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한기 ‘선거론’

기자명 법보신문

‘세상 근심과 즐거움은 선거에 달려 있다’는 ‘천하우락재선거.(天下憂樂在選擧)’조선시대 실학자 최한기가 ‘선거’의 중요성을 갈파해 내 놓은 일언은 선거철이면 각종 매체를 통해 어김없이 등장하는 글귀다.


최한기가 말한 ‘선거’는 지금의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다. 최한기가 말한 ‘선거’는 참다운 인재를 천거하고 써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은 지금의 ‘선거’와 직결된다. 민주주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도 결국 인재를 천거 해 쓰고자 함이니 말이다. 굳이 다르다 하면 임금이 아닌 국민이 투표를 통해 ‘천거 해 쓰는 것’ 뿐이다.


최한기의 ‘선거론’을 좀 더 들여다보자. 그는 선거가 잘 못 됐을 때의 일부터 낱낱이 밝히고 있다. ‘잘못 선거된 사람에게 또다시 뒷사람을 선거하게 하니, 그 사이 선거는 점차 각박하게 되어 해마다 나빠만 간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이승만 정권까지 갈 것도 없이 박정희에 이은 전두환 정권이 보인 30년 가까운 ‘통치사’가 이를 방증하고 있다. ‘경제성장’이라는 안개만 걷어 내면 바로 보이는 건 고통과 억압, 그리고 죽음 아닌가.


이러한 선거 악순환이 반복될 경우 어떤 세상이 전개되는가. 최한기는 이렇게 보았다. ‘권세(權勢)에 의지해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만을 도모하며, 나아가 다른 사람의 사사로운 이익까지 도모해 준다.’ 각종 비리, 부정부패 사건이 줄을 잇고 사회적 폐단이 만연하게 된다는 사실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짚어내고 있다.


가장 심각한 폐단 중 하나는 ‘도덕적 해이’다. 정치, 경제권에서 불거지는 각종 비리 사건에 우리는 어느새 너무도 익숙해지고 말았다. 아예 ‘정치란 그런 것’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할 정도다. ‘권세’에 의지하지 못하는 사람, ‘사사로운 이익’만을 도모하지 않는 사람은 ‘능력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통탄을 넘어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잘못된 선거’는 ‘선거’를 통해 바로 잡아야 한다고 그는 역설한다. ‘먼저 선거의 폐단을 바로잡을 사람을 발탁해, 한 나라를 통괄할 인재를 무리지어 진출시키면, 세상의 풍속이 바른 방향으로 쏠리게 된다.’ 그가 말한 ‘바른 방향’은 ‘백성들이 바라는 지극한 소원’ 즉 ‘태평’이다.


누구에게 표를 던질 것인가를 결정한 유권자가 있는 반면 아직 확신을 가지지 못한 유권자도 있으리라 본다. 한 국가의 수장을 뽑는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투표를 포기하는 유권자가 17대에 이어 18대 대선에서도 많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17대 대통령선거 투표율은 63.1%. 직선제 이후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투표를 하지 않는 것도 ‘의사 표현’이라는 말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작금의 사회 현실을 감안할 때 동의하기 어렵다. 경제, 청년실업, 빈부갈등, 동북아정세와 남북문제, 농어민과 서민들의 삶을 잠시라도 들여다본다면 무엇인가 바뀌어야 할 때라는 것은 쉽게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가 필요한 때, 정치적 격변기에 ‘중립’을 지킨다는 이유로 투표를 포기하는 것은 ‘방관’에 지나지 않는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대선 후보들의 정책, 비전, 도덕성, 정치성을 놓고 분석한 결과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판단이 내려져 투표를 포기하겠다는 유권자가 있다면 프랭클린 애덤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봄직하다. ‘선거란 누구를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택하고, 둘 다 나쁘다면 덜 나쁜 사람이라도 선택해야 변화를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대선을 목전에 둔 지금, ‘세상의 근심과 걱정은 선거에 달려있다’는 말이 새삼 사무쳐 들려온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