 불상을 모셔 사당방으로 만들었다. 지난 18편의 담나르 석굴과 바그 석굴에서 본 것처럼 사당방 안에 모시는 것은 똑 같되, 스투파 대신 불상을 모신 점만 다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안마당 한 가운데 자리 잡은 네 기둥의 공간이다(그림2). 지난 20편, 나식 굴의 사당 앞 돗자리 같은 사각 단에서 발전한 사당 앞 경배 공간 ‘만다파(mandapa)’이다. 초기 승원굴에서는 사방을 두른 독방들로 된 스님 개인 거주 공간으로부터 집회가 필요할 때 가운데 안마당은 나와 모이는 공동 공간이었다. 그런데, 불상을 모시는 사당이 만들어지면서 안마당은 한 가운데 공동 집회공간이자 동시에 불상 사당 앞 경배공간이 되었다.

 

 

▲ 그림3. 힌두 신전 지성소 앞 원형 단 만다파 공양 공간. 키라두 폐허 사원. 라자스탄. 6~8세기.

 


원래 무색의 종교 불교에서는 부처님도 사후 당신께 경배를 하지도 말라고 신신당부했었고 따라서 부처님께 따로 경배할 공간은 필요 없었다. 생전 스승에 대한 존경의 인사 즉 인도 전통의 ‘나마스떼’ 합장으로 충분하였을 것이다. 별다른 종교 의례가 필요 없었던 초기의 사색 종교 불교가 대승불교가 되면서 점차 중요해진 제반 의례의 방식을 바라문교로부터 빌려오게 된다. 석가모니 제자에는 바라문들이 많았던 것도 한 원인일 것이나 인도 재래 전통의 뿌리가 그만큼 깊었음을 알 수 있다. 불교는 점차 바라문의 예배 ‘뿌자(puja)’ 곧 한자 번역어 ‘공양(供養)’을 도입하게 된다. 우리 불교에서 ‘공양’은 주로 음식을 바치는 발우 공양으로 축소되어버렸지만, 뿌자는 꽃, 차, 향, 등불, 과일을 신에게 바치는 종교의례 행위인데 선행 문명 이집트에서도 행해졌었고 현재 힌두교 신전에서도 중요하게 행해진다. 다만 불교에서는 가축을 잡아 바치는 희생제만은 제외되었다. 만다파 공간은 바라문교 즉 현재 힌두교에서도 신에게 바치는 노래와 춤의 공간으로 더 유용하다(그림3). 바로 인도 음악과 무용의 산실이다. 불교 음악 범패(梵唄)와 승무는 인도 바라문교 기원이다. 바라문교로부터 독립하였던 불교가 의례가 중요시 되며 결국 바라문교로 점차 동화되어가는 과정의 하나이다.

 

 

▲ 그림4. 불상 사당. 20굴.                                                 ▲ 그림5. 불상 사당. 20굴 평면.

 


석굴 중 20굴 불상 사당은 좀 특이하다. 뒷 벽면에 아예 거주 독방들 없이 사각 상자모양의 사당만 앞으로 튀어나오게 팠다(그림4, 그림5). 사당이 벽 속에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사각 상자로 드러나서 “나 사당이야”하고 외치는 것 같다. 아마 불상 사당 중 초기에 속한 것으로 보인다. 사당 전면 좌우 쌍기둥은 진입 통로이면서 동시에 신성성을 강조하는 장치이다. 벽 부착 기둥까지 합하면 네 기둥이 된다. 스핑크 박사는 바위 결함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상자 식으로 만들어 앞으로 튀어나왔다고 하는데, 너무 사물적인 해석으로 보인다.


아잔타 석굴은 조용히 관광하기가 쉽지 않다.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보니 단체 관광객을 비롯하여 사람들 무리가 끊이지 않는다. 굴속은 어두컴컴하여 사진 찍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노출을 아주 많이 줘야하는 굴속에서 디카 사진은 나중에 보니 흔들려서 대부분 실패했다. 아잔타 석굴 대부분을 차지하는 승원굴은 네기둥 안마당 만다파의 11굴 확대판으로 보면 된다. 기둥도 많아지며 훨씬 넓어진다. 즉 제일 속에서부터 불상을 모신 사당방, 그 앞에 독방으로 사방 둘러싼 안마당 가운데 공양 공간 만다파, 그리고 입구 전면 베란다로 구성되어 정형화 되었다.

 

 

▲ 그림6. 여러 기둥들로 둘러싸인 안마당 만다파 공간. 4굴.

 


점차 규모가 커져서 제일 큰 4굴은 무려 한 변이 8개의 기둥으로 둘러싸인 드넓은 만다파 광장이 형성된다(그림6). 만다파는 사방 18m의 공간이 된다. 안마당은 한 변이 무려 26m나 되는 큰 공간이다. 지금은 단체 관광객이 안내원 설명 듣기에 제격인 공간이 되었다(그림7). 4굴은 평수로 무려 300평이 넘는 큰 석굴이다.

 

 

▲ 그림7. 불상 사당 앞 안마당 만다파 공간에서의 집회. 관광 안내원의 설명. 6굴.

 


자, 그런데 아잔타 석굴의 불상을 모신 승원굴의 분류 호칭에 문제가 생긴다. 초기 석굴은 스투파를 모신 예배굴(차이탸)과 스님 거주 독방군의 승원굴(비하라)로 분리되었다. 그런데 승원굴 속에 별도 사당을 만들어 불상을 모시고 예배를 하게 되니 이 굴들을 승원굴이라 계속 불러도 될까 아니면 불상 예배굴로 불러야 할까 혼돈이 생긴다.

 

▲이희봉 교수

그래도 어쨌든 아직까지 아잔타 석굴에서는 다만 속에 불상을 모셨다고는 해도 스님들의 승원굴, 독방 거주 위주라고 해석해도 좋다. 그런데 다음에 볼 세계문화유산 엘로라 석굴 역시 안마당 빙 둘러 독방에다가 승방 대신 불상들을 빙둘러 즐비하게 모시게 된다. 형태는 승원굴이되 내용은 완전 예배굴로 바뀌는 모습을 보기로 하자. 인도 석굴 사원에서 불상이 등장했으나 그래도 스투파와 승원이 여전히 중심역할을 한다.


이희봉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hblee@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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