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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지음(行)

지음은 무명 조건으로 발생
몸·말·마음 영역으로 진행
후대 해석가들 업과 동일시

 

지음이란 무엇인가. 무명으로부터 시작되는 십이연기의 지분들 가운데 2번째에 해당하는 항목이다. 지음은 의식(識)의 조건이 되며 또한 그것 자체는 무명을 조건으로 발생한다. 지음이라는 용어는 맥락에 따라 다양한 쓰임으로 나타난다. 먼저 의식의 조건이 되는 용례로는 다음을 꼽을 수 있다. “이것은 어떤 것을 의도하고 어떤 것을 계획하고 어떤 것에 대해 습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의식을 확립시키는 바탕이 된다(SN. II. 65).” 여기에서의 지음이란 내면으로 짓는 의도와 계획과 잠재적 성향 따위를 가리킨다. 이것의 누적을 통해 의식이 특정한 방식으로 굳어진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십이연기를 해설하는 대부분의 경전에서는 지음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지음에는 이러한 세 가지가 있다. 몸에 의한 지음(身行), 말에 의한 지음(口行), 마음에 의한 지음(意行)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지음이라고 한다(SN. II. 4).” 이것을 통해 지음의 작용이 몸과 말과 마음이라는 세 영역에 걸쳐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몸으로 드러나는 습관적 성향이라든가, 말로써 드러나는 은밀한 의향이라든가, 마음으로 꿈틀대는 의도 따위가 그것이다. 이들을 조건으로 발생하는 의식이란 ‘여러 겹으로 덧씌워진 지음이라는 색안경을 통해 의식하거나 식별하여 아는 것’으로 묘사할 수 있다.


지음이란 무명에 기생하여 자라난다. 이것은 진리에 어두운 까닭에 품게 되는 내면의 정서와 감정을 망라한다.

 

예컨대 어떤 이유로 이웃 간에 다툼이 벌어졌다고 치자. 한번 뒤틀린 관계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앙금은 깊어만 간다. 마주칠 때마다 불쾌함이 더해 간다. 심지어는 이웃으로 산다는 자체가 불편하게 생각된다. 제발 이사라도 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절실해진다. 그런데 바로 그 이웃집 아줌마가 어렸을 적 헤어졌던 친누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그 동안 품었던 불쾌한 감정과 생각들이 한 순간에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이렇듯 지음이란 진리에 눈을 뜨는 순간 화로에 떨어지는 눈처럼 녹아 없어진다. 한편 십이연기의 지음은 후대의 해석가들에 의해 업(業)과 동일시되기에 이른다. 이것은 이전의 삶(前生)에서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업으로 풀이되곤 한다. 업이란 미래의 삶으로 이어지는 응보적 힘을 지닌다. 바로 그 결과가 어머니 모태에서 현재의 몸이 이루어지는 첫 순간 작동하는 ‘재생연결의식(結生識)’이다. 이러한 의식은 내세에 또 다른 여인이 ‘나’를 잉태하는 순간 현생에서 지은 ‘나’의 업을 떠안고서 작동하게 될 그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연기(緣起) 해석을 일컬어 ‘삼세양중인과론(三世兩重因果論)’이라고 한다. 이것은 업과 윤회의 관념을 십이연기의 가르침에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어떠한 해석을 따르든 십이연기의 지음이란 의식이 형성되기 이전의 것이다. 따라서 내부적이고 잠재적인 작용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지음이란 외부적 현상 일반에도 적용된다. 예컨대 이것은 물질현상(色)·느낌(受)·지각(想)·지음(行)·의식(識)이라는 오온(五蘊)의 하나로 언급된다. 이때의 지음은 잠재적인 것이 아니며 경험세계의 구성요인이 된다. 또한 제행무상(諸行無常) 즉 ‘모든 현상은 무상하다(sabbe saṅkhārā aniccā).’ 라고 할 때의 지음 역시 경험적 현상을 가리킨다.


▲임승택 교수

이와 같이 지음이라는 개념은 내부적으로 잠재된 작용과 외부적으로 드러난 현상까지를 망라하는 포괄성을 지닌다. 이것을 통해 초기불교에서는 내부적인 것과 외부적인 것 사이의 구분이 엄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음이라는 용어에 비추어 ‘세상은 내면에서 지어가는 방식대로 드러나는 것’임을 생각해 본다.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 sati@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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