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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근대 첫 종단 원종 출범 결의

1908년 3월6일 원흥사서
초대 종정에 회광 스님
각황사 건립·잡지 발간
日 조동종과 연합은 한계

 

▲원종 초대 종정 회광.

1908년 3월6일 서울 원흥사에 모인 불교계 대표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은 한국불교가 지난 500년간 지속된 탄압의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도약을 기약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모인 52명의 대표들은 원흥사에서 총회를 열고 마침내 원종 설립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또 초대 종정에 해인사 강백 이회광 스님을 추대했으며 총무부장을 비롯해 교무, 학무, 서무부장 등에 대한 조직도 구성했다.


원종은 출범과 동시에 산적한 과제를 안고 있었다. 우선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한국불교계가 안고 있던 각종 제약을 극복하고 새 시대에 맞는 교육과 포교 방안 수립이 절실했다. 특히 불교가 산중에만 머물러 있던 구습에서 벗어나 대중과 근접하기 위해서는 도심포교당 건립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원종은 첫 사업으로 서울 4대문 안에 대규모 사찰 건립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1909년 12월 원흥사에서 스님 150명이 모인 가운데 회의를 열고 각황사를 건립하기로 결의하고, 이듬해 2월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각황사 건립에는 쌀 2000석과 금화 8만냥이 소요됐다.


원종은 또 교육 사업에도 매진했다. 특히 동국대의 전신인 명진학교를 개편, 불교사범학교로 승격시켜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했다. 그런가하면 1910년 12월 불교계 최초의 잡지이자 종단기관지였던 ‘원종’을 창간해 문화포교에도 앞장섰다. 이처럼 원종은 교육과 포교에 매진하면서 한국불교 근대화의 토대를 다졌다.


그러나 원종은 태생부터 가지고 있었던 한계가 있었다. 국가로부터 종단 승인을 받아야 했다. 즉 원종이 전국 사찰의 주지와 각도의 지원장 임면권 등을 비롯해 전국 13개도의 사찰을 관할하고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합법적인 권한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원종의 인가는 쉽지 않았다. 여기에 1910년 한일합방으로 대한제국이 문을 닫으면서 원종의 인가는 요원했다. 결국 회광 스님의 선택은 일본 불교를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회광 스님은 당시 친일파로 알려진 일진회 이용구 회장과 내부대신 송병준의 권유로 일본 조동종 승려 다케다 한시를 원종의 고문으로 영입했다. 다케다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관련돼 히로시마 감옥에 투옥된 전력이 있는 자였다. 따라서 이런 자를 고문으로 모셨다는 것만으로도 원종을 순수하게 보기 어려웠다. 자연 원종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회광 스님은 개의치 않고 원종의 인가를 추진했다.


특히 회광 스님은 종단인가를 받기 위해 일본 조동종과의 연합이라는 무리수를 뒀다. 그는 이 연합을 위해 전국 72개 사찰의 위임장을 받아 일본을 건너갔다. 그리곤 1910년 10월7일 한국불교원종은 일본 조동종과 ‘연합맹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 연합은 일본 조동종과의 대등한 관계가 아닌 사실상 원종을 예속시키는 불평등 연합이었다.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면서 한국불교계는 들끓었다. 나라를 빼앗긴지 불과 두 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선불교마저 일본에 예속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즉각 석전, 진응, 만해 스님 등은 회광 스님의 경솔한 행위를 규탄하고 나섰다. 특히 이들은 회광 스님이 조동종과 연합맹약을 체결한 것은 매종행위로 규정하고 1911년 1월15일 송광사에서 승려대회를 열어 임제종을 출범시켰다. 이에 따라 원종의 위상은 크게 실추됐고, 사실상 명목만 유지하게 됐다. 결국 원종은 1911년 6월 일제가 사찰령을 시행하면서 간판을 내리고 ‘조선불교선교양종본사주지회의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한국불교 근대화의 초석을 다졌던 원종.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평가는 회광 스님의 잘못된 행보로 인해 모두 감춰진 채 친일불교에 앞장섰다는 꼬리표만 남게 됐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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