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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미륵사 회주 청량 백운 스님

  • 새해특집
  • 입력 2012.12.31 22:12
  • 수정 2020.06.22 17:54
  • 댓글 0

안으로 세상 보면 상대도 선심으로 대하리라!

전쟁 중 관세음보살에 기도
‘산다면 세속 나가지 않겠다’

만암 회상 아래서 경전 공부
동산 시봉하며 조주 ‘무’ 화두

▲백운 스님

담양 용흥사를 오르는 길목에 잠시 멈춰 섰다. 하얀 눈밭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부도전이 말없는 설법을 내리고 있는 듯하다.

조선 당대의 용흥사를 중창 해 영호남 5대 사찰중 하나로 자리매김 시킨 ‘쌍인 선사’의 부도가 눈에 들어온다. 쌍인 선사는 소요태능 선사의 제자다. 태능 선사의 시 한 편이 쌍인 선사의 부도를 휘감는다.

‘수많은 경서 손가락 끝과 같아
마땅히 손가락 따라 하늘의 달을 보네
달 지고 손가락도 잊어 할 일도 없으니
배고프면 밥 먹고 곤하면 잠잔다네.
(백천경권여표지 百千經卷如標指)
(인지당관월재천 因指當觀月在天)
(월락지망무일사 月落指忘無一事)
(기래끽반곤래면飢來喫飯困來眠)’

‘달을 가리키는데 달을 봐야지 손가락은 왜 보는가?’라는 일언과 일맥상통 하는 이 시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을 말할 때도 언급된다. 물론 이 시의 진면목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에 있지 사교입선의 가르침에 있지 않다. ‘수많은 경전은 손가락 끝과 같다’는 일구가 있기에 참고할 뿐이다. 그렇다 해도 경전을 넘어 선에 들어가야 무사인(無事人) 즉 ‘깨달음’에 이른다는 메시지만큼은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

부산 미륵사 회주 청량 백운(淸凉 白雲) 스님 역시 교를 넘어 선에 들어 선 선지식이다. 백운 스님은 범어사, 송광사, 화엄사 등의 유수 강원에서 17년 동안 강주를 맡았던 대 강백. 강사로서의 위상이 워낙 높았던 만큼 백운 스님을 교학의 길만 걸어 온 강백으로만 알고 있는 사부대중이 많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만암 스님으로부터 경전과 조사어록을 배우며 선의 진면목을 조금씩 터득하기 시작했던 백운 스님은 동산 스님을 만나며 조주의 ‘무(無)’자 화두를 들었다. 동산 스님으로부터 전법게를 받은 건 1953년. 일평생을 선교 겸수에 힘써왔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미륵사 회주로 주석하고 있는 백운 스님은 요양 차 잠시 담양 용흥사에 머물고 있다.

백운 스님이 산사의 문을 처음 연 건 다섯 살 때다. ‘단명할 수 있다’는 말에 목숨 연장 방편으로 문을 열었으니 정식출가는 아니다. 하지만, 학교 공부를 위해 속가에 내려오기 전인 9살까지 당대 큰 스님들의 무릎을 베고 고승들의 ‘옛 전설’을 들으며 자랐으니 숙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들었던 그 ‘전설’은 훗날 편양 언기 일대기를 그린 소설 ‘양치는 성자’를 비롯해 ‘부설 거사’, ‘백파 선사’, ‘진묵 대사’ 등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백운 스님의 출가결심은 6·25 한국전쟁이라는 격랑 속에서 세웠다. 선친이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학살당하자 스님은 절로 도망쳤다. 그리고 기도했다.

‘관세음보살님, 살려주십시오! 제 목숨 잇게 해 주시면 다시는 세속에 나가지 않겠습니다.’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일까! 세 번이나 인민군들에게 잡혀 갔지만 초등학교 동창이나 후배가 나서 스님을 살려 주었으니 말이다. 전쟁이 끝난 직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출가했다.

해인대학 후신인 마산대학(현 경남대학) 종교학과에서 월운, 지관 스님 등과 함께 수학할 당시 대학원 문제로 잠시 고민한 적이 있다. 대학원 시험을 치러 놓고도 진로 여부를 고민했던 이유는 단 하나, 관세음보살님과의 약속!
당시 대학원을 다니던 스님이나 졸업한 스님들 대부분은 속가로 돌아갔다고 한다. 대학원 마치고 교수나 ‘선생 노릇’ 하다 보면 ‘중 노릇’을 접을 수 있다는 사념이 들자 결국 대학원을 포기 했다. 출가 후 60여 년 동안 선교에 매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최초의 ‘관세음보살과의 약속’ 즉 ‘초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일제강압기에 창간된 잡지 ‘불교’ 권두운(卷頭云)에 만공 스님이 썼던 글귀가 떠오르는군요. 진언불출구(眞言不出口). 참다운 말은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어떤 뜻일까? 말을 하기 전에 가슴으로 느끼며 살라는 것일까? 삿된 말을 삼가라는 뜻일까? 스님 얼굴만 쳐다보고 있으니 ‘야운 선사의 자경문 일언에 귀를 기울여 보라’며 한 말씀 더 일렀다.

“입은 재화의 문이니 반드시 엄숙하게 지키고, 몸뚱이는 재앙의 근본이니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구시화문 필가엄수 신내재본 불응경동口是禍門 必加嚴守 身乃災本 不應輕動)”

이제야 스님의 의중이 읽혀진다. 몸과 말, 그리고 생각으로 짓는 삼업(三業)을 잘 닦아가라는 뜻이다. 역설적으로는 언행을 함부로 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의미도 함축돼 있는 듯하다.

“내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타인의 생명을 살리고, 내 험한 말 한마디가 타인의 생명을 죽일 수 있습니다. 상대에게 내 보인 손짓 하나에 따라 타인의 기분을 좋게도 하고, 나쁘게도 할 수 있습니다. 생각 하나에 만인의 목숨이 촌각을 다툴 수도 있습니다.”

만인 목숨도 ‘내’ 생각에 달려
말 한마디 행동하나 조심해야

텅 빈 마음 가진 사람이 ‘주인공’
‘지조’ 있는 대장부 ‘무소유’실천

백운 스님은 잠시 은사 동산 스님을 회상했다. 팔만대장경만 다 알면 도인 되는 줄 알았지만 조사어록을 보니 ‘견성’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더라는 것. 발심을 내 찾아간 곳이 범어사였다. 당시 조실로 주석하고 있던 동산 스님을 그 때 처음 친견했다.

“항상 마음에 그려 본 큰스님의 모습이었지요. 첫 해부터 시봉을 해 3년 동안 모셨습니다. 큰스님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공(空)’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고요 속에 있다 보니 편안했다. 웬만큼 공부가 되었다 싶어 동산 스님께 이 사실을 전했다.

“안 된다. 너는 지금 선 수행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무기공(無記空)에 빠졌다. 화두가 들려야만 한다!”

동산 스님은 백운 스님을 볼 때마다 화두가 잡혀있는지를 점검했다. 제자를 아끼는 동산 스님의 마음 하나가 확연히 다가온다. 백운 스님의 화두는 그 후 20일이 지난 후에나 다시 들려졌다고 한다. 잠깐 누웠다가 목침에서 떨어지는 순간 화두를 들었는데 너무도 역력하게 잡히더라는 것. 천수경 독경 소리, 처마 아래서 울리는 풍경 소리,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까지도 모두 ‘어찌 무라 했는가?’라는 소리로 들렸다. 동산 스님은 그제 서야 ‘이제 공부 좀 하겠다’며 웃으셨다. 백운 스님은 ‘지금도 그 은혜를 잊을 수 없다’며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

“은사이신 동산 스님도 수행인으로서의 자세를 스스로 견지하셨습니다. 벽에 써 놓고 평소 자주 보시던 글귀가 있습니다.”
‘상송결조(霜松潔操) 수월허금 (水月虛襟).
서리 내린 소나무의 맑은 지조, 물에 비친 달과 같은 텅 빈 마음.’

‘증도가’로 유명한 영가 스님의 ‘영가집’ 서문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일평생을 수행인으로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살다 가신 동산 스님이 평소 어떻게 자신을 추슬러 가셨는지를 보여주는 일면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마음은 자주 흐트러집니다. 새해 첫 해 마음도 3일가기 어렵지요? 처음 먹은 마음이 변해갈 때는 그 마음을 다시 새롭게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선근이 심어지고 선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토세상, 맑은 세상은 선근이 얼마나 많이 심어져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영가 스님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아닙니다.”

백운 스님은 ‘지조와 텅빈 마음’을 가진 대장부라면 임제 선사의 ‘한마디’를 이해하고 실천해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님이 곧바로 들어 보인 건 ‘어느 곳에 있던 주(主)가 된다면 그 자리는 모두 다 참된 곳이다’는 임제의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무소유의 삶,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삶입니다. 몰라서 어려운 겁니다. 욕심은 한정이 없습니다. 욕심을 채우려는 건, 깨진 항아리에 물 붓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입니다. 욕심을 버릴 수 없다면 줄이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합니다. 수행을 한다는 건 자신을 성찰한다는 것입니다. ‘지조와 텅 빈 마음’을 가진 대장부는 ‘소유’보다는 ‘무소유’를 실천하려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주인공이며, 그 사람이 머물고 있는 자리가 참 다운 자리입니다.”

산자락에 눈이 흩날리며 내려앉기 시작했다. 눈 내리는 산사 정취에 잠시 젖은 스님이 끝으로 한 말씀 일렀다.
“설경(雪景)에 몇 점의 눈을 더하니 또 다른 설국(雪國)입니다. 청안(靑眼)으로 세상을 보세요. 상대도 당신을 선심(善心)으로 대할 것입니다.”

백운 스님의 일언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눈은 더욱 더 하얗게 내리기 시작했다. 청량한 흰 구름이 세상을 덮는 듯하다.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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