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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기관선(機關禪)

기자명 법보신문

공안이나 화두를 기관이라고 말하며
기관 참구해 깨달음 얻는 게 기관선

‘기관(機關)’, ‘기관선(機關禪)’이란 스승이나 방장이 수행자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각자 근기에 맞게 그때그때 제시하는 문제나 과제 혹은 투과(透過)해 보라고 내 놓는 관문을 뜻한다. 즉 화두나 공안(公案)을 ‘기관’이라고 하고, 기관(공안)을 참구하여 깨달음을 얻는 선풍(禪風)을 ‘기관선’이라고 한다. 공안선(公案禪), 간화선(看話禪)이 여기에 속한다.


화두나 공안참구를 ‘기관(機關)’, ‘기관선’이라고 하는 까닭은 뭘까? 인형사가 수십 가닥의 실로 만든 장치나 기계를 이용하여 인형을 조종하는 것처럼 어떤 물체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나 핵심적인 장치 혹은 중요한 기능을 ‘기관’이라고 한다.


선불교에서 말하는 기관의 고전적인 뜻도 이와 같아서 목인(木人) 즉 나무(木) 인형을 조종하고 통제하는 장치, 또는 그 기능을 가리킨다. 간화선, 공안선에서 참선자로 하여금 미혹으로부터 벗어나 깨닫게 하는 중요한 역할과 기능을 하는 것은 화두와 공안이다. 깨달음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화두와 공안의 기능과 역할이 기관과 같기 때문에 간화선, 공안선을 기관선이라고 하는 것이다.


선어록에는 허수아비를 가리키는 의미로 ‘기관목인(機關木人)’이라고 하는 말이 종종 나온다. ‘기관의 조종에 의하여 움직이는 나무로 만든 인형(木人形)’이라는 뜻인데, 허수아비나 꼭두각시, 목(木)인형은 기관에 의하여 움직일 뿐, 스스로는 움직이거나 묘기를 부릴 수 없다. 그와 같이 우리 인간도 지수화풍 4대와 색수상행식의 오온의 가(假)화합으로 이루어진 존재일 뿐 그 속에는 주인공이나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인(木人)이나 허수아비를 ‘본래의 자기’라고 착각하지 말고 그 존재를 움직이는 실제적인 존재 즉 본래면목, 주인공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송고(頌古)의 대가 설두중현(雪竇重顯, 980~1052)은 공안 가운데서도 방거사(龐居士, ?∼808)의 공안(기관)을 매우 높이 평하고 있다. ‘벽암록’ 42칙 방거사 호설편편(龐居士 好雪片片) 공안이다.


방거사가 약산선사를 방문하여 여러 날 선문답을 나누었다. 떠나기 위하여 하직 인사를 드리자 약산선사는 못내 아쉬워 10여명의 납자로 하여금 산문 밖까지 배웅하게 했다. 산문에 이르렀을 때 마침 하늘에서 눈송이가 펄펄 내리고 있었다. 방거사가 말했다. “멋진 눈이로다. 송이 송이마다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네(好雪片片 不落別處).”라고 하자, 배웅하러 나온 납자들이 동시에 물었다. “어느 곳에 떨어집니까.” 방거사가 손바닥을 한번 ‘탁’ 치자 납자들이 말했다. “거사는 지나친 행동을 하지 마시오” 방거사가 말했다. “그대들이 이 정도의 안목을 가지고 선객이라고 한다면 훗날 임종시에 염라대왕이 용서해 주지 않을 것이오.”


방거사가 마침 내리는 눈을 보고 “호설편편 불낙별처”라고 한 것은 법이자연(法爾自然)함을 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곳에 떨어집니까.”라고 묻기보다는 ‘낙낙진여(落落眞如)’ 등 그에 상응하는 답을 했어야 하는데, 모두들 본분사를 망각하고 순진하게 물었으니 염라대왕이 녹록하게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윤창화
설두중현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방거사의 기관(공안)은 도무지 포착할 수가 없네. 천상 인간도 모르리. 눈 속 귀 속이 모두 깨끗하니, 벽안의 달마도 판별하기 어려우리”라고 하였다. 화두나 공안은 깨달음의 빗장을 열게 하는 유일한 열쇠이다. 이걸 수행자들에게 제시하여 깨닫게 하는 선풍(禪風, 지도방법)이 기관선이다.  

 

윤창화 changhwa9@hanmail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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