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난국의 전환
20. 난국의 전환
  • 법보신문
  • 승인 2012.11.15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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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도와 고승들 도력으로 난제를 해결하다

승려 용천은 향가를 지어
혜성 두려움 희망으로 바꾸고


궁에 떨어진 큰 별의 불길함
불 붙인 연 날려 반란군 진압

 

 

▲신라와 당이 백제를 공격하려 했으나 진영 위에 새 한마리가 맴돌자 소정방은 불길한 생각에 머뭇거렸다. 그러나 김유신의 확신에 압도당한 소정방은 백제를 공격했고 부여 정림사 5층탑에 자신의 공적을 새겼다. 사진은 부여 정림사 전경.  문화재청 제공

 


살다보면 바람 불고 비 오는 날도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파도가 몰아칠 때도 있다. 위기가 닥칠 때도 있고, 어려움에 봉착하여 난감할 때도 있다. 닥쳐오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며 어려운 난국을 어떻게 전환시킬 수 있을까? 진정한 지도자의 능력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드러나는 법이다.


진평왕(579~632) 때다. 거열랑(居烈郞)·실처랑(實處郞)·보동랑(寶同郞) 등 세 화랑의 무리가 금강산을 유람코자 하는데 혜성이 심대성(心大星)을 범했다. 화랑의 무리들은 이것을 의아하게 여겨 여행을 그만 두려고 하였다. 혜성은 흔히 불길한 징조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기에. 이때에 승려 융천(融天)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


‘옛날 동해 물가/ 건달바가 놀던 성을 바라보고/ 왜군도 왔다고/ 봉화를 든 변방이 있구나./ 세 화랑의 산 구경 오심을 듣고/ 달도 부지런히 등불을 켜는데/ 길 쓸 별을 바라보고/ 혜성이여! 사뢴 사람 있구나./ 아, 달은 저 아래로 떠나가 버렸더라./ 이 보아 무슨 혜성이 있을꼬./’


향가 혜성가(彗星歌)다. 융천은 노래했다. 화랑의 산 구경을 위해 달은 등불을 밝히듯 비추고, 혜성은 화랑이 가는 길을 깨끗이 쓸어주기 위해 온 것이라고. 고대의 점성가 신수(申須)는 말했다. 혜성은 옛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퍼뜨린다고. 혜성은 빗자루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혜성의 출현은 옛 것이 없어지고 새로운 일이 나타날 것을 상징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노래가 끝나자 별의 괴변은 사라지고 일본군사도 제 나라로 돌아가매 도리어 경사가 되었다고 한다. 진평왕 29년(607)에 핼리혜성이 나타났던 사실에 유의하면, 아마도 이 무렵의 일이었을 것이다. 혜성이 사라지자 대왕은 기뻐하여 화랑들을 풍악산으로 보내어 유람하게 했다고 한다. 승려 융천은 향가를 지어 혜성의 불길함을 오히려 희망으로 바꾸었다. 능히 천지귀신도 감동시킬 수 있는 노래의 힘이자 고승의 도력이었던 셈이다. 하늘의 별까지도 세상으로 와서 그대들이 가는 길을 쓸어 주려한다는 격려에 화랑은 크게 고무되었을 것이다.


선덕여왕 16년(647)은 왕의 말년이자, 진덕여왕의 원년이다. 대신 비담과 염종 등은 여왕이 정치를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군사를 동원하여 난을 일으켰다. 왕은 궁 안에서 이들을 방어했다. 비담 등은 명활성(明活城)에 주둔하고 왕의 군사는 월성에 진을 친 채 공방전을 계속했다. 열흘이 되어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어느 날 한밤중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졌다. 비담 등은 사졸들에게 말했다.


“별이 떨어진 자리에는 반드시 피가 흐른다는 말이 있으니, 이는 여왕이 패전할 징조이리라.”


이를 들은 병졸들의 함성이 천지를 흔들었다.


대왕은 이 말을 듣고 몹시 두려워하였다. 이때 김유신이 왕을 뵙고 말했다.


“길흉에는 일정한 법칙이 없으니 오직 사람이 하기에 달렸습니다. 덕은 요사한 것을 이깁니다. 별의 변괴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소서.”

유신은 말을 마치고 허수아비를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불을 붙여서 연에 실어서 띄워 보냈다. 이는 마치 별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다음날 그는 어제 밤에 별이 떨어졌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소문을 내게 하여, 적들로 하여금 이것이 사실이라고 믿게 하였다. 유신은 또한 백마를 잡아 별이 떨어진 자리에 제사를 지내면서 다음과 같이 기원하였다.


“천도에는 양이 강하고 음이 부드러우며, 인도에는 임금이 높고 신하가 낮습니다. 만일 이 순서를 바꾸면 큰 변란이 일어납니다. 지금 비담의 도당이 신하로서 임금을 모해하며,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을 범하니, 이는 이른바 난신적자(亂臣賊子)로서 사람과 신령이 함께 미워할 일이요,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못할 일입니다. 지금 하늘이 이에 무심하여 도리어 별의 변괴를 왕성에 보인 것이라면, 이는 신이 믿을 수 없는 일이니 사실을 알 수 없습니다. 하늘의 위엄으로서 인간이 소망하는 대로, 선을 선으로 여기고 악을 악으로 여기게 하여, 신령을 탓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김유신은 장졸들을 독려하여 분연히 돌격하였다. 비담 등은 패하여 도망하였다. 유신은 그들을 추격하여 목을 베고 구족을 멸하였다. 이렇게 비담의 난은 진압되었다.


길흉에는 정해진 법칙이 없고 사람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는 김유신의 확신과 허수아비에 불을 붙이고 그것을 연에 실어 하늘로 날려 보내면서 땅에 떨어졌던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소문을 내게 하는 그의 기지야 말로 위기를 승리로 바꾼 계기가 되었다.


660년 7월12일 당나라 군사와 신라 군사는 백제 왕경을 공격하기 위해서 소부리벌로 나아갔다. 그러나 소정방은 꺼리는 바가 있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김유신이 이를 달래어 두 나라 군사가 용감히 싸워 함께 사기를 떨쳤다. ‘삼국사기’의 이 기록만으로는 왜 소정방은 진격을 꺼렸고, 김유신은 소정방을 어떻게 설득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다음 기록으로 이 의문은 풀린다.


당나라 군사와 신라 군사가 함께 전진하여 진구(津口)에 이르러 강가에 군사를 주둔시켰다. 이때 갑자기 새 한 마리가 소정방의 진영 위를 맴돌았다. 소정방은 사람을 시켜서 점을 치게 하니, 반드시 원수가 상할 것이라고 했다. 소정방이 두려워하여 군사를 물리고 싸움을 중지하려고 했다. 김유신이 소정방에게 말했다.


“어찌 나는 새의 괴이함으로써 천시(天時)를 어긴단 말이오. 하늘의 뜻에 응하고 민심에 순종해서 극히 어질지 못한 자를 치는데, 어찌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겠소.”


이에 신검(神劍)을 뽑아 그 새를 겨누자 새는 몸이 찢어져 그들의 자리 앞에 떨어졌다. 이에 소정방은 백강 왼쪽 언덕으로 나와서 산을 등지고 진을 치고 함께 싸우니 백제군이 크게 패했다. 소정방이 두려워하며 진격을 꺼렸던 것은 진영 위를 맴도는 새를 불길한 징조로 믿었기 때문이고, 김유신이 신검으로 그 새를 처리한 뒤에 함께 공격했다는 것이다. 김유신의 확신은 소정방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불길한 점괘에 겁먹은 소정방
김유신의 신검으로 달래고


이상한 꿈에 겁먹은 김경신
지혜로운 해몽에 왕위 올라


문무왕 원년(661) 5월11일부터 6월22일까지 40여 일을 고구려 및 말갈의 군사가 신라의 북한산성을 포위 공격했다. 신라 군사는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김유신은 사람의 힘이 다했으니, 음조(陰助)를 빌어야 한다고 하면서 절에 나가 단을 설치하고 기도했다. 갑자기 큰 별이 적진에 떨어지고 천둥과 벼락이 치면서 비가 왔다. 이에 적이 포위를 풀고 물러갔다. 물론 ‘삼국사기’의 이 기록과 ‘삼국유사’의 기록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유신이 성부산(星浮山)에 단을 설치하고 신술(神術)을 다스리자 갑자기 큰 독만 한 광채가 단 위에서 솟아나더니, 별이 날아서 북쪽으로 갔고, 그 광채가 벼락불이 되어 포석(砲石) 30여 대를 쳐부수자 적이 흩어졌다는 것이다. 김유신은 가끔 절에서 기도를 드렸다. 고구려 국경을 뚫고 당나라 군사에게 군량을 수송하는 지극히 어려운 임무를 맡게 되었을 때도 그는 현고잠의 수사(岫寺)에서 기도했다. 이처럼 그는 사람의 힘을 다하고도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기도했다.


김주원(金周元)이 상재(上宰)가 되고 김경신(金敬信)이 차재(次宰)에 있을 때의 일이다. 김경신이 꿈을 꾸었다. 어느 날 그는 복두(頭)를 벗은 채 흰 갓을 쓰고 십이현금(十二絃琴)을 들고 천관사(天官寺)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이상한 꿈이었다. 꿈을 깬 김경신은 사람을 시켜 점을 쳤다.


“복두를 벗은 것은 관직에서 떠날 징조요, 십이현금을 든 것은 칼을 쓰게 될 조짐이며, 우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옥에 갇힐 징조입니다.”


경신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근심하여 문을 닫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 때에 아찬 여삼(餘三)이 와서 뵙기를 청했다. 경신은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여산이 뵙기를 다시 청하자 경신은 허락했다. 여산이 물었다.


“공은 무슨 일로 근심하십니까?”


경신이 꿈을 점쳤던 일을 자세히 말하니, 아찬은 일어나 절하면서 말했다.


“그것은 좋은 꿈입니다. 공이 만일 왕위에 올라서 저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공을 위해 꿈을 풀어보겠습니다.”


경신은 이에 좌우의 사람을 물리치고 해몽하기를 청했다. 여산은 말했다.


“복두를 벗은 것은 면류관을 쓰게 될 징조요, 12현금을 든 것은 (내물왕의) 12세손이 대를 이을 징조며, 천관사 우물로 들어간 것은 궁궐로 들어갈 길조입니다.”


경신이 말했다.


“내 위에 주원이 있으니, 어찌 윗자리에 앉을 수 있겠소?”
“비밀히 북천신(北川神)에게 제사지내면 좋을 것입니다.”


경신은 그대로 따랐다. 김주원이 즉위하는 날이었다. 그날 갑자기 비가 오고 북천물이 불어 주원은 건널 수가 없었다. 김경신이 먼저 궁궐에 들어가 왕위에 올랐으니 곧 원성왕이다. 역시 꿈보다 해몽이다. 해몽은 중요하다. 해몽을 잘 해야 한다.

 

▲김상현 교수

누구나 악몽을 꿀 수도 있고,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악몽까지도 길몽으로 풀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자라야 진정한 지도자일 것이다. 


김상현 교수 sanghyun@dongguk.edu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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