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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새해특집-함께하는 벗 도반][br] '군법당을 내집처럼’ 육상빈·정규옥씨

얼음장 같던 군장병 마음에 부처님 온기 채우다

각원사불교대학 1년 선후배
포교사도 한 해 차이로 입문
대전충남 군포교 2팀서 활동


2년간 호국불교 창수사 포교
연인원 5천명 참석 결실 맺어

 

 

▲육상빈 거사와 정규옥 보살은 2년 104주 동안 매주 일요일이면 호국불교 창수사에서 장병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전했다. “아들 같은 녀석들이 먼저 웃으며 인사한다”며 웃는 그네들에게 포교는 끊임없는 정진이었다.

 

 

눈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새가 내려앉은 흔적도 없었다. 자동차 바퀴 자국 하나, 두 사람의 발자국이 찍혔다. 말은 군더더기였다. 육상빈(57, 덕현) 거사와 정규옥(58, 대자원) 보살은 ‘호국불교 창수사’에 들어서면 말보다 눈빛, 손짓발짓이 앞섰다. 군법당 입구 오른쪽 비로자나불에게 예를 다했다. 법당 안에서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좌복 위에 무릎 꿇고 바닥에 이마와 팔꿈치를 맞대고 등을 굽혔다. 1주일 동안 비었던 법당에 잠시 온기가 돌았다. 합장한 두 손이 금세 거칠어졌다. 지난해 12월9일, 육군 제3탄약창 천안 호국불교 창수사의 공기는 찼다. 온도계 수은주는 아래로 오그라들어 영하 13도 언저리를 밑돌았다. 좌복 데울 군장병들은 아직이었다. 좌우 열을 ‘칼맞춤’한 좌복 모서리가 찬 공기를 날카롭게 칼질했다.

 

▲육 거사가 장병들과 큰 솥에 홍합을 넣고 물을 부어 탕을 끓이고 있다.

창수사 앞마당 눈 위에 군더더기가 늘기 시작했다. 오전 9시 무렵이었다. 군화 발자국이 창수사를 향했다. 덕현과 대자원의 발자국이 눈 위에 어지럽게 흔적을 남겼다. 덕현은 도공 스님이 마련한 홍합을 끓일 만한 큰 솥과 불을 준비했고, 대자원은 마당에서 장병들을 맞았다. 덕현은 군종병과 장병 몇몇을 데리고 홍합탕을 끓였다. 오늘 간식이었다. 대자원은 장병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비로자나불께 공손하게 서서 합장 인사하고 들어오는 거예요.”

 

혹여 군화를 벗고 법당으로 들어서는 장병에겐 부드럽게 말을 붙였다. 그러나 법당 예절을 가르치는 목소리엔 단호함이 묻어났다. “어서 와요. 어서들 오세요. 추운데 오느라 애썼네. 법당에 들어오면 모자 벗고 부처님께 합장 반배하는 거예요.”


군장병이 창수사 법당을 가득 메우자 덕현이 마이크를 들었다. 예불 올리기 전 장병의 몸과 마음 매무새를 다듬었다. “허리 펴고 손은 모아서 단전에 가지런히 놓고 가부좌를 하세요. 1주일 동안 군생활을 돌이켜 보면서 5분간 명상을 해보세요. 후임병에게 심한 말을 했다거나 지난 한 주를 반성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은은한 종소리가 적막을 깼다. 프로젝트 빔으로 불단 오른쪽에 영상이 떴다. 목탁소리와 영상에 맞춰 장병 100여명은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겠다고 서원했다. 이번엔 대자원이 마이크를 들었다.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등 다섯 가지 향을 올리는 게송 ‘오분향게’를 읊었다. 대자원은 오분향게에 이어 헌향진언, 칠정례, 한글반야심경 봉독까지 장병들과 한 목소리로 함께 했다. 창수사에 온기가 들어찼다.


덕현과 대자원은 창수사 바깥양반과 안주인이었다. 창수사를 제집 안방처럼 드나들며 장병들을 자식으로 대했다. 2년째다. 1년 52주, 2년이면 104주다. 덕현과 대자원은 거의 한 주도 쉬지 않았다. 토요일엔 장을 보며 간식을 준비했고, 일요일 새벽이면 차를 가진 덕현이 대자원을 싣고 창수사로 왔다. 설이나 추석 등 명절엔 떡과 음료수를 나눠주러 창수사로 걸음했다. 그네들은 서로를 치켜세우느라 바빴다.


“대자원은 창수사의 관음보살입니다. 군장병들의 대모에요.”


“아니에요. 팀장인 덕현거사 없이는 아무것도 못했어요.


덕현은 조계종 포교사 13기다. 2007년부터 활동했다. 천안 각원사 불교대학 5기 졸업생으로 포교사의 길을 택했다. 어쩌면 그의 삶은 20대 초반 결정됐는지 모른다. 그에게 세민 스님 염불은 감동이었다. 그 길로 삼보에 귀의했다. 각원사 주지 대원 스님 말씀에 또 한 번 감동했다. 도일 스님과 백거이 일화였다. 세 살 아이도 선행을 말하지만 팔순 노인도 실천은 힘들다는 법문이었다.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하는 불자로 살겠노라 서원했지요.”


덕현은 대전충남 포교사단 군포교 2팀에 배정됐다. 팀원으로 활동하면서도 한 달에 3번은 꼭 창수사를 찾았다.

 

덕현거사
“20대초 들었던 염불에 감동
자비 실천하는 포교사 서원”

 

대자원보살
“불교는 새장 속 삶의 탈출구
아들같은 장병 보는 게 보람”

 

포교는 ‘사람을 끄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피곤해서 잠시 쉬고자 억지로 법당에 나와 조는 장병도 더러 있었다.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해야 했다. 2년 전 팀장이라는 소임이 주어지자 시스템을 바꿨다. 초코파이부터 버렸다.‘초코파이 포교’란 말은 포교사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단어였다. 초코파이를 줄이고 카스타드, 찹쌀선과, 쿠키빵, 햄버거, 머핀, 자장면, 호떡 등 먹거리를 다양화 했다. 호떡은 장사하는 분을 직접 섭외해 바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정 보살이 정기법회에서 마이크를 들고 예불을 진행했다.

장병들이 대학 이상 학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4주를 짜임새 있게 꾸렸다. 법문은 둘째, 넷째주로 고정했다. 첫째 주는 오락성을 가미하고, 셋째 주는 외부 강사를 초빙해 전문성을 강조했다. 천안 지역 가수와 마술사 등 문화예술인이 창수사를 찾았고, 웃음치료사와 대학 교수 등 사회 각 분야 전문가들도 창수사를 들렀다. 상, 하반기를 나눠 노래자랑을 열고 부대와 상의해 수상자에게 포상휴가나 외박, 외출을 보냈다.


법당도 중창했다. 벽엔 금이 갔고 바닥에선 습기가 올라오고 천장에선 물이 샜다. 여름이면 악취가 진동했고 겨울이면 찬바람이 둥지를 틀었다. 화장실도 새로 만들어야 했고, 눈가에 땟국물 흐르고 군데군데 벗겨진 비로자나불 개금불사도 해야 했다. 각원사 대원 스님과 천불사 인경 스님, 상원사 혜남 스님이 중창을 도왔다.


우연은 운명이 놓아준 다리였다. 대자원도 각원사 불교대학을 6기로 졸업했다. 14기 포교사로 2008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꼭 1년 차이다. 세탁소에서 갇혀 지내다 만난 각원사 불교대학은 대자원에게 탈출구였다. 1주일에 한 번 외출한다는 마음으로 불교대학을 다녔다. 즐겁게 세탁소를 나서는 마음은 불교대학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반가이 받아들이는 동력이었다. 포교사 수련기간을 창수사서 보냈다. 목탁과 염불, 예불 드리는 법을 제대로 배웠다. 그리고 덕현과 창수사 중창불사부터 모든 걸 함께 했다.


창수사는 달라졌다. 찬바람만 휑하던 법당에 연인원 5000여명 이상의 장병들이 찾기 시작했다. 장병들도 덕현과 대자원을 따랐다. 대자원의 본명 정규옥에서 ‘규’자를 딴 ‘규라인’이 생기기도 했다. 포교사단(단장 임희웅)은 2011, 2012년 두 차례 표창장으로 창수사의 변화에 힘쓴 포교사들을 격려했다.


“이제 눈빛만 봐도 알죠. 우리 아들들이 먼저 와서 웃어줍니다.”(덕현, 대자원)


그네들 원력은 덧셈(+)이다. 각자는 뺄셈(-)이지만 서로에게 한 획씩을 더해 덧셈(+)이 됐다. 그래서 앞뒤로 줄서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앞으로, 나란히’가 아닌 ‘나란히, 앞으로’ 함께 가는 벗, 도반인 게다.


천안=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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