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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먹에 우는 나무

봄이다.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한다는 절기 곡우(穀雨)도 그리 멀지 않았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전을 기다리며 어린 찻잎이 전해주는 푸릇한 향을 떠올리고 있을 시기다. 속 깊이 품었던 망울을 앞 다퉈 터칠 꽃들의 향연도 이제 곧 시작한다.


생동의 계절이 벌써 우리 앞에 다가 왔으니 길 떠날 채비를 서두르는 나그네들도 많을 것이다. 자연을 만끽하고자 하는 캠핑족도 이 봄을 간절하게 기다렸을 터.


우리나라 캠핑 인구는 벌써 100만 명을 넘어 섰다고 한다. 캠핑시장도 4000억 원 규모라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방송매체의 몇 개 프로그램 영향이 컸다는 분석도 있지만, 일상을 떠난 자연 속에서의 휴식을 갖고자 하는 열망에 기인했다고 봐야 한다.


이젠, 캠퍼들의 일거수일투족도 캠핑문화라는 문화 범주 속에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그럴 만하다. 저녁 9시 이후면 바로 옆 사람과도 목소리를 최대한 낮춰 대화하고, 술에 취해 고성방가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녁 10시가 지나면 모닥불을 끄는 것은 물론 랜턴 조도를 낮춰 타인의 잠자리를 침해하지 않는다.


함부로 쓰레기 버린다는 건 옛말이다. 캠핑장 주변은 웬만한 도시 거리보다 깨끗하다. 물론 한여름 캠핑장에서 예외인 경우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단기간의 캠퍼 급증 현상에 비하면 이 분야의 문화는 나름대로 정도를 걷는 듯 해 보여 다행이다.


하지만 해먹에 몸살을 앓고 있는 나무의 울음은 100만 명 중 몇 명이 듣고 있는지 궁금하다.


해먹의 어원은 1700년대 스페인어인 하마카 또는 하막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카리브제도의 아이티 섬 원주민 타이노 부족의 언어에서 하마카가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뜻은 그물이다. 원주민들이 더위나 독충 등의 피해로부터 막고자 사용한 ‘그물’이 지금의 해먹인 셈이다. 이 해먹은 다양하게 사용된다.


누워서 책을 보거나 낮잠을 청하고 싶을 때는 물론이고, 하늘에 수놓인 별을 보고 싶을 때도 이 해먹은 유용하다. 누구보다 아이들이 좋아한다. 아이들에게 해먹이란 놀이 기구다. 그네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용 지지대를 이용해 해먹을 설치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캠핑장에 늘어 선 해먹 10개 중 혹 하나가 스탠드 해먹일 뿐, 대부분은 나무에 설치되어 있다. 해먹 고리를 걸거나 맬 때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헝겊조각 하나도 대지 않는다. 지상에서 약 1m30cm 높이 내외의 일(一)자형 나무 생채기는 해먹이 입힌 상처다. 껍질을 파고들어 깊숙이 파인 나무들도 즐비하다.


해먹과 텐트를 조합한 텐트사일(Tentsile)도 본격적으로 시판될 모양새다. 2인용에서 12인용 규모의 텐트사일을 외국의 한 업체가 선보였다고 하니 말이다. 레저용품에 관한한 빛의 속도로 수입해 사용하는 추세를 감안할 때 텐트사일 등장도 머지않아 보인다.


공중에 매달려 있어 숲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게 업체의 설명이지만 이 또한 헝겊 조각 하나 대지 않고 사용한다면 나무는 울음을 넘어 울분을 토할 것이다. 이쯤 되면 나무에 직접 설치하는 해먹은 규제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올 법하다.
암벽이나 급경사 등반을 즐겨 하는 산악인 중에는 밧줄과 함께 보호대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용도는 간단하다. 나무에 이 보호대를 두른 후 그 위에 밧줄을 거는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지켜 주는 나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그들은 말한다. 나무 한 그루의 생명도 존엄하게 생각하는 그들에게서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캠핑 문화를 일구는 사람은 캠퍼 스스로다. 자신에게 휴식을 선사하는 나무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보이려는 배려심이 캠핑문화를 좀 더 고양시킬 것이다. 누구보다 우리 불자가 솔선수범하기를 기대한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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