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쓰럽다. 원자바오의 다사로운 얼굴을 바라보는 중국 인민들이 그렇다. 옹근 10년 중국 총리로 13억 인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그다. 아니, 중국 인민만이 아니었다. 2010년 8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그를 ‘세계에서 존경받는 10대 지도자’로 선정했을 때 솔직히 나는 중국에 그런 정치인이 있다는 게 몹시 부러웠다.
11년 전 입었던 허름한 점퍼, 밑창이 터진 운동화, 지하 수백 미터를 내려가 광산노동자들과 지하 갱도에서 함께 새해를 맞으며 먹은 만두, 대학을 방문해 학생들과 구내식당에서 손수 4.7위안(한화 846원)을 지불하고 깔끔하게 비운 밥그릇을 비롯해 그의 신화는 신문과 방송, 책으로 곰비임비 소개되었다.
하지만 지금 중국 인민들 사이에 당혹감이 퍼져가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원 할아버지’ 일가 재산이 27억 달러(3조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파장은 컸다. 원 총리 쪽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중국 당국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NYT 영어 및 중국어 인터넷판이 모두 차단됐다. 그래도 여론을 의식해서일까. 원 총리가 공산당에 자신의 재산을 조사해달라고 공식 요구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2012년 중국 정치의 지도부 교체 과정에서 불거진 원자바오의 축재 의혹을 보며 우리는 중국이 본디 언론 자유가 없기 때문에 권력에 대한 감시가 온전히 이뤄질 수 없다고 개탄할 수 있다. 공산당의 정보 차단으로 중국 인민들이 지도부의 부패 사실을 모를 터이기에 안쓰럽다고 혀를 찰 수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기실 왜 언론이 중요한가를 여실이 보여주고 있어서다.
그러나 원자바오의 일그러진 신화 앞에서 언론자유를 들먹일 한국인들과 옷깃을 끌어서라도 나누고 싶은 진실이 있다. 바로 박정희의 전설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 박정희를 ‘서민 대통령’으로 믿거나 기억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특히 대구-경북에 강연을 갔을 때 실제로 그런 분들을 만났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찬찬히 진실을 톺아볼 필요가 있다. 2012년 현재 국내에서 가장 캠퍼스가 넓은 영남대의 정관 제1조는 “박정희 선생”을 “교주”로 밝히고 있다. 서울 도심에 자리하고 있는 육영재단은 박정희의 권력이 절정으로 치닫던 1970년에 그의 부인 육영수가 세운 재단이다. 어린이공원이 자리한 육영재단 부지는 천문학적 재산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뿐인가. 정수장학회가 있다. 박정희와 육영수의 이름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온 장학회로 두루 알다시피 <부산일보>를 소유하고 <문화방송> 지분도 30%나 소유하고 있다. <경향신문>이 자리한 터도 정수장학회 소유다.
정수장학회의 생게망게함이란 김대중·이휘호가 ‘대호 장학회’를, 노무현·권양숙이 ‘무숙 장학회’를 만들어 그들이 대통령에 물러난 뒤에도 아들이나 딸이 이사장으로 권세를 누린다고 가정해보면 단숨에 드러난다.
여기서 우리 모두 자문해볼 일이다. 도대체 어떻게 박정희는 영남대학의 교주가 된 것일까? 또 어떻게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를 만들었을까? 정수장학회와 육영재단, 영남대의 자산 규모는 원자바오 일가의 그것을 훨씬 능가한다.
군부독재 시절 내내 권력에 부닐며 용춤 추어온 제도 언론인들 도움으로 박정희는 ‘서민 대통령’이라는 전설이 서민들 뇌리에 새겨져 있다. 논두렁에 앉아 농부들과 막걸리를 마시는 박정희의 점퍼―원자바오의 점퍼를 떠올려볼 일이다―걸친 모습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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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 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20g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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