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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법보신문 독자와 한국의 불자들에게

기자명 법보신문

힘들수록 가족의 소중함 마음에 새겨야

한·일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
2년간 이어진 한국과의 인연
더 없이 기쁘고  감동적인 일

 

 

 

 

2011년 1월부터 시작된 ‘법보신문’과의 인연도 벌써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난해에는 ‘히로나카 스님의 행복 만들기’로, 올 1년은 ‘히로나카 스님의 청소년 상담실’로 독자 여러분의 고민에 직접 답하는 연재를 계속해왔지요. 최근에는 그 원고를 정리해서 단행본 ‘악동스님은 천사래요’(도서출판 토향)로 더많은 한국분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정말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지난 2년간 ‘법보신문’ 지면을 통해 이어진 한국 불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가정문제에는 국경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던 전통문화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특히 핵가족 사회가 진행되면서 옛날부터 이었던 좋은 습관들이 잊혀가고 있는 경향이 있지요. 그런데 나는 이런 시대일수록 옛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가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일본에서 하는 활동 중에 ‘우리 집 가훈 만들기’가 있습니다. 가훈이라고 하면 왠지 봉건사회 같은 구시대적인 냄새가 날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까지 만해도 집집마다 당연히 있었던, 가족의 결속력을 더해주는 지혜로운 가르침이었지요. 우리는 옛날의 좋은 습관을 쉽게 버리지 말고, 요즘 시대에 알맞은 가훈을 만들어서 가족 간의 화합을 더 하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정보사회에서는 생활이 편리해진 만큼 또 우리가 잃은 것도 있어요. 예를 들어 가족의 소중함은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그 표현은 어려워지지 않았나요? 그래서 아이들의 외로움도 점점 커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일이 아주 빨리 진행되지요. 아이들은 원래 아이들만의 속도로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부모님의 속도가 너무 빨라져 쫓아오기가 어려운 것은 아닐까요?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어느 나라든 다 마찬가지겠지만 한국의 부모님들은 훨씬 빠른 속도로 달리며 아이에 대한 기대감도 너무 빨리 커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 불자들의 고민 상담을 통해 나는 한국이 아주 심한 경쟁사회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불설 부모은중경(佛說父母恩重經)’에 “살아생전엔 자식의 고통을 다 받아들이고 죽은 뒤에도 자식을 지키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부모와 아이가 서로 가까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현실을 똑바로 마주 보는 일입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입시 전쟁에서 이겨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엄격한 현실이 있지요. 내가 한국 독자 여러분께 반드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바로 ‘칠전팔기(七顚八起)’입니다. 한번 실패를 했다고 해도 모든 일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실패는 더 나은 삶을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지난 11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청소년들의 왕따 문제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모두, 가정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실은 왕따를 당한 아이가 나중에 다른 아이를 괴롭힐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자신이 왕따를 당했던 것을 용서할 수가 없어서 억울한 마음을 품고 있다가 약한 상대를 보면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어떤 문제에서 도망치려는 경향이 있으면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아빠가 빚쟁이에게 쫓기고 있으면 엄마도 무엇이든지 도망가려고만 하는 마음이 강하지요. 그런 부모의 마음이 바로 아이에게 전달되어 나약해지고 불안정한 마음을 갖게 되어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기도 합니다. 혹은 엄마가 분노의 마음을 품고 살면 그 아이는 남에 대한 분노의 마음을 가지고 폭력적인 행동을 합니다. 엄마의 마음이 바로 아이에게 전달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올해 6월에 나는 대학병원에서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어느 사람이든 눈앞에 다가선 죽음이 공포를 당당히 받아들이지는 못할 겁니다. 종교인이라도 죽음에 대한 공포심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죽음에 반항할수록 불안감은 커지기만 합니다.


나는 스스로 몸이 아프다고 느꼈을 때 초조해졌습니다. 그동안 해왔던 가족, 사회, 종교에 대한 이야기들을 더빨리 더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암 선고를 받고 나서 그 마음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한보(一步)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초조함보다 모두와 함께 반 보(半步)만 앞으로 나가자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나는 ‘한보’ 앞으로 나가자고 사람들을 격려해왔는데, 실제로 내가 병이 들자 아픈 사람에게 한보는 좀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보가 힘들면 반 보만,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반보 앞으로 나가면 된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니 많은 사람이 도와주고 응원해줍니다. 그분들과 함께 반 보씩 앞으로 걸어나가자고 나는 마음먹었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괴로운 일이 무엇일까요? 바로 ‘애별이고(愛別離苦)’, 즉 사랑하는 사람과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이별의 고통입니다. 내가 이런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처님 덕분입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우리 절에 있던 불상을 모시고 왔습니다. 부처님 앞에서 손을 모아 염불을 외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삶과 죽음은 모두 부처님께 맡기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매일 아침에 나를 찾아오는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의 웃는 얼굴과 만나는 기쁨, 그리고 부처님의 미소와 만나는 행복. 하루하루 그 분들의 밝은 미소 때문에 힘을 얻어 살아있다고 생각하면 내 입에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옛날 사람들은 몸이 아파 병원에 가도 의사선생님이 청진기만 대주면 다 낫다고 했었지요. “의술(醫術)은 인술(仁術)이다”는 말이 있듯이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 지탱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용기를 얻고 힘이 생깁니다.


부부도 부모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지요. 가족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으면 우리는 용기가 나고 힘이 생깁니다. 아빠는 매일 바쁘다고 아이들을 볼 시간도 없다고 하지만, 순간적인 만남이라도 그 눈빛이나 손의 따스함을 가족들에게 전달할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은 항상 우리에게 다가서 주시고 항상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그 부름에 답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역할이지요.


▲히로나카 스님

나라가 달라도 한국과 일본은 가장 가까운 이웃입니다. 서로가 좋은 점을 배우고 서로 도와가면서 사는 것이 한일관계의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형제이자 친족입니다. 한국에서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나는 그 사람에게 힘을 주도록 기도하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도저히 힘들어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하면 “아저씨에게 와라”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사는 삶을 주신 부처님께 감사드리며 한국분들과 법보신문 독자 여러분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끝>


번역=도서출판 토향 도다 이쿠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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