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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보다 행복을 발원한다

기자명 법보신문

가출, 성매매, 절도 등으로 보호처분을 받고 있는 여자 아이들을 만나고 온 날은 마음이 꽤나 심란하다. 14살에서 18살 사이의 아이들. 부모가 해주는 밥 먹고 학교를 다니고 때로는 친구들과 조잘거리며 놀아도 부족한 이 어린 아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집을 가출하고(어떤 아이는 위협을 가하는 부모 때문에 탈출하기도 한다.) 성매매를 하고 남의 카드를 훔쳐 사용하다 처벌을 받을까?


위기청소년, 피해여성을 돕는 일을 꽤 오래 해오고 있지만 그들의 아픈 가족사와 폭력에 대한 끔찍한 경험과 암울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자책감이 들기도 하고 무력감에 기운이 빠진다. 도대체 이 아이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일을 하고 있기는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집밖으로 뛰쳐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가난이다. OECD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지긋지긋하게 가난한 이 나라의 부모는 자신도 가족도 돌보지 않는다. 가난보다 더 큰 문제는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이 없거나 표현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가진 자가 더 가지려하는 세상에서 상대적으로 박탈당한 분노는 가난을 단지 가난으로 보지 않게 한다. 원망과 분노는 날카로운 화살촉처럼 서로를 찌르고 아이들은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치게 되는 것이다.


최근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활동으로 여성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가정 내에서 주도권을 쥔 중산층 여성이 많아지고 자녀교육권과 경제권도 대부분 여성이 갖고 있다고들 한다. 오히려 남성들이 역차별을 당하고 위기감을 느낀다는 말도 듣는다.


그런데 내가 접하는 사람들과 그들과 관련된 통계는 왜 암담하기만 할까? 2012년 발표된 눈에띠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우리 사회는 남녀평등사회인가”에 대한 질문에 41.4%가 불평등하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그래서인지 지난 1년간 가정폭력은 53.8%, 신체적 성폭력 피해 발생은 19.6%로 나타났다. 5명당 1명은 일생을 사는 동안 신체적 접촉을 수반한 성폭력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자살, 게임중독, 범죄, 가출, 성폭력, 학교폭력, 학업중단 등 위기청소년은 전체 청소년의 17%, 87만 명이나 된다. 매년 아동유기, 방임, 학대는 약 6,000여 건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한해를 보내며 그동안의 활동을 돌이켜보니 열심히 뛰기만 했지 빈손만 보인다. 아이들과 여성의 고통은 여전하고 폭력 피해도 반복이 되는데 달라진 것은 없기 때문이다.


제18대 대선을 통해 선출될 새로운 대통령의 5년 통치에 다시 기대를 걸어본다. 주요한 사회의제에서 떠밀려 있던 아동 청소년, 그리고 여성의 인권과 안전에 대한 정책이 촘촘하게 세워지고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그동안 기득권층이 국민을 위한 대표자격으로 취해왔던 지위와 권한과 경제적 이득도 과하다 싶은데, 이를 이용해서 약자위에 군림하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따끔한 성찰이 있길 기대한다. 가난해서, 또 맞는 게 지긋지긋해서 죽고 싶은 아이들을 모르는 척하며 제 욕심을 채운 그들이 더 이상 직무유기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김영란 소장
그리고 무엇보다 내년부터는 부디 삶이 행복하다는 국민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김영란 나무여성인권상담소장  ranyhar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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