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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협산(夾山), 다리 뻗고 자다

기자명 법보신문

도는 세치의 얄팍한 혀에 있지 않다

불법 이치는 누구나 알아도
실천 없으면 공덕 입지 못해


말로 세상사람 지도하는 스님
뱃사공이 물속 처박아 깨우쳐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멀리서 벗이 찾아왔다. 욕망과 열정이 뒤엉킨 젊은 날을 함께 보내며 불교공부를 한 사이니, 보통 인연이 아니다. 공자님 말씀대로 기뻐해야 마땅할 텐데, 맘이 무거웠다. 깊게 패인 팔자주름이 미간에 여전하고, 억지웃음 너머의 씁쓸함이 입가에 여전했기 때문이다. 털어놓는다고 풀어질 근심이 아니란 걸 그가 잘 알고, 고단한 짐을 나눠질 역량이 없다는 걸 나 역시 잘 아니, 둘 사이에 특별한 기대란 있을 수 없다.


그래도 친구랍시고 멀리까지 찾아와주었으니, 한 잔 술이 빠질 수 없다. 우수수 지는 낙엽이나 함께 밟자며 연화지 근처 막걸리 집을 찾았다. 안주로 시킨 해물파전은 입심만 좋은 주인장을 닮아 밀가루 덩어리에 오징어다리만 서너 개 떠다니고, 찌그러진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는 인정에 굶주린 손님을 닮아 헤프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왔으니 즐거워야 하지 않겠는가? 둘은 홍상수의 ‘북촌방향’과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끄집어내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된 일상의 허접함을 논하면서 지기를 만난 즐거움을 억지로나마 만들어보려 애썼다. 그렇게 어두워지는 창밖으로 끌리는 눈길을 애써 거두면서 술잔을 부딪치다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친구가 잠든 방문을 열었다. 잠결에도 미간은 찡그린 채였고, 구들장이 뜨끈한데도 새우처럼 두 다리를 웅크리고 있었다. 가슴이 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친구가 부스스 눈을 떴다.

“더 안자니?”


만사가 귀찮을 친구에게 감히 한 마디 꺼냈다.


“오온(五蘊)이 공하다는 것 알지?”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쓰냐며 비웃지 않을까 두려웠다. 다행히도 친구는 가만히 눈을 감아주었다. 해서 또 용기를 내었다.


“반야심경 첫 구절에 ‘오온이 공함을 관찰하면 모든 고난으로부터 벗어난다’고 했잖아. 그걸 가슴 깊이 새겼으면 좋겠어. 그러면 그 허전함과 슬픔, 불안과 초조가 사라질 거야.”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불교공부를 했다면 삼척동자도 알 소리를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속삭였다. 왜냐고? 부처님 말씀은 뻔히 안다 해도, 지당하다며 고개로 절구질을 한다 해도, 좌우 위아래로 엮어 줄줄이 설명할 수 있다 해도, 스스로 뼈저리게 되새기기 전엔 끝내 그 말씀의 공덕을 입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견(照見), 번민에서 벗어날 방법은 오직 그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등록’에 다음 이야기가 전한다.


경구(京口)에 선회(善會)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용모도 걸출하고, 위의도 방정하고, 경율론 삼학에 두루 통달해 지혜와 언변이 탁월했던 탓에 젊은 나이에 한 회상의 주인이 되었다. 어느 날 저녁 그 절로 허름한 차림새의 노스님 한분이 지팡이를 질질 끌고 찾아왔는데, 마침 선회 스님이 상당하여 법문을 하던 참이었다. 한 스님이 일어나 선회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법신(法身)입니까?”


“법신은 모습이 없습니다.”


“어떤 것이 법안(法眼)입니까?”


“법안은 티가 없습니다.”


눈빛을 반짝이는 학인들 앞에서 선회 스님은 목청을 높였다. “눈앞에는 법이 없는데도 다들 마음이 눈앞에만 있습니다. 그건 눈앞에 있는 법이 아니니, 눈과 귀가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갑자기 대중 틈에서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슬그머니 끼어들어와 법문을 듣던 그 허름한 노스님이었다. 선회 스님이 법문을 멈추고 물었다. “왜 웃으십니까?”


노스님의 웃음은 그치질 않았다.


“화상이 출중하여 세상에 나와 사람들을 지도하긴 하지만 아직 스승을 만나지 못했군요. 제중(中)의 화정현(華亭縣)에 가면 뱃사공노릇을 하는 스님이 한분 있을 게요.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고 싶거든 그분을 찾아뵈시오.”
말씀을 마치자마자 휙 하니 돌아서 떠나버렸으니, 그 노스님이 바로 약산(藥山)의 수제자 도오(道吾)선사였다. 선회 스님은 참 진중한 사람이었나 보다. 스승 노릇하던 체면 따윈 안중에도 없이 곧바로 회상의 제자들을 흩어버리고 화정으로 길을 나섰다. 과연 그곳에는 눈빛이 범상치 않은 뱃사공이 있었다. 그 뱃전에 올라앉자 사공은 허리가 휘도록 노를 저으며 넌지시 말을 건넸다. “스님은 어느 절에 머무십니까?”


스승을 찾는 일이니 대답이 범상할 수 없다.


“절이란 곧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머문다면 비슷하지도 않습니다.”


“비슷하고 비슷하지 않다는 그게 도대체 뭡니까?”


“눈앞에는 그것과 비슷한 것이 없습니다.”


강 한가운데서 노를 멈추고 사공은 혀를 찼다.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습니까?”


장부가 칼을 뽑았으니 물러설 수 없는 노릇이다. 선회는 눈을 부릅뜨고 목소리에 힘을 더했다. “귀와 눈이 미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자 사공이 웃으면서 말했다.


“한마디 딱 들어맞는 말이 만겁에 당나귀를 묶어두는 말뚝이랍니다. 천 길이나 되는 긴 낚싯줄을 드리운 것은 못 속 깊은 곳에 뜻이 있는 것이니, 세 치의 얄팍한 갈고리를 벗어나서 얼른 말해보시오, 얼른 말해봐.”


선회가 입을 열려고 하자, 곧바로 사공이 삿대로 밀어 물속에 처박아버렸다. 선회 스님은 이때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그 후 협산(夾山)에 주석할 때 일이다. 어느 날, 자기는 왜 깨닫지 못한 채 못나고 부족하고 미련한 중생으로 사는 거냐고 투덜거리는 제자에게 이런 게송을 읊으셨다.
분명하구나, 분명해, 깨달을 법이 없나니/ 법을 깨달았다고 하면 도리어 미혹한 사람/ 두 다리 쭉 뻗고 자게나/ 거짓도 없고 참도 없으니.


부디 비웃지 말길 바라며 친구에게 다시 한 번 말해 보아야겠다.

“오온은 공한 것이야”
두 다리 쭉 뻗고 잠들기를 바라며 간곡히 말해 보아야겠다.

“봐, 위선의 가면도 그 가면 너머 얼굴도 그 무도회에 참여한 나도 몽땅 꿈같고, 물거품 같잖아.”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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