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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동산

기자명 법보신문

신화·전설 걷어낸 자리…아기부처 미소 생생한 인류의 고향

웅장한 나무엔 오색깃발
전 세계 수행자들의 성지


1896년 독일학자 석주 발견
아기부처 탄생 전설서 역사로


후대인들 탄생관련 기록 속
무수한 이적은 찬탄과 경배


생명에 헌정된 진리의 가르침
행간 읽는 힘은 마음과 지혜

 

 

▲룸비니동산엔 오색의 깃발이 꽃비처럼 하늘을 장엄하고 있다. 그 아래 하얗게 빛나고 있는 건물이 아기부처님의 어머니 마야부인을 기념하는 마야데비사다.

 


불교 언론에 종사하는 기자들 뿐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교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 아니 출·재가를 가리지 않고 삼귀의와 사홍서원을 받드는 불자라면 일 년 중 가장 바쁜, 그러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날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부처님오신날이다. 부처님오신날은 출가, 열반, 성도일과 함께 불교계의 4대 명절이다. 그 가운데에도 부처님오신날은 단연 으뜸이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써 불교는 시작될 수 있었다. 수 없이 오랜 세월 쌓아온 수행과 자비행의 결실, 그리고 그 혜택이 세상 모든 생명들에게 회향되기 위한 첫 걸음.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날을 모든 불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축하하며 한 바탕 잔치를 벌인다. 한반도에서 연등을 내걸고 부처님오신날을 축하하는 연등회가 시작된 것이 신라시대부터니 가장 오래된 민족축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요즘 사람들에겐 붉은 글씨로 표시되는 ‘휴일’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는 없는 축하의 이유이기도 하지만.


어찌되었든 불자이거나 아니면 굳이 불자가 아니라도 ‘아기부처님이 인도의 룸비니동산에서 4월 초파일에 태어나셨다’는 명제를 모르는 이는 아마도 대한민국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단순해 보이는 명제는 사실 많은 오류를 안고 있었다. 우선 룸비니동산은 현재 인도가 아니라 네팔에 속해있다. 덕분에 인도-네팔 국경을 넘어 룸비니동산까지 오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서쪽으로 기우뚱 넘어간 해가 간신히 서쪽 언덕 마루에 걸터앉을 때 즈음이 되어서야 룸비니동산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디에도 동산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산은 야트막한 언덕이다. 하지만 룸비니동산은 언덕이라기보다는 잘 가꾸어진 평지, 정원에 더 가까워 보인다. 입구를 통과해 잠시 걸어 ‘동산’으로 가는 길은 더욱 그렇다.


“겨울이 가고 봄기운이 완연한 동산에는 온갖 풀과 나무들이 꽃을 피워 향기를 터트렸고, 샘과 연못은 거울처럼 맑았다.”


아직 완연한 봄기운이 부족해서인지 활짝 핀 꽃 대신 오색의 기도깃발들이 룸비니 하늘에 꽃잎처럼 나부끼고 있다. 우람한 나무에서 뻗어 나온 무성한 가지들이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나무 아래에는 여러 나라의 가사를 수한, 그래서 같은 듯 조금씩 다른 모습의 수행자들과 재가불자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들어있다.


거울처럼 맑다는 연못, 마야부인이 아기부처님을 낳은 후 목욕을 했다는 연못은 네모반듯하게 정비돼 있어 2500여 년 전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그 옆으로 높이 6.5m의 아쇼카왕 석주가 우뚝 서 있다. 상륜부를 장식했을 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석주 표면에는 역사적인 기록이 남아있다.


‘신의 축복을 받는 피야디사왕(아쇼카왕)은 즉위 20년에 몸소 이곳에 와서 예배하였다. 이곳은 석가모니가 탄생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세존이 탄생한 곳임을 알리기 위해, 왕은 석조의 부조와 석주를 세우도록 명하였다. 왕은 룸비니 마을의 세금을 감하여 수확의 8분의1만 내게 하였다.’


1896년 독일의 고고학자 뷜러 박사에 의해 발견된 이 석주와 명문은 그리 길지 않지만 그 의미는 상상을 초월했다. 불교의 교조인 싯다르타의 탄생, 부처님의 강생이 역사적 사건임을 명백히 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학계의 일부, 특히 서양에서는 부처님의 탄생을 그저 종교 신화의 한 대목이나 전설 즈음으로 여겼다. 동양종교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도 있었지만 2000여 년 넘는 세월 동안 부처님의 탄생 위에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치장이 두껍게 쌓인 것도 적지 않은 원인이었다.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난 아기는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사자처럼 당당하게 말하였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내 오직 존귀하니 온통 괴로움에 휩싸인 삼계, 내 마땅히 안온하게 하리라. 아기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수레바퀴만큼 큰 연꽃이 땅에서 솟아올라 아기 발을 받들었으며, 천지가 진동하고 삼천대천세계가 밝게 빛났다. 사방에서 몰려온 천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홉 마리의 용이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을 뿌려 아기를 목욕시켰으며, 하늘에서는 꽃비가 쏟아졌다.…’


경전과 기록마다 조금씩 표현은 다르지만 아기부처님의 탄생은 환희로운 이적과 범상치 않은 예언으로 가득하다. 그러니 싯다르타의 탄생을 그저 신화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쇼카왕 석주의 발견으로 싯다르타, 아기부처님의 탄생은 2500여 년 전 이곳 룸비니에서 펼쳐졌던 역사의 한 장면임이 명확해 졌으며 불교는 신의 가르침이라는 허울이나 전설의 교훈이라는 막연함을 벗고 인간의 종교, 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분의 가르침이라는 명백한 위상을 세울 수 있게 된 셈이다.


아쇼카왕의 석주 옆에는 싯다르타의 어머니 마야부인을 기념하는 순백색의 마야데비사가 있다. 내부에는 아름다운 부조, 그리고 아기부처님이 세상에 첫 발을 딛을 때 남긴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는 바위가 유리 보호막으로 덮여 보존돼 있다. 하지만 목을 빼고 한참을 들여다보아도 고개만 갸우뚱할 뿐 발자국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마야데비사 내부에서는 일체의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무우수가지를 붙잡고 서있는 마야부인, 그 오른쪽 옆구리를 통해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기부처님과 이들을 둘러싼 시녀 혹은 천신들이 부조돼 있는 석판이 있지만 이 또한 심하게 훼손된 상태다.

 

 

▲마야데비사 옆에 서 있는 아쇼카석주.

 


부처님은 전생에 수메다라는 바라문으로 살고 있었다. 보시로 선행을 쌓고 열반을 구하기 위해 수행하던 수메다는 어느 날 디빵까라부처님으로부터 먼 훗날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는다. 물론 4아승지 10만 겁이라는 헤아릴 수 없이 먼 미래 생의 일이다. 하지만 수메다(선혜 보살)는 환희에 넘쳐 노래했다.


“허공에 던져진 흙덩이가 땅으로 떨어지듯, 나는 반드시 부처님이 되리라. 짙은 어둠이 끝나면 태양이 솟아오르듯, 나는 반드시 부처님이 되리라. 깊은 잠에서 깨어난 사자가 포효하듯, 나는 반드시 부처님이 되리라. 짊어진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듯, 나는 반드시 부처님이 되리라.”


수메다의 환희와 결심은 그 이후로 수많은 생을 거듭하며 차곡차곡, 그리고 견고하게 실천되었다. 그 반복되는 생의 이야기들이 자타카, 또는 한역 경전 본생담(本生談)으로 전하고 있다. 수메다가 신이었다면, 혹은 신의 아들이나 그의 친척, 또는 그 무엇이든 나고 죽는 인간과 다른 존재였다면 이러한 결심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생의 이야기가 탄생하지도, 그렇게 많은 생이 이어지지도, 그 오랜 수행과 자비행이 필요치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 속에는 동화나 소설, 전설이나 신화 같은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은 인간, 원력을 갖고 실천하는 인간의 삶이다. 부처님은 그 스스로 끝없는 수행과 자비행을 통해 자신의 원력, 부처님이 되리라는 결심을 실천하고 이룩했다. 그러기에 부처님은 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완전한 지혜와 행동을 갖춘, 훌륭한 일을 완성한,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 되신, 세상에서 가장 높은 스승이시며 모든 인류를 향해, 그리고 세상의 모든 생명들에게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대도 나와 같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신이 아닌 인간의 탄생. 싯다르타의 탄생에 대한 모든 찬탄은 신이 아닌 인간의 탄생에 헌정된 것이다. 한 사람의 탄생은 한 세계, 한 우주의 탄생이다. 또 한분 부처님의 탄생이고 미래에 새로운 부처님의 탄생이다. 누구의 탄생이든 찬탄하고 장엄할 만하다. 싯다르타의 탄생은 우리의 생명, 삶이 그와 같이 소중한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룸비니동산은 싯다르타, 인간으로 태어나 모든 인류와 생명의 스승이 되신 분의 고향이다. 두껍게 내려앉은 신화와 전설의 덧칠, 후대인들의 지극한 찬탄과 경배의 장엄을 조금만 걷어내면 인간 붓다의 선명한 미소를 만날 수 있다. 룸비니동산의 하늘 아래 펄럭이는 깃발조차 먼 훗날 꽃비로 기록될지 모른다. 룸비니동산에선 사시사철 오색의 꽃비가 내리고 있다고 말이다. 그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는 힘은 지식이 아닌 지혜와 마음이다.

 

 

▲룸비니동산엔 순례자들이 공양한 등불이 밤낮으로 불을 밝히고 있다.

 


바라문선인들로부터 32가지 상호를 갖춘 전륜성왕이 될 아기가 태어났다는 설명을 들은 숫도다나왕은 자기도 모르게 아기의 두 발에 예배했다. ‘내가 무슨 복을 지었기에 이리도 훌륭한 아들을 얻었을까.’


세상의 모든 부모는 아기의 발아래 예배한다. 그것은 싯다르타, 아기부처를 얻은 숫도다나왕만의 일이 아니다. 아름답고 귀한 아기가 내게 온 것을 감사하며 그 아기의 아비 어미가 되기에 자신이 부족하지 않은가 되돌아본다. 숫도다나왕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부모는 그러기에 아이 앞에서 작고 겸손해 진다. 세상에 태어난 부처님, 미래에 오실 부처님과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아기부처님이 태어나던 순간 오색의 꽃비가 내리던 경험을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기억하고 있다. 천인들의 축복이 쏟아지는 환희를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가슴에 품고 있다.


부처님의 고향, 룸비니동산은 그래서 모든 인류의 고향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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