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성장론
28. 성장론
  • 법보신문
  • 승인 2013.03.0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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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 예수의 어린 시절은
배우지 않고 신에만 관심
귀족으로 태어난 부처님
늘 배우고 생명에 큰관심


기독교 성서에는 예수의 성장과정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 않고 있다. 예수의 일생을 다룬 각 복음서들에는 30세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만 주로 이야기 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누가복음2장에 예수가 열두 살 때에 부모와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의 성전에 올라간 이야기와 ‘부모에게 순종하였으며’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면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자랑스러워 가더라’ 정도의 이야기만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의 성장과정에서 드물게 언급하고 있는 열두 살 때 유월절의 행동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예수는 부모를 따라 예루살렘의 성전에 오른다. 특이한 일은 유월절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예수가 일행들 중에 보이지 않았다. 이에 당황한 부모가 아들을 찾으러 다시 하루를 걸어가 예루살렘 성전을 뒤져보니 예수가 성전의 뜰에서 지도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때의 지도자들은 전통 유대교의 선생들로 신학에 능통한 자들인데 예수는 여기서 그 지도자들이 미처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신에 대해 놀라운 가르침을 베풀어 주었다고 한다.


부처님의 성장과정은 불경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평민출신인 예수와 달리 부처님은 귀족 출신으로 성장과정도 매우 화려하다. 왕자로서 모든 권세와 풍요를 누렸고 출중한 용모와 함께 지혜로웠다. 일곱 살 때부터 온갖 학문과 기예를 연마했으며 철학과 문학, 의학은 물론 온갖 무술과 무예, 병법, 그리고 음악, 미술 짐승 길들이는 법, 조각하는 법 심지어 염색하는 법 등 다방면에 걸쳐 수학했다. 희한한 일은 예수의 나이 열두 살 때의 일처럼 부처님도 열두 살에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불본행집경’에 따르면 부처님은 아버지 숫도다나왕을 따라 농경제에 참석했다. 여기서 부처님은 농민들의 생존과 가축들의 고통어린 모습을 보고 까마귀와 새가 서로 다투며 벌레를 잡아먹는 광경을 본다. 이 모습들을 목격한 부처님 역시 일행들을 떠나 멀리 떨어진 나무 밑에 앉아 종일 명상을 했는데 명상의 내용은 ‘왜 모든 생명들은 태어나고 죽는 것이며 이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없는가?’였다. 놀라운 것은 숫도다나왕과 그 일행이 부처님을 발견했을 때 부처님이 앉아 있는 잠부라는 나무의 그늘이 해가 방향을 바꾸었는데도 움직이지 않고 부처님을 햇볕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두 성인의 성장에 대해서 대략 몇 가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예수가 평민 출신으로 영화를 누리지 못하였음에 비해 부처님은 왕족출신으로 영화를 마음껏 누렸다는 점, 둘째는 예수가 세상으로부터 아무런 교육을 받지 못하였음에 비해 부처님은 세상의 모든 교육을 받았다는 점, 셋째는 예수의 관심사가 하나님인 신(神)에 둔 것에 비해 부처님의 관심사는 중생의 고통(苦)에 둔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예수는 왕족이나 귀족으로 태어나지 않고 평민으로 왔을까? 그것은 하늘의 영화조차 뒤로 하고 지상으로 내려온 신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영화를 일부러 포기한 예수로서는 아예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지니고 오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이는 예수가 세상의 학문을 익히지 않은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들로부터 교육을 받는다는 일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예수의 관심사가 신이었다는 것도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오로지 신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신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했다.

 

▲이제열 법사

그러나 부처님 경우는 다르다. 만약 부처님이 왕족을 택하여 오지 않았다면 자신의 뜻을 펼치기가 곤란했을 것이다. 신분이 왕자였기 때문에 수많은 왕들과 귀족들이 귀의를 했고 이로 인해 교단의 유지와 발전이 가능했다. 또한 부처님은 신이 아니므로 세상에 대해 배워야 했다. 세상은 배움을 통해 알아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끝으로 부처님의 관심사는 생명들이었다. 오로지 생명들 속에서 모든 문제와 그에 대한 답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열 법림법회 법사 yoomalee@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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