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반야심경 염송
10. 반야심경 염송
  • 법보신문
  • 승인 2013.03.18 17: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중단 반야심경 염송은
호법신 격을 낮추는 일
3정례 예경 환원 바람직

 

오늘날 봉행되는 법회의식은 그 기원이 ‘석문의범’의 ‘강연의식’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보이는데, 반야심경은 법회 때 삼귀의 찬불가에 이어 독송되고 있다. 강연의식 목차를 보면 삼귀의, 반야심경 이후 찬불게(가), 입정 강화(설법), 사홍서원, 산회가의 순서가 제시되었다. 현재 법회와 다른 점은 찬불가와 반야심경의 순서가 바뀐 정도이다.

 

현 법회에서 반야심경이 염송되는 위치를 일반적 의궤로 비춰볼 때 신묘장구다라니 정도를 염송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석문의범’의 ‘설교의식’에는 삼정례, 찬불게, 송주(誦呪)가 이어지는데, 이때 주(呪)가 신묘장구다라니이다. 곧 천수다라니 염송할 곳에 반야심경을 읽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조석 신중단 예경 때 예경은 하지 않고 반야심경을 염송한다. 이때 염송은 대체로 승보의 일원인 스님이 하위의 신중에게 법문을 들려주는 ‘법시’(法施)의 의미로 봉행되고 있다고 보인다. 신중단의 반야심경 염송과 법회의식에서 반야심경 봉송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자.


첫째, 제위신중께 법공양이나 법시로 염송하는 것이라면 제위신중이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신중불공 헌좌게 ‘원멸진로망상심(願滅塵勞妄想心)’, ‘속원해탈보리과(速圓解脫菩提果)’는 축원인데 신중께 그리하시라는 인식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39위 신중의 상단은 제석천왕과 4천왕들이고 하단은 불법을 옹호하고자 서원한 신중이다. 109위 신중의 상단은 석가화현 예적금강성자이다. 다시 말해 불격(佛格)이다. 신중청 청사에는 ‘예적금강 천부공계 산하지기’라 하여 불격(佛格)까지 거론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분들이 과연 미계(迷界)에 있는 우리들의 법시를 받아야 하는 존재인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둘째, 회향(廻向)의 봉송(奉送)과 안위(安位: 신위에 안치함)의 보내는 의미를 담고 있는 염송으로 이해할 수 있다. 수륙재의 경우 재가 열리게 되었다는 것을 알리러 떠난 사직사자를 봉송할 때와 공양을 위해 자리에 앉도록 할 때 반야심경을 염송하고 있다. 또 반야심경으로 법회를 회향하는 경우도, 법자리가 파하였으니 이제 각자 자리로 돌아가라는 진언으로 심경이 염송됐다고 볼 수 있다.


사자를 심부름 보내는 진언으로서, 또  공양의 자리로 옮겨가라는 의미로 반야주가 쓰이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심경 염송은 법시(法施)나 법공양(法供養)이라 하기보다는 봉송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때문에 중단 예경은 사직사자(四直使者)를 청해 사부로 보내는 경우가 아니므로 신중단에 반야심경 한 편을 염송하는 것은 썩 잘 어울리는 행법이라 할 수 없다.


또 반야심경을 다 염송할 수 없을 때 반야주 혹은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으로 미계에서 오계의 피안으로 떠나겠다는 염원과 소청 불보살님을 봉송하는 의궤를 동시에 거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성운 강사
소청만 있고 봉송이 없는 우리의 불공의식에, 사바교주 석가모니불을 3칭(稱)하는 회향가지 앞에서 ‘마하반야바라밀’을 세 편(遍) 칭하는 것은 봉송의식을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여 104위의 신중단 예경과 39위 신중단 예경을 구별하여 3정례 예경으로 환원돼야 하며 중단 반야심경 염송은 재고돼야 할 것이다.

 

이성운 동국대 강사 woochun1@daum.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