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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심사정, ‘호취박토도’/전 유숙, ‘호취간작도’

기자명 법보신문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무침히 살육하는 참혹한 세상

 

▲심사정, <호취박토도>, 종이에 연한 색, 115.1×53.6cm, 국립중앙박물관.

 

 

살생본능이 뼈에까지 사무쳐


순식간이었다. 촤악, 소리가 남과 동시에 매의 발톱이 토끼 몸을 낚아챈 것은. 위험을 감지한 토끼가 도망치기 위해 다리를 뻗었을 때는 이미 매의 발톱이 몸 속 깊이 박힌 뒤였다. 놀란 토끼는 제대로 저항 한 번 못하고 속수무책 생명줄을 놓았다. 매는 결코 먹잇감을 놓치는 법이 없다. 하늘을 날다 먹잇감을 발견하면 맹렬한 속도로 하강하여 덮친다. 사로잡힌 토끼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헐떡거린다. 토끼가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리는 매의 눈초리가 매섭다. 토끼는 심장을 파고드는 매의 발톱 때문이 아니라 눈빛 때문에 몸이 굳어 버렸다. 먹잇감의 버둥거림이 서서히 잦아든다. 간헐적으로 떨리던 미세한 움직임마저 완전히 정지하고 나서야 매는 비로소 발톱의 힘을 풀었다.
 

 

 


살육의 현장에서 가장 놀란 것은 까치다. 소나무 위에서 놀다가 바닥에 보이는 열매를 주우러 날아가려던 찰나 하늘에서 뭔가 쿵, 하고 떨어졌다. 이크, 죽는구나, 싶었는데 토끼가 당했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까치는 잽싸게 날아올라 자리를 피한다. 피하면서도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해 매의 곁을 빙빙 돈다. 그 모습을 본 암놈이 빨리 도망치라고 심하게 짖어댄다. 곁에 가서 숫놈을 데려오고 싶지만 조심성 많은 암놈은 쉽게 나뭇가지를 떠나지 못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풀숲에서 먹이를 주워 먹고 있던 장끼와 까투리는 하던 동작을 계속한다. 장끼보다 조금 예민한 까투리가 무심하게 고개를 돌려 매가 사냥하는 모습을 힐끗거렸을 뿐이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에 비명 소리가 묻혀 버릴 수도 있다. 침묵 속에 저질러진 치밀한 때문에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다. 토끼가 사투를 벌이는 바로 현장 곁에서 꿩은 한가롭게 먹이를 주워 먹는다. 매는 한 번으로 사냥을 끝내지 않는다. 다음은 꿩의 차례다. 죽음이 임박했는데 꿩은 배를 채우기에 급급하다. 지금 당장 자신에게 생긴 일이 아니라면 상관없다. 먹고 사는 것의 처절함이 이와 같다.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사는 어리석음이 우리 모습 같다.

 

 

▲임량, <추응도>, 명, 비단에 연한 색, 136.8×74.8cm. 대북고궁박물원.

 


 ‘호취박토도(豪鷲搏兎圖:사나운 매가 토끼를 잡다)’는 심사정(沈師正:1707-1769)이 62세 때 그린 작품이다. 계곡 위에 ‘무자년 여름에 임량을 방하여 그린다(戊子夏倣寫林良)’라는 제발(題跋)을 통해 알 수 있다. 무자년은 1768년으로 심사정이 죽기 1년 전이다. 임량(林良:약1416-1480)은 명(明)대 전반기에 활동한 화원(畵院) 화가다. 호방하고 사의적(寫意的)인 수묵화조화(水墨花鳥畵)를 남겼다. 임량은 독수리와 매를 잘 그렸다. 심사정의 ‘호응박토도’가 참고한 그림이 무엇이었는 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임량의 ‘추응도(秋鷹圖)’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호응박토도’에 보이는 부벽준(斧劈?:도끼로 나무를 찍어낸 자국과 같은 바위 표면의 질감을 나타내는 필선)의 바위처리나 거친 필치의 경물 묘사가 임량의 화풍을 연상시킨다.


두 작가 모두 매가 먹이를 쫓는 모습을 그렸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임량은 진한 먹을 선호했다. 몰골법(沒骨法:윤곽선없이 채색만으로 사물의 형태를 묘사하는 기법)으로 그린 것도 특징이다. 색이 강렬한 만큼 긴장감도 강하다. 반면 심사정의 그림은 건조하다. 적절하게 농담을 조절해서 그린 소나무. 흙인 지 풀인 지 분간하기 힘든 국화. 잡풀까지도 잊지 않고 배경으로 그려 넣은 섬세함이 임량과 구분되는 심사정의 장점이다. 색이 약한 만큼 강렬함도 약하다. 심사정이 펼쳐놓은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한가롭다.


그래서 더 잔인하다. 마치 이웃집 아저씨라고 믿었던 사람이 갑자기 살인마로 돌변하는 것처럼 예상치 못한 반전을 보는 기분이다. 심사정이 완성한 평이한 붓질 속 평화로움이 꼭 그렇다. 짐작하지 못한 죽음은, 지속된 평온이 평범하면 평범할수록 더욱 잔인하다. 참살은 언제나 평화 바로 곁에서 발생한다. 참살 곁에서 평화는 눈 뜬 장님처럼 판단력을 잃는다.


복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맹감나무 열매와 꿩의 눈 주위에 붉은색을 칠했다. 채색이 들어가자 단색조의 화면에 생기가 돈다. 물론 그 생기는 생명을 살리는 생기가 아니라 피를 부르는  기운이다. 매의 날카로운 부리 밑에 그려 넣은 붉은 열매도 불길하다. 마치 매의 입에서 떨어진 핏방울 같다. 매의 뒤에 열린 열매도 마찬가지다. 토끼 몸이 매의 날카로운 부리에 찢기고 떨어지면 사방으로 피가 튈 것이다. 잠시 후에 벌어질 살육의 현장을 예시한다. 하나의 그림 속에 죽음과 호기심과 무신경이 공존한다. 꼭 우리가 사는 세상 같다.  

 

 

▲전 유숙, <호취간작>, 비단에 연한 색, 87.4×20.7cm, 국립중앙박물관.

 


살생본능이 뼈에까지 사무쳐


심사정의 ‘호취박토도’에 죽음의 순간이 담겨있다면 유숙(劉淑:1827-1873)의 ‘호취간작도(豪鷲看雀圖:사나운 매가 참새를 보다)’에는 미래의 죽음의 암시돼 있다. ‘호취박토도’가 읽을거리가 풍부한 것에 반해 ‘호취간작도’의 구도는 간단하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나뭇가지에 앉은 매가 참새를 내려다보는 구도가 전부다. 간단하다.
간단한 구도에 노리는 자와 도망가는 자의 긴박감이 절묘하게 배합되어 있다. 삶과 죽음만큼 절실한 문제가 있을까. 장소도 시간도 죽음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전부 생략했다. 오직 응시와 탈출만이 있을 뿐이다. 유숙은 나뭇가지를 휘감고 있는 덩굴을 참새 꽁지까지 뻗치게 그림으로써 참새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것 같은 효과를 노렸다. 동시에 덩굴에 의해 참새가 묶인 듯한 인상을 줌으로써 아무리 급하게 날아가 봤자 결국 매의 밥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현장에서 직접 보는 죽음보다 상상에서 오는 죽음의 공포가 더 큰 법이다. 지금 참새는 살아 있지만 머지않아 죽을 것이다. 어떻게 죽을까. 참새는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의 상상력 여하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죽을 것이다. 일순간 고통 없이 죽을 수도 있고 몸이 조각조각 찢겨질 때까지 퍼덕거리다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다. 작가가 차마 그리지 못한 뒷이야기는 감상자의 상상 속에서 완성된다. 유숙의 화면이 직접적인 죽음이 없다 해서 덜 잔인한 것이 아니다. 유숙의 작화(作畵) 태도는 자기 손에 피 묻히지 않고 살인하는 킬러의 노련함과 닮았다.
 

 

 


‘호취간작도’는 몇 가지 측면에서 김홍도(金弘道:1745-?)의 화조화를 보는 듯하다. 참새를 노려보는 매의 생생한 표정과 먹의 농담을 능숙하게 풀어내는 솜씨가 김홍도의 특징이다. 대각선으로 배치된 나무 위에서 매가 먹잇감을 내려다보는 구도는 후배인 장승업(張承業:1843-1897)의 개성이 느껴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호취간작도’는 유숙의 작품이라 단정 짓지 않고 그 앞에 전(傳)을 붙였다. ‘유숙의 작품으로 전해진다’는 뜻이다. 제시(題詩)아래 혜산(蕙山)이라는 유숙의 호가 적혀 있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유숙은 도화서 화원 출신으로 정확하고 사실적인 필력을 인정받아 철종어진(哲宗御眞)과 고종(高宗御眞) 제작에 참여했다. 

 

매의 눈빛이 참새를 향하는 그림 중앙에는 다음과 같은 제시가 적혀 있다.

 

“하늘도 차가운 세모에 뛰어난 재주 보여줘
 생각과 표정으로 털이 치솟는데
 영특한 생각은 뼈에까지 사무친 듯” 
(天寒歲暮 孰爲俊才 神彩揚毛 英思入骨)

 

세모에 그린 그림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세화(歲畵)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화는 새 해를 기념하기 위한 선물로 주고받은 그림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만큼 길상(吉祥)적이고 감계(鑑戒)적인 내용과 더불어 악귀나 재앙을 쫓아내는 벽사(?邪)적인 내용도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매는 벽사적인 의미의 세화로 가장 인기 있는 새였다. 특히 삼재(三災)가 든 사람이 있는 집에서는 설날에 매 그림을 문설주에 붙여 놓았다. 삼재는 수재(水災), 화재(火災), 풍재(風災)를 합한 단어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재난을 상징한다. 매가 그만큼 용맹스럽고 공격적인 맹금류이기 때문에 삼재의 해결사로 발탁되었을 것이다. 주전론자(主戰論者)를 ‘매파’라 하는 것만 봐도 매의 이미지에 깃들인 강한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매는 먹잇감의 숨통이 끊어진 후에야 고기를 뜯는 습성이 있다. 이 습성을 이용해 사람들은 매가 사냥한 꿩이나 토끼를 빼앗는다. 닭고기 등을 준비해 매를 유인한 뒤 매가 고기를 먹을 때 꿩과 바꿔치기 하는 것이다. 남의 고생을 가로 챈 나쁜 짓이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매를 길들여 꿩이나 토끼를 잡는 매사냥도 사람들이 즐겼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때 응방(鷹坊)이라는 부서가 있었다. 사냥에 쓸 매를 기르던 곳이다. 사람이 기껏 고생해봤자 꿩 한 마리 잡기 힘든 반면 매는 한나절 사냥으로 6-7마리의 꿩을 잡았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속담은 매에게도 해당된다. 아니, 사람에게도 해당된다.

 

싯타르타가 본 살육의 참상


싯타르타가 소년이었을 때의 일이다. 어느 해 봄날, 슛도다나왕은 신하들과 함께 농경제에 참석했다. 석가족이 세운 카빌라바스투는 지금의 네팔 남부 타라이에 세워졌는데 예나 지금이나 벼농사가 주업이다. 농사는 농경민족에게 매우 중요한 생활 기반이다. 왕이 농경제에 참석해 경작을 시작하면 한 해 농사가 시작된다. 농경제에는 나중에 왕이 될 태자 싯타르타도 동행했다.


드디어 의식이 시작됐다. 농경제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자 농부들이 가래로 땅을 파헤쳤다. 한낮의 뙤약볕을 받으며 땅을 파는 농부들이 이내 흙과 땀으로 뒤범벅이 됐다. 싯타르타는 비지땀을 흘리는 농부들이 측은했다. 사람으로 태어나 목숨을 연명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노동이 필요한 지 절감했다.


‘백성들이 힘들게 사는 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가래질한 땅을 보고 있던 태자는 깜짝 놀랐다. 사방에서 날아 온 새들이 파헤쳐진 흙 속에서 꿈틀거리는 벌레를 쪼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들은 가래에 찍힐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목숨을 걸고 다른 목숨을 잡아먹었다. 싯타르타는 심하게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산 목숨을 잡아먹어야 하는 역설.


싯타르타 태자는 괴로움으로 직조된 삶의 조건을 목격하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태자는 오랫동안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약육강식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관조했다. 해 그림자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들이 찾으러 올 때까지 태자는 꿈쩍도 하지 않고 깊은 명상에 빠졌다. 태자 위의 나무도 꿈쩍하지 않고 서서 햇볕을 가려 주었다. 그 거룩한 모습을 보고 슛도다나왕과 신하들이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희생양이 필요한 사회


토끼와 참새는 희생양이다. 희생양이 짐승의 세계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도 오랜 세월동안 희생양을 필요로 했다. 한 사회에 분쟁이 있을 때 그 분쟁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희생양을 바치는 희생제의가 행해졌다. 이런 현상을 두고 현대 철학자 르네 지라르(Rene Girard:1923- )는 ‘폭력과 성스러움’에서 이렇게 정의한다. ‘전체 집단에 의해 행해지는 희생제의는 공동체 전체를 그들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며, 폭력의 방향을 공동체 전체로부터 돌려서 외부의 희생물에게로 향하게 한다는 말이다. 희생제의는 도처에 퍼져 있는 분쟁의 씨앗들을 희생물에게로 집중시키고, 분쟁의 씨앗에다 부분적인 만족감을 주어서 방향을 딴 데로 돌려버린다.’
르네 지라르의 이론에 따르면 토끼와 참새는 한 집단에 내재되어 있는 불안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희생양이다. 토끼와 참새가 죽어야 할 정도로 큰 죄를 지었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죄가 없다면 날조해서라도 덮어씌우면 된다.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순한 자를 색출해야 한다. 희생제의를 통해 공동체 전체가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면 희생양은 희생양으로써 희생될 가치가 충분하다. 공동체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일수록, 독재자가 집권하는 국가일수록 희생양으로 삼을 더욱 많은 불순분자가 필요하다.


희생양을 필요로 한 역사는 의외로 많다. 멀리는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에서 가깝게는 관동대지진까지 모두 내부의 불평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희생양을 제물로 바쳤다. 마녀사냥에서 죽은 여자들 대부분은 마녀가 어떻게 생긴 지도 모르는 평범한 이웃이었다. 14세기 유럽에서 페스트가 창궐하자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루머를 퍼뜨려 유대인을 학살했다. 우물에 독을 탄 이야기는 관동대지진 때도 똑같이 적용되어 수많은 조선인이 학살됐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을 무력으로 통일한 후 각 지역의 다이묘와 무사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조선을 침공했다. 조선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 것이다. 모두 사회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희생양을 만든 사례다. 희생양을 찾기 위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바로 지금 우리 앞에서도 찾을 수 있다. 북한이다. 핵실험을 강행하면서까지 연일 한반도를 초긴장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인민들의 시선을 외부로 돌려야 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 만큼 절박한 상황한 상황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싯타르타가 생존했을 당시부터 25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람이 사는 조건은 전혀 변한 것이 없다.

 

심사정이나 유숙이 매를 그린 목적은 매의 용맹성과 탁월한 사냥 능력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토끼나 참새 같은 희생양을 동정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매의 발톱에 찍힌 토끼가 어떻게든지 살아나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매의 위용은 더 높아진다.

 

▲조정육

사람들은 희생당한 토끼나 참새를 측은해하기보다는 매의 능력에 감탄한다. 흔히 가진 자의 입장에 서면 반대편의 입장에 있는 사람의 입장을 간과하기 쉽다. 그런데 싯타르타는 달랐다. 농부의 쟁기질에서 세상에 만연한 살육과 폭력을 읽었다. 가진 자가 없는 자를, 힘 센 자가 약한 자를 죽이고 빼앗는 비정함을 보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이 처참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싯타르타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 고민은 출가 후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싯타르타가 출가하게 된 계기를 찾아보면 이렇게 뿌리가 깊다.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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