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탄생론
27. 탄생론
  • 법보신문
  • 승인 2013.02.2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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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어린생명 살상한
예수 탄생은 모순투성이
온 세상에 기쁨·평온 준
부처의 탄생과는 대조적


인류역사 가운데 가장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 인물을 꼽는다면 단연 예수다. 그가 신의 아들이라는 점도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거니와 아버지의 정혈을 빌리지 않고 성령으로 태어났다는 점도 기독교인이 아니고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인류사에서 예수는 이런 비합리적인 탄생과 관계없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임은 틀림이 없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사랑과 평화 그리고 구원의 주관자로 표현한다. 예수가 이 땅에 온 이유는 인간 사랑과 평화, 구원을 위해 왔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기독교 교리를 접하다 보면 사랑과 평화, 구원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는 예수의 탄생에 있어서도 그렇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예수의 탄생과 관련한 여러 가지 사건들 속에는 사랑과 평화보다는 오히려 끔찍한 살육과 복수극이 펼쳐지고 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예수는 유대 베들레헴의 다윗지역에 있는 한 마구간에서 태어나 천으로 싸여 여물통 안에 눕는다.


기독교 성서에 따르면 예수가 탄생할 때 하늘의 군사가 나타나 찬양을 하고 야훼신의 영광이 비추어 졌는데, 양치는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고 세상에 알렸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희생됐다. 마태복음 2장에 따르면 당시 유대의 왕 헤롯은 자신의 권력이 예수로 인해 무너질 것이 두려워 두 살 이하의 모든 아이들을 죽일 것을 명한다. 이로 인해 베들레헴과 그 인근에 있는 남자 아이들 가운데 수만 명이 헤롯의 병사들로부터 무참히 살해됐다. 모든 인간의 생명을 뜻대로 주관하고 세상 만물을 자유자재하게 다스린다는 신이 어째서 자신의 아들이 탄생하는데 이토록 모순된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것인지 참으로 의아한 일이다. 또한 예수는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이웃나라 이집트로 도망을 간다. 성서에서는 예수의 아버지 요셉이 예수와 그의 아내 마라아를 데리고 피신을 했다가 자신의 고향인 나사렛으로 돌아왔다고 전한다. 예수는 신 그자체이기도 하고 신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신이 무엇 때문에 한 인간을 두려워했을까? 인간을 구원하러 오는 사랑과 평화의 신이 어째서 하고많은 방법을 제처 두고 이런 무모한 모습을 통해 세상에 나타난 것일까?


불교에서는 부처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 어떤 존재에게도 고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부처님이 출현할 때에는 모든 존재가 고통을 쉬고 기쁨과 평온에 머무르게 된다고 말한다. 불종성경(佛種姓經)을 보면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 부인이 부처님을 잉태했을 때 얼마나 그 얼굴이 안락하고 청정했는지 병든 사람이 보면 건강을 되찾고 미친 사람이 보면 본마음을 회복하였다고 한다. 룸비니라는 지역에서 부처님이 탄생할 때 모든 신들이 기뻐하고 찬탄했고 일기는 밝고 아름다웠으며 꽃이 만발하고 모든 짐승들이 기쁨으로 충만했었다고 전한다. 어머니 자궁에서 빠져 나올 때도 마치 삼베 주머니에서 물이 빠져 나오듯 아무런 고통을 주지 않고 나왔다고 하며 부처님이 태어나자 제석천과 범천왕이 하늘의 황금 그물로 받아 비단 천으로 감쌌다고 하며 하늘 용들이 나타나 목욕을 시켰다고 한다. 얼마나 세상이 기쁨에 차있었든지 일만 세계가 축복으로 진동을 하고 지옥세계의 중생들이 잠시 고통으로부터 해방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부처님이 태어나자 왕은 모든 죄수를 풀어주고 살생을 금할 것을 명령하였다고 한다. 불전에는 부처가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그 누구에게도 고통을 주는 법이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제열 법사

두 성인의 탄생 모습을 보면 참으로 대조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기독교의 신이 인간처럼 왔다면 불교의 부처는 신처럼 왔다는 느낌이 든다. 불교의 시각에서 예수의 탄생을 볼 때에 세상을 구원하러 왔다는 구세주의 탄생 모습치고는 너무도 파란만장하다. 신의 아들이며 구세주라면 적어도 부처의 탄생처럼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열 법림법회 법사 yoomalee@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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