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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마인드 정필수 전무

“대중에게 읽히고 삶 지혜 주는 게 좋은 책”

전국구 불자 할머니 덕에 불교 인연
분노심으로 찾은 산에서 새 삶 얻어

 

 

▲정필수 전무는 독서 삼매경에 빠진 불자들의 모습에서 보람을 느끼고 힘을 얻는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다. 1959년 정릉에서 태어나 지금도 그곳에서 살지만 전국구 불자였던 할머니를 따라 어릴 때부터 참 많은 절을 찾아 다녔다. 그것이 불교를 종교로 삼은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할머니 곁에서 언제나 수줍은 미소를 띠던 소년은 어느덧 세월이 흘러 3남매 모두 성년이 된 중년의 가장으로 변신했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소년은 어려서부터 수많은 소설과 수필, 그리고 시를 보면서 막연하게 “책 만드는 일이든, 서점에서 책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일이든 평생 책과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그 꿈은 이루어졌다.


정필수(慧國) 클리어마인드 전무. 그가 첫 발을 디딘 출판사는 일제강점기였던 1926년 문을 열어 현재까지 9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꽤나 유명한 출판사였다. 그곳에서 마케팅 업무를 배우기 시작했고, 자기 업무 영역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지금도 늘 곁을 지켜주며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부인도 당시 거래처였던 서점에서 만났으니, 남부러울 게 없었다.


그는 규모가 더 큰 출판사에서 전직 제안을 받기도 했고, 실제 큰 꿈을 좇아 사표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사장은 ‘끝까지 같이 가자’며 사표를 반려했고, 그 역시 그곳에서 뼈를 묻겠다는 심정으로 일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사장이 자녀에게 경영권을 이양하는 과정에서 평생직장의 꿈도 무너졌다. 그렇게 믿었던 곳에서 내쳐지듯 밀려나면서 가슴엔 분노심이 가득했다.


“울화가 치민다는 말을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분노를 내려놓고 평정심을 찾도록 해 준 게 산(山)이었습니다.” 그랬다. 울분을 삭일 수 없었던 10여 일 동안 온갖 망상이 그를 괴롭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찾은 곳이 산이었고, 그렇게 6개월을 매일같이 산에 오르고 그 산 속 산사(山寺)를 마주하면서 집착의 끈을 놓고 분노심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산이 좋아 사랑하게 되고 급기야 올 초부터 불교출판인들의 등산 모임인 산막산악회를 이끌게 된 그가 ‘산이 사람을 기른다’는 말을 체험한 것도 이때였다.


그렇게 분노심을 가라앉혔을 때 지인으로부터 스님이 운영하는 출판사를 소개받았다. 도피안사였다. 불교출판사와 첫 인연은 그렇게 맺어졌고, 당시 절에서 생활하다시피 하며 4년여를 살았다. 가족과 떨어져 절에서 지내며 출판 일을 해야 했던 4년은 그래서 인욕의 세월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를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는 시기였기에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곳이기도 했다. 그렇게 불교계 출판사에 몸담은 그는 여시아문의 정리 과정을 돕던 중 클리어마인드와 인연이 닿았다.


클리어마인드는 2005년 3월 문을 연 신생출판사다. 지금까지 42종의 책을 냈을 뿐이다. 그러나 생활불교 관련 책을 주로 출간하는 출판사는 초창기 3년여 동안 해외포교잡지를 발간하기도 했을 만큼, 불교출판계에 적지 않은 족적을 남겼다.


지난 2012년부터 출판사 업무를 총괄해온 정필수 전무는 소년시절 순수문학에 심취했던 경험과 출판계 전체 흐름을 고려해 에세이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한편에서 ‘스님을 저자로 한 에세이들이 표지를 떼고 나면 별반 차이가 없다’는 비판도 있지만, 법정 스님의 글이 그랬듯이 남녀노소나 지식의 많고 적음을 떠나 대중적으로 읽히고 삶의 지혜를 줄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젊은날의 깨달음’ 가장 기억에 남아
불서 읽는 불자들이 한국불교 희망


이런 신념은 그가 클리어마인드 출간 서적 중 ‘젊은 날의 깨달음’을 최고의 책으로 손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국적인 힐링 전법사가 된 혜민 스님의 처녀작이기도 한 ‘젊은 날의 깨달음’은 시장에서 상품성까지 인정받아 10만 가까운 독자들이 찾았다. 또 폴니터 교수의 저작을 번역한 ‘붓다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일 수 없었다’도 그에겐 특별하다. 판권 계약을 마치자마자 국내 기독교계 출판사들의 계약 요청이 잇따랐고, 기독교 내부 비판에 대한 목소리가 작지 않아 번역자를 찾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그만큼 어려운 과정을 거쳐 출판한 책은 지금도 온라인을 통해 꾸준히 독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스스로 출판인이 되어 책을 출간하면서도 불교계 안팎에서 나온 책을 꾸준히 읽으며 내면의 울림을 키워온 그는 클리어마인드가 아닌 불교계 출판사 책 중 고 김재일 씨의 생태 명상록 ‘생명산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얻기도 했다. “‘지구의 모든 존재들은 저들만의 시간 단위가 따로 있다. 예전에는 사람들도 사람들만의 속도로 살았다. 지금 사람들은 기계의 속도로 급하게 살아가고 있다. 단순하고 느렸던 사람의 속도가 새삼 그립다’고 했던 저자가 짧고 간결한 글 속에 생명과 자연, 인간에 대한 깨달음을 담은 책에서 생명을 새롭게 보는 계기를 만났습니다.”


문학 소년으로 지냈던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감성을 잃지 않은 그이기에 가능한 느낌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감성이 풍부한 그도 불교 출판계의 현실 진단에는 냉정하다. “전체 불자 수에 비해 책 읽는 불자가 현저히 적고, 그렇게 한정된 독자층에 맞춰 출판을 기획하는 일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어 불교출판사들의 고민이 깊어진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서를 펴내는 것은 책 만드는 사람들이 갖는 저마다의 신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30여 년 동안 출판 일을 해온 그에게 불서출판은 이제 ‘생활’이 되었다. 경제적인 부분을 떠나 삶에 의미를 더하고 정신적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제때 물만 줘도 잘 자라는 난(蘭)을 보면서 “하루 세끼 밥 먹는 사람이 못할 일이 없다”는 생각으로 출판에 대한 신념을 더욱 다지고 있는 그의 눈에 비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책 읽는 사람이다.


“조계사 앞마당을 지날 때 한쪽 양지바른 곳에 놓인 의자에 앉아 책 읽는 이들을 보면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는 그에게 불서 한 권 펼쳐들고 독서 삼매경에 빠진 불자들의 모습은 삶의 보람이자 힘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은 한국불교의 희망이기도 하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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