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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불교 상빠꺄규 전승자 까루 린포체

자신 이해하고 타인 배려하는 ‘유연한 마음’이 자비의 토대

불교는 사회 속 균형 잡고
자비·연민 키우는 가르침

 

타인에 대한 친절 통해
자기 통제력 높여갈 때
수행도 함께 깊어질 것

 

 

▲까루 린포체.

 

 

불교는 그저 제도로서 존재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반대로 영성을 수행하는 길만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균형을 잡는 과정입니다. 또한 우리 안에 있는 덕성을 찾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를 잘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참자아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불교의 길입니다.


불교에서 궁극적으로 찾는 것은 우리 마음의 균형, 평정심입니다. 마음의 균형이 깨지면 삶도 흐트러집니다. 균형을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불자들 중에는 더러 감정에 대해 부정적인 것이라 여기는 분들도 계십니다. 감정을 없애야 할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감정에 대해 잘 이해하게 되면 그것은 긍정적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감정은 무조건 거부해야할 대상이 아닙니다. 수행자들 중에는 자신이 집착, 질투, 무지와 같은 큰 문제를 갖고 있다며 스스로를 질책하고 이를 없애기 위해 특별한 수행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특별한 것이 있을까요. 불교의 가르침은 대부분 현실적인 것들입니다. 저는 4년 정도 전 세계를 다니며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18세가 될 때까지는 사원에서 교육을 받고 수행을 했습니다. 그것은 매우 전통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때와 비교해 지금 지나치게 전통에서 벗어난 언행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거나 믿음을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 종교는 천 년 전 이천 년 전에 생겨났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전통적인 방식의 믿음을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천 년 전, 이천 년 전의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의 균형을 잡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세간의 지식이나 재산 이런 것들에 대한 균형을 잡는 것도 어렵지만 마음의 균형을 잡는 것은 더욱 중요하고 어렵습니다. 물론 저에게도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고통이 가득한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하면 나 아닌 모든 중생들에게 자비와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겠냐고 묻습니다. 그것은 글자나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쉬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자비나 연민이라는 것도 결국은 자기 자신의 입장과 견해의 틀 안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자신의 경험을 존중하고, 자신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 가장 핵심입니다.


고통스런 삶 속에서 자비와 연민의 덕성스런 마음을 지니기 위해서는 매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수행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법문을 듣는다고 해서 이러한 덕성이 자신의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법문을 듣고 책을 통해서 알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가장 큰 오해 중 하나입니다. 물론 책은 많은 정보를 줍니다. 하지만 그 정보가 자신의 것이 되려면 수행이 병행돼야 합니다. 마음의 덕성을 발견하려면 수행을 해야 하고 수행을 통해 자신 안의 덕성을 발견할 때 비로소 자신을 존중할 수 있게 됩니다.


불교는 부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발견해가는 과정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수행이라는 도구가 필요합니다. 수행을 하기위해 신심을 키우고 정진하며 스스로를 관찰하고 자비심을 넓히는 등 여러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노력을 계속하다보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이해하게 됩니다. 그 다음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불법이 곧 삶이 됩니다.


저 역시 무문관에서 수행할 때 자비와 연민을 키우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루의 60% 이상을 마음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 무관심하거나 혹은 일부러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몰랐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본다는 것은 그와 같이 통제력을 잃는 횟수를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을 알아 차리는 것, 타인에 대해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에서부터 자비와 연민은 시작합니다. 타인에 대해 정직하고 친절하게 행동하는 것, 그것을 통해서 자신에 대한 조절력을 높여갈 때 수행의 발전도 함께 합니다.


여러분들이 고통스런 삶 속에서도 모든 중생에 대해 자비와 연민의 마음을 키워가고자 한다면 삶에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격한 반응을 자제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연습을 통해 자비와 연민의 덕성들을 계발해 나갈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노력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나의 마음을 보면서 덕성을 계발하기 위해 수행을 합니다. 감정이 올라올 때 감정을 집중해서 보는 것이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수행자들이 기도는 열심히 하지만 마음의 투영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의 투영을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화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을 통해 한 번은 저의 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화는 저 자신이 아니고 내 마음의 투영일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긍정적인 것도 아니고 부정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억압하고 무관심하게 묻어두어야 할 것도 아니었습니다. 화가 진짜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화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비난하고 모든 것을 파괴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런 마음을 보고 그것이 스스로 융해되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습니다. 이렇게 단순하게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는 명상이 좋은 명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수행할 때 안내를 따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의 가르침을 따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에게 적절한 수행법을 안내해줄 스승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수행에 관한 나름의 목표에 따라 자신만의 수행법을 만들어 궁극에는 혼란에 빠지기도 합니다. 수행을 지도해줄 스승과 스승의 안내를 받아 수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스승 없이 자비와 연민을 계발하고자 할 때 그것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책은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스승의 지도를 받을 때 보다 유연한 마음을 갖고 자비와 덕성을 계발할 수 있으며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유명세를 따르지 않고 단순 소박하게 살면서 수행의 길로 안내줄 분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꾸준히 자신의 자비와 덕성을 계발하는 분을 찾아 그 자비와 덕성을 배우고 삶의 책임을 등지지 않으며 계속해나가다 보면 덕성스런 마음이 계발될 것입니다.


명상 수행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삶은 바쁘지 않아도 마음은 늘 바쁩니다. 삶에서 휴식은 가능합니다. 특정 시기에 삶의 일들로부터 쉬는 것은 가능하지만 마음의 투영을 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마음을 쉬고 싶다고 해서 바로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마음의 투영 속도를 느리게 해야 합니다. 몸으로 하는 수행, 신심으로 하는 기도수행을 통해 마음의 속도를 늦췄을 때 비로소 마음을 보는 수행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불자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저를 불자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불자가 된다는 것은 불법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또한 종교적인 철학이나 견해에 대해 유연해야 하고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타인을 이해하고 유연한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그것이 자비의 바탕이 됩니다. 불교는 깨달음이다, 혹은 온 세상에 자비와 연민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라는 추상적인 생각보다는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부터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 법문은 지난 10월16일 조계사 대웅전에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자비’라는 주제로 설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까루 린포체는 티베트불교 4대 종파 가운데 하나인 까규파의 지파인 샹빠까규의 수장이다. 1989년 입적한 1대 까루 린포체의 환생자로 여겨진다. 1990년 내어났으며 1대 까루 린포체의 제자였던 시뚜 린포체에 의해 발견돼 달라이라마, 민링틴진, 사캬티진 등 티베트불교 4대 종파의 수장과 법왕으로부터 환생자로 인가받았다. 2008년 3월 티베트불교의 전통에 따라 3년간의 무문관 수행을 마친 후 전법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2대 까루 린포체는 페이스북, 아이폰 등 현대인들에게 맞는 방식을 적극 활용한 전법으로 화제가 되기도 한다.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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