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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각묵 스님

‘오온’ 명확히 모르면 ‘아트만’ 세울 가능성 높다

확철대오 자신에 중퇴 후 출가

7년 정진 속 진전없자 인도행

 

먹이 찾는 돼지새끼 몸부림에

‘윤회’ 무서움 알고 교학 매진

 

 

▲각묵 스님

 

 

화두가 끊이지 않았다. 자다가 깨어나면 화두부터 챙겨졌다. 남모를 믿음과 확신이 생겼다. ‘화두 하나만 타파하면 깨달음에 이른다 하지 않았는가!’ 선방에서 한 달만 밀어붙이면 생사는 곧바로 뛰어 넘을 것만 같은 충만감이 전해져 왔다. 대학교 3학년 1학기 때의 일이다. 송광사 여름수련대회 참가 후 화엄사 도광 스님을 은사로 삭발염의 했다. 부산대학교의 여정은 그걸로 끝이다.

 

화두타파 원력이 출가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지만 단초는 중학교 3학년 때 맞이한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허망감에 갈 길을 잃었다. 당장 의지해야 할 게 있어야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철학책을 뒤적였다. 그러던 중 불교를 만났다. 사막에서 쓰러지기 직전에 찾아 낸 오아시스와 같았을 터!

 

대학 불교학생회에 가입해 불자로서의 삶을 지어가기 시작했다. 교화부장을 맡았던 그는 수업 전에 매일 예불과 함께 금강경을 독송했다. 회원들의 교리공부도 그의 몫이요, 법사 초청도 그의 몫이었다. 자연스럽게 부산과 경상남북도의 ‘큰스님’을 친견하게 됐다.

 

어느 날 삼묵 스님을 친견했다. 전율이 일었다. ‘도인이란 이런 모습이구나!’ 그의 법기를 이미 간파했던 것일까? 삼묵 스님은 신심명과 증도가, 육조단경을 가르쳤다. 기본 교리는 이미 터득했을 것이라 본 삼묵 스님은 선의 세계로 그를 안내했던 것이다. ‘무(無)’자 화두를 받았다. 화두는 수지 직후부터 성성하게 들렸다. 전생 인연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전공하고 있던 수학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법담’이 아닌 일반적인 ‘대화’는 식상했다. ‘뭔가 그 동안 속고 살아온 것’만 같았다. 출가에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그에게는 그랬다.

 

군 복무를 마친 후 구산 스님이 주석하고 있던 송광사 선원에 입방해 가부좌를 틀었다. 벼르고 벼르던 일을 이제야 시작하게 된 것이니 그 선열감은 각묵 스님 자신만이 감지했을 터. 그러나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화두가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화두는 들리지 않고 졸음만 쏟아져 내렸다. 구참 수좌에게 물어보니 오후불식 하면 좀 나아질 것이라 해 실행에 옮겼다. ‘배고프니 잠은 오지 않았다’고 한다. 7년의 세월이 다 되어 갔지만 확철대오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졌다.

 

그 즈음, 활성, 철오, 함현 스님을 만났다. 초기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기 시작했다. 이원섭 시인이 번역한 마쓰다니 후미오의 ‘아함경’과 ‘불교개론’을 접한 것도 세 스님의 인연 덕이었다. 어느 날 함현(현 청주 관음사 주지) 스님이 가져온 월폴라 라훌라의 ‘부처님 가르침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서를 접했다. 이 책은 팔리 삼장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명료하게 서술해 놓은 명저다.

 

활성 스님은 각묵 스님에게 초기불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함현 스님 또한 초기불교 경전 번역의 원력을 세워보라 권했다. 철오 스님과의 토론을 통해 초기불교의 일면이나마 맛을 보고 있었던 각묵 스님은 자신을 다시 한 번 추스린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 물음에 접근했다. ‘부처님 가르침에서 불교를 갈무리 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며 자연스럽게 초기불교로 발길을 돌렸다. 1987년 칠불암 운상선원 하안거로 7년 동안의 선원 여정은 일단락 됐다.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인도유학을 결심한 각묵 스님은 서울 법련사에 머물며 영어공부에 매진한 후 1989년 3월 인도 유학길에 올랐다.

 

10년의 유학 내공은 최근에 와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미 ‘금강경 역해’를 비롯해 대림 스님과 함께 4부 니까야를 완역했다. 번역 작업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팔리 삼장을 모두 완역해 내겠다는 그의 원력에 비춰보면 말이다. 세미나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마음껏 내 보인다. ‘나는 알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서로의 ‘앎’을 공유하며 부처님의 진의를 함께 찾고 정립해 가자는 의지의 표현이다.

 

대승불교권에만 머물러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불교계에 젊은 각묵 스님의 이러한 왕성한 활동은 부처님 법에 좀 더 상세히 접근해 보려는 불자들에게는 가뭄 속 단비와도 같다. 이 단비가 한국불교사의 한 축을 흐르는 ‘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각묵 스님을 친견했다.

 

궁금했다. 화두를 내려놓고 초기불교라는 교학의 숲에 들어 간 각묵 스님이 진정 얻은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청정도론’을 통해 전한 붓다고사의 일언을 전했다. ‘윤회에서 두려움을 본다고 해서 비구라 한다.’

 

“강의 중에 이 말을 듣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윤회 또한 본래 없는 줄 알아야지,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는 게 비구라니요! 이러니 ‘소승’이라는 말을 듣는구나 했지요.”

 

이 때가 유학 3년째라고 한다. 한 때 화두를 들었던 선사의 기백으로도 들린다.

 

“그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돼지새끼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우기철이면 길은 엉망진창이 됩니다. 그 길 위에서 오물범벅이 된 채 먹이만을 찾아 이리저리 허우적대는 돼지새끼 한 마리. 나도 저렇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 뭐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단물만 쪽쪽 빨아 먹고는 다음 생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 들 저 돼지새끼와 뭐가 다른가!”

이 사념에 이끌린 각묵 스님은 그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발심했다. ‘공부하자. 제대로 해야 한다.’ 각묵 스님이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따로 있었음을 곧 알았다.

 

“우리 간화선 수행인 중에도 돈오를 잘못 이해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돈오 논의의 핵심은 깨달음이 실현되는 바로 그 시점입니다. 그 시점만 놓고 보면 ‘즉각’적입니다. 그 전에 몇 년을, 아니 몇 겁을 닦아왔든 깨달음의 실현 시간은 순간적인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행과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를 무시한 채 ‘깨닫기만 하면 된다’는 말을 너무도 쉽게 하는데 이는 단편적인 사고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윤회에 대한 교학적 접근을 철저하게 해 보지도 않고 ‘윤회 또한 본래 없는 줄 알아야 한다’고 했던 자신과 유사한 간화선 수행인이 지금도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무상, 무아, 고든, 무상, 무아, 공이든 이를 통찰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으면서 횡설수설하며 생과 세상의 찬미만 늘어놓는다면 이는 깨달은 체 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초기불교 해체적 방법론 통해

무상·고·무아 철관 노력 해야

 

불연 있어도 공부는 자기 몫

불법·수행방법 자신이 찾아야

 

 

▲각묵 스님은 “초기불교는 불교의 뿌리”라며 “초기불교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수록 대승불교 이해도 높아질 게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교학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음이다. 초기불교 프리즘이든, 대승불교 프리즘이든 나름대로의 불교 갈무리가 있어야 설법을 하고 수행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반문이다. 현 간화선 수행인들에게는 뼈아프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선원에서 7년 공부한 수행인의 일언이라면 귀 기울여 보아야 한다.

 

“초기불교의 핵심은 일단 해체해서 보기입니다. 물론 여기서의 궁극적 지향점은 개념 해체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오온으로 해체해서 보고, 일체 존재는 12처로 해체해서 보는 겁니다. 세계는 18계로, 생사문제는 12연기로 해체해서 보는 겁니다. 왜 해체해서 보는가? 무상, 고, 무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수행이라는 직관을 통해 무상, 고, 무아를 체득할 수 있겠지만, 일단 교학적 접근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 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불교는 그 방법으로 ‘해체’라는 무기를 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부처님은 ‘오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 ‘자아’, ‘아트만’이라는 고정불변 하는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오온을 설하신 겁니다.”

 

오온은 ‘반야심경’에도 나와 있는 대목이다. 무아를 설명하는 데 오온은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 아닌가. 초기불교에서의 오온 설명은 대승불교에서의 오온 설명과 다르다는 것인가?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분이 많다고 봅니다. 무아라 하지만 현실에서는 또 다른 ‘자아’를 전제한 ‘참 나’, ‘주인공’ 같은 개념들이 난무하고 있지 않습니까? 얼핏 보면 이는 또 다른 자아, 즉 아트만을 연상시킵니다. 대중설법을 위한 방편으로 이 말을 썼다 해도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말들은 아예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각묵 스님은 ‘마음’에 대한 이해도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초기불교 입장에서 보면 ‘마음’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이 또한 ‘오온’을 통해 여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색(色)은 ‘물질’이고. 수(受)는 ‘느낌’입니다. 단, 탐욕과 성냄은 여기에 속하지 않습니다. 상(想)은 인식입니다. ‘푸른 것도 인식하고 빨간 것도 인식’하는 그러한 인식입니다. 행(行)은 심리현상들의 무더기입니다. 복수로 표현됩니다. 단, 느낌과 인식(오온의 수와 상)은 제외합니다. ‘청정도론’에서는 52가지 심소법 중 느낌과 인식을 제외한 50가지 심소법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식(識)은 무엇일까요? 번역하기 참 어려운 대목입니다. 분별하는 식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신 것도 식별하고 쓴 것도 식별하는 식’입니다. 따라서 저는 ‘알음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식’은 마노(意), 마음과 같은 겁니다.”

 

교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있지만 오온의 마지막 ‘식’이 ‘마음’과 같다는 대목에서는 아연해지고 말았다.

 

“물론 이러한 ‘식’ 즉 ‘아는 작용’은 반드시 느낌의 인식과 심리현상(行)들과 같은 심소법들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용도는 차이가 납니다. 우리의 마음을 나타내는 술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역할이나 문맥에 따라 엄격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라고는 쓰지만 안심, 이심, 비심, 설심, 신심, 의심 등의 합성어는 팔리 삼장 어디에도 없습니다.”

 

각묵 스님은 ‘컵’하나로 이를 설명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우리가 컵 하나를 보았을 때 오온은 동시에 일어난다. 컵이라는 대상의 물질을 본 순간, 즐거운 느낌(受)이 일며 파란 컵(想)임을 인식하고, 소유해야(行) 한다는 것과 함께 ‘소유’의 식(識)을 최종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식’은 갖겠다는 ‘마음’을 낸 것과 같다는 말이다.

 

“이 때 조심해야 할 것은 이 ‘마음’도 조건발생이라는 것입니다. 감각이나 대상이라는 조건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거나 일어나는 마음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마음 또한 찰나생, 찰나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과 다른 어떤 단 하나의 법도 이렇듯 빨리 변하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나니, 그것은 바로 마음이다’ 하셨습니다. 더 이상의 마음에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적어도 불교적 측면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찰나생 찰나멸 하는 마음, 더욱이 그 변화 속도가 그 무엇보다 엄청나게 빠른 마음, 오온의 한 일부일 뿐인 마음을 두고 ‘닦고’, ‘찾고’할 게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참 마음을 찾자’, ‘청정심을 회복하자’고 한다. 방편으로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대중에게도 이러한 설명이 있은 뒤 써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각묵 스님의 지적처럼 ‘마음’이 어디 우리 몸 한 자리를 버젓이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인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초기불교는 불교의 뿌리입니다. 뿌리를 거부하고 나무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초기불교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수록 대승불교 이해도 역시 높아질 게 확실합니다.”

 

각묵 스님은 초기불교 전파가 ‘너무도 즐겁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늘 웃고 다닌다. 주위에서 ‘그만 좀 웃고 다니라’라는 핀잔(?)을 들을 정도란다. 각묵 스님을 친견하며 초기불교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부처님 뜻을 헤아려 보려 스스로 찾고 가름한 후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각묵 스님의 모습!

 

‘나는 지금 무엇을 가름하고 있는가?’ 불교와의 인연이 맺어졌다 해서 공부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부처님 뜻을 헤아려야 한다. 수행방법도 자신이 찾아 결정해야 한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일면 아닌가.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각묵 스님

경남 밀양 출생. 1979년 화엄사 도광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수지. 1982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수지. 7년 제방 선원 안거 후 인도로 유학. 10여년 간 산스크리트, 팔리, 프라크리트 수학. 인도 뿌나대학교 산스크리트어과 석사과정과 박사과정 수료. 현재 실상사 화엄학림 교수사 및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역·저서로는 ‘금강경 역해’, ‘초기불교 이해’, ‘아비담마 길라잡이’(대림 스님과 공역), ‘네 가지 마음 챙기는 공부’, ‘디가 니까야’, ‘쌍윳따 니까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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