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선사(俱胝禪師)는 누가 “무엇이 부처인가” 또는 ‘본래면목’에 대하여 물으면 한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그의 한 손가락은 번뇌 망념을 차단하여 본연의 자기 모습, 그리고 불성을 보게 하는 손가락이다.
이와 같이 구지화상은 손가락 하나로 깨달음을 성취하고자 하는 수행자들을 지도했는데, 이것을 일지두선(一指頭禪)이라고 한다. ‘구지수지(俱胝竪指, 구지선사가 손가락을 세우다)’ ‘구지일지(俱胝一指, 구지선사의 한 손가락)’라고도 한다.
일지두선과 구지선사에 대해서는 선종사서(史書)인 ‘전등록’ 11권과 ‘벽암록’, ‘무문관’, ‘종용록’, ‘선문염송’(552칙) 등 이름 있는 공안집 대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전등록’과 원오극근의 ‘벽암록’ 19칙에 있는 평창을 바탕으로 그 전말을 소개하고자 한다.
구지화상이 처음 암자에 머물 때였다. 어느 날 실제(實際)라는 비구니가 암자에 이르러 곧바로 구지화상 처소에 와서는 삿갓도 벗지 않은 채 주장자를 흔들면서, 좌선하고 있는 선상(禪床)을 세 번 돌고 나서 말하였다. “무엇이 본래면목인지 한마디 일러보시오. 그러면 삿갓을 벗겠소.” 그렇게 세 번을 반복해도 구지화상은 한마디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비구니는 그대로 가려고 했다. 이때 구지화상이 말했다. “이미 날이 어두웠는데 지금 어떻게 가겠소. 하룻밤 묵어가시지요.” 비구니가 다시 구지화상을 향하여 말했다. “한마디 일러보시오. 무엇이 본래면목인지? 그러면 묵어가겠소.” 그러나 구지화상은 여전히 한마디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결국 비구니는 암자를 떠났는데, 비구니가 떠난 다음 구지화상이 말하였다. “내 비록 대장부 모양을 하고 있으나 장부의 기백이 전혀 없도다.” 이렇게 탄식하고는 제방 선원에 선지식을 참방하고자 암자를 떠나려했다. 그런데 그날 밤 산신이 꿈에 나타나서 말하였다. “절대 이 산을 떠나지 마시오. 머지않아 대보살이 와서 화상을 위하여 법을 설해주실 것이오.”
다음날 과연 천룡(天龍)선사가 암자에 이르자, 구지화상은 예를 갖추고는 전날의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천룡(天龍)선사는 아무 말 없이 잠시 있더니 느닷없이 한 손가락을 세워서 구지에게 보였다. 그 순간 구지화상은 활연히 깨달았다. 그 후 구지선사는 수행자들이 도(道)를 물으러 찾아오면 오직 한 손가락을 들어 보였을 뿐, 다른 가르침은 없었다.
구지화상이 부재중일 때 사람들이 찾아와서 구지화상의 법에 대하여 물으면 시자(侍者)인 동자승은 얼른 한 손가락을 세워서 흉내를 내자 구지화상은 그 손가락을 잘라 버렸다고 한다. 입적에 즈음하여 구지화상은 대중들에게 “내가 천룡선사로부터 일지두선을 터득한 뒤로 일생동안 써도 다 쓰지 못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입적했다고 한다.
실제(實際)라는 비구니는 대단한 기백을 지녔다. 구지화상의 경지를 시험해보려고 짐짓 무례하게 삿갓도 벗지 않은 채 행동한 것인데, 선지(禪旨)가 없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경지와 기백은 시원찮은 비구도 엄두 못 낼 일이다. 두문불출, 쭈그리고 앉아서 본래면목에 대하여 참구했으므로 한마디 말해보라는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일지두선은 중국 천하에 유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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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