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중생심과 부처
5. 중생심과 부처
  • 김형효 교수
  • 승인 2013.03.19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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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마음 극복 아닌
마음 놓아 버림이 부처
굳어 있는 엄숙미 보다
자연스러움이 더 중요


부처님 가르침의 가장 수승한 대목은 신(神)에의 신앙을 배제한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불교는 애시 당초부터 무신론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기 시작하면 불교의 의미가 너무 논리적으로 경직되어 버리기에 세상사를 읽는 사연에서 부드러운 맛이 없어진다. 신에의 신앙은 기독교에서부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의 고대 종교 못지 않게 인도의 고대 종교도 모두 신을 믿는 신앙적인 요소로부터 출발하여 세상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신앙의 측면을 무시하고 세상사를 오로지 법의 차원에서 성찰하는 것은 불교의 가르침이 처음이라 하겠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허약한 인간이 강력한 초월적인 신의 의지에 의존하려는 인간의 오랜 인습적 사고방식을 단절시키고, 인간 위에 다른 존재자가 없고 인간만이 자기 존재의 최고 주인이라는 자각이 중요함을 역설한 휴머니즘의 천명이라 볼 수 있다. 인본주의로서의 휴머니즘은 인간주의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신본주의에서는 신에의 신앙이 가장 중요하고 그 신앙이 열렬해서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그 신앙에 푹 잠기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만, 인본주의에서는 인간 이외에 더 높은 존재자를 상정해서 거기에 잠기기보다, 인간이 자기의 제한되고 경직된 껍질을 깨고 자신의 본디 모습인 부처를 드러내는 일이 진정한 휴머니즘이라 보았던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이중적인 것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그 이중성을 인간이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가 법의 핵심적 요소다. 예컨대 인간은 본디 부처이고 동시에 중생이다. 부처와 중생은 동시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중생이 없다면 부처도 성립하지 않는다. 중생이 곧 부처다. 중생으로서의 인간은 자신의 다른 측면에 부처로서의 인간을 머금고 있다. 그러므로 부처로서의 인간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엄청난 노력의 결과로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중생으로서의 인간이 갖고있는 중생의 얼굴을 한 번 행복하게 웃으면 바로 부처가 된다. 부처는 우리 중생이 천만번 돌파하기 힘든 지극히 어려운 경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중생의 마음을 한 번 돌리면 곧 바로 부처로 변해 있는 그런 중생심의 이중성에 불과한 것이겠다.


부처의 마음은 더럽고 정결하지 못한 중생의 마음을 극복한 성스러운 노력의 결과가 아니고, 그런 중생의 마음을 놓아 버리고 쉬어 있는 그 상태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노력해서 부처가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노력하는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굳어있고 엄숙해 있다. 부처님의 모습을 보라. 거기에는 굳어 있는 엄숙미가 없다. 어떤 결의가 거기에 보이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웃고 있을 뿐이다.


서산 마애불의 얼굴을 늘 기억하자. 그 마애불은 웃고 있는 둥근 동자상이 부처로 그려져 있다. 부처는 아기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지혜를 말한다. 보통 아기는 순진무구하지만, 불행이도 거기에는 지혜의 깊이가 없다. 나는 고전 음악의 지휘자인 독일의 카라얀을 매우 좋아 한다. 그는 지휘하러 온 외부의 객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그가 지휘하는 음악의 안에서부터 솟아난 사람처럼 지휘한다. 이것은 마치 한국의 마애불이 외부에서 누가 바윗돌에 새겨놓은 것처럼 여겨지지 않고 그 바윗돌이 오랜 세월동안 깊고 깊은 원력을 빌어서 스스로 부처의 형상으로 자신을 표현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과 유사하다.

 

▲김형효 교수

서산 마애불을 조각한 이의 마음은 부처를 엄숙하고 너무 거룩하게 표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처님의 마음을 경직되게 굳은 생각으로 보지 않았기에 부처님의 모습이 동자 상으로 그려져 있지 않았을까? 한국불교는 부처님을 너무 거룩하신 분으로 떠받들기보다 오히려 사랑스런 신생아나 손자처럼 즐겁게 안아서 하나가 되고 싶은 즐겁고 기쁜 마음과 다르지 않음을 일깨워주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kihyhy@nate.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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