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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의 안거와 대통령 선거

기자명 법보신문

세속일이라 치부하기 앞서

투표참여는 중생구제 방편

지난 5년 파괴된 수행환경

생각한다면 예외 인정해야

 

올해도 동안거(冬安居)가 시작됐다. 음력으로 10월15일, 올해는 양력으로 11월28일 전국 100여개 선원에서 2100여명의 스님들이 용맹정진에 들어갔다. 음력으로 내년 1월15일까지 꼬박 3개월간 속세와의 인연을 끊은 채 외딴 섬처럼 깊고 깊은 선원에서 홀로 침잠하게 될 것이다. 안거는 불교에만 남아있는 독특한 수행전통이다. 뜻 그대로 편안하게 머문다는 의미다. 부처님이 계셨던 인도는 3개월 동안 쉬지 않고 비가 내리는 우기(雨期)가 있다. 탁발을 나갈 수도, 숲속에서 수행하기도 곤란한 날씨 때문에 스님들은 이 기간 동안 한 공간에 모여 수행을 했다. 안거의 시작이다. 그래서 안거의 본래 말인 빨리어 ‘Vassa’는 우기(雨期)를 뜻한다. 이것이 중국에서 안거라는 좀 더 적확한 뜻으로 의역된 것이다.

 

안거는 대부분의 불교국가에서 지금도 잘 지켜지고 있다. 남아시아 국가들은 부처님 당시처럼 우기를 맞아 3개월간 안거수행에 들어간다. 안거기간 치열한 수행과 큰스님들의 집중적인 지도가 병행된다.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대승불교에서의 안거 강도는 조금 더 강하다. 한국, 중국, 일본은 뜨거운 여름과 추운 겨울이 공존한다. 그래서 여름 3개월, 겨울 3개월 이렇게 두 번에 걸쳐 안거를 한다. 이를 하안거(夏安居), 동안거(冬安居)라고 한다. 일 년의 절반을 안거 수행에 들어가니 대승불교권의 수행문화가 좀 더 치열하다는 생각이다.

 

안거는 한국불교에 있어 불교를 지탱하는 힘이다. 특히 간화선의 수행전통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실 사람들의 마음이 예전과 달라 때가 많이 묻었다. 이런 사람들의 때가 고스란히 세월에 전이 됐는지, 세월이 갈수록 불교도 예전의 청빈함을 잃고 있다. 출세간의 불교가 세간을 정화하는 것이 아니라, 출세간의 추문이 세간을 얼룩지게 하는 일이 잦다. 그럼에도 안거 때마다 2000명이 넘는 스님들이 3개월간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정진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속기(俗氣)가 사라진 맑은 기운이 감돈다. 이들 스님들의 수행력으로 한국불교가 지탱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안거에 든 스님들의 푸른 결기로 세상은 더욱 맑아질 것이다.

 

그러나 안거기간과 겹친 대통령 선거에 대해 작은 논란이 일고 있다. 5년마다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는 나라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일이다. 누가 대통령에 뽑히느냐에 따라 공업중생인 우리 모두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런 이유로 안거에 든 스님들의 투표참여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속세의 인연과 욕망을 모두 떨쳐버리고 백척간두로 향하는 마당에, 세간 일에 신경 쓰는 것은 수행자의 본분이 아니라는 의견이 있다. 전통적인 절집에서 한번 안거에 들어가면 끝날 때까지 산문을 나서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생구제가 대승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이라면 선거는 선량을 뽑아 세상을 편안케 하는 가장 손쉬운 자비행이다. 4대강 공사에서 보듯 올바른 대통령을 뽑는 행위는 수행환경 파괴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실천 방안이기도 하다.

 

▲김형규 부장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최근 국민들의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선원에서 안거에 든 스님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세상이 바뀌어서 선원에서도 투표를 위해 잠깐 자리를 비우는 것에 비교적 관대하다. 부재자 투표를 마치고 SNS에 인증샷을 올린 스님들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종단 차원의 기준이 필요하다. 대통령 선거가 동안거와 항상 겹치기에 더욱 그렇다.

 

김형규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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