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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가까워질수록 빛나는 수행의 힘

기자명 법보신문

고요하게 떠난 보살님
폐암으로 투병했지만
수행정진의 힘으로
평화롭게 임종 맞아

 

생명을 다한 이파리는 푸름을 떨구고 빈가지 위에 새들은 외로이 지저귀던 아침이었다. 말간 얼굴의 보살님이 생명을 놓았던 그날의 기억이 지금까지 선명하다. 그때, 날씨는 겨울답지 않게 참으로 포근했다. 모든 것이 텅 비어버린 듯한 겨울의 정토마을, 처마 끝 풍경이 바람을 타고 노닐던 아침에 보살님은 평화롭게 삶을 마감했다. 맑게 뜬 눈을 살며시 감으며 몸을 놓아버렸던 보살님….


중학교 선생님이었던 그는 불교가 좋아 결혼도 하지 않고 수행을 해왔다. 방학 때마다 남방불교 수행센터에 가서 수행했고 직장에 돌아와서도 수행의 끈을 놓지 않았다. 폐암을 선고받고 약 3년을 투병했는데, 그 과정에서 학교를 그만두고 저축했던 돈으로 수술비와 투병에 필요한 다양한 약품을 구입했다. 그래서 정작 말기가 돼서는 전세금까지 모두 정리하고 정토마을로 왔다. 그때가 42세가 되던 해, 진달래가 피던 봄이었다. 그리고 정토마을에서 여름과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될 무렵 몸을 놓고 떠났다.


그가 정토마을서 생활할 때, 그의 병실에는 따뜻한 햇살이 찾아와 체온을 높여줬다. 그는 늘 몸과 마음이 고요했고 특별히 숨이 차다거나 고통을 주는 증상들도 없었다. 고요히 앉아서 호흡명상을 했으며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챙기곤 했다.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꽃처럼 단아한 미소 가득하셨던 보살님. 정토마을에서 자신의 마지막 삶을 고요하고 맑게, 정성스럽게 준비해나갔다. 사대의 기운이 쇠잔해지고 호흡이 거칠어지며 의지가 상실되는 순간에도 명료하게 깨어있을 수 있도록 수행에 집중했다. 더 이상 언어를 통해서 말을 할 수 없을 때는 눈빛으로 말하고, 호흡이 거칠고 육신의 생명이 심장의 토대에서 멈추려 할 때와 멈출 때 그리고 멈춘 후 의식이 더욱 맑게 깨어 다음 여정에 업력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함께 공부했다. ‘사자의 서’도 읽고 아미타염불을 하며 남방불교 어른스님들께 편지로 도움도 받으며 준비했던 기억이 난다.


“스님이 이렇게 아미타염불을 하시면 제 의식이 맑아지는 것을 느껴요. 마음은 더없이 따뜻하고 평화롭고요. 명상과 염불은 둘이 아닌가봐요. 제가 명상을 하고 있을 때 스님께서 염불하시는 소리를 들으면 의식이 명료해지고 알아차림은 선명해지니까요.”


그래서 나는 그의 호흡에 맞춰 고요히 염불을 해드리곤 했다. 그의 서원은 죽어갈 때, 죽음에 이를 때, 그리고 그 이후에까지 맑게 깨어있는 것이었다. 평소 사띠 수행과 사마디 수행을 해오던 그는 마지막 떠나기 4일 전부터 천천히 오온이 무너지는 것을 스스로 관찰하며 호흡에 집중했다. 눈빛은 고요했고 통증과 호흡곤란도 심하지 않았다. 눈빛과 고개를 움직이는 소통도 가능했다.


그는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깨어있었다. 떠나기 전에는 작은 목소리로 “몸을 떠나기가 이렇게 힘든 것인지 몰랐다”며 살며시 미소까지 지었다.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생은 남방불교의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 출가하기를 서원했기에 나는 그 서원을 꼭 이루시라고 다시 한 번 일러줬다.


그가 깨어있는지 간간히 살펴보면서도 나는 나지막한 소리로 아미타불염불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숨의 순간까지 깨어있었으며 호흡이 멎고 심장의 토대가 무너진 이후 약 4시간이 지나자 의식이 육신에 더 이상 머물지 않고 떠나갔다. 여여하고 고요하게 떠나는 보살님 모습에서 나는 나의 죽음을 생각했다. 참 장하시고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드렸다. 폐암이 온몸으로 전이됐지만 호흡이 멈춘 육신은 유리처럼 깨끗하고 온전했다.

 

▲능행 스님

그의 죽음을 보며, 사람이 살다 죽는 이유보다 어떻게 죽는가가 더욱 중요함을 새삼 깨달았다. 수행의 중요성 역시 마찬가지다. 죽음의 순간에 수행은 큰 힘이 되며, 그래서 누구에게나 수행은 꼭 필요하다. 요즘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죽음을 향해 홀로 나아가야 할 때, 그리고 죽음을 넘어 다음 생으로 돌아올 때, 수행이 빛이 되어주기를. 


능행 스님  정토마을 이사장 jungtoh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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