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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수 무한하기에 수행의 길도 무한하다

기자명 법보신문

계룡산 무상사 국제선원 조실 대봉스님

삶을 바른 길로 이끄는 것이

모든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

수행의 참뜻 보이지 못하면

젊은 세대 불교서 멀어질 것

 

수행 방법에 대한 집착보다

옳은 방향을 찾는 것이 중요

 

 

▲대봉 스님

 

 

여러분 다들 극장에서 영화 보신 적 있으시죠. 극장에서 스크린을 보면 움직이는 이미지가 계속 이어집니다. 그런데 필름을 영사기에서 빼서 보면 각각의 프레임들은 고정되고 고립돼 있습니다. 움직임도 전혀 없습니다. 영사기에서 나오는 빛이 밝으면 화면도 밝게 보이지만 영사기의 빛이 흐려지면 화면도 흐려집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금강경’에서는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설하셨습니다. 우리의 본성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사고가 만들어낸 생각입니다.

 

우리가 가진 오직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순간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 순간은 영화 필름의 움직이지 않는 프레임과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분명하다면 우리의 인생도 분명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흐릿하다면 우리의 인생도 흐릿합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이 명확하다면 모든 것을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원인과 결과도 분명하고, 인생의 방향도 분명하게 보입니다. 바로 이 순간을 얻는다면 우리의 참 자아를 얻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은 곧 우리가 명확히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느낄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늘은 파랗고 땅은 흙색입니다. 바람이 불고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진리는 어떤 이해, 사고, 의견, 말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삶이 갖는 올바른 진리란 무엇일까요. 선불교에서는 한 순간에 얻는다고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얻는다면 진리도 얻고 우리의 올바른 길도 얻기에 그저 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나무들이 새 잎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순간 나무의 올바른 길입니다.

 

불교에서 전해지는 가르침은 많지만 그 가장 기본은 선입니다. 바로 우리의 참 본성을 찾는 것입니다. 진리와 올바른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선불교가 아무리 발전을 해도 올바른 기능을 찾지 못한다면 선불교는 현재의 일상, 즉 현대 사회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더 이상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우리 모두 심각히 고민해야할 문제입니다.

 

이런 현상이 서구에서는 매우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서구인들은 인생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진리를 찾기도 하지만 매일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살아갈 것인가를 제시해 줄 무엇인가를 찾고 있습니다.

 

선은 우리의 일상과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명상은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조대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올바른 행동이야 말로 불도에 다다르는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길과 우리의 참 본성은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매일의 일상과 선이 분리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그 순간을 얻게 된다면 젊은 사람들도 우리를 보고 그 길을 믿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젊은 사람들도 수행을 원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 길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골프에서 홀인원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공을 세게 친다고 모두가 홀인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홀인원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감탄과 찬사를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처음부터 홀인원을 해야 한다는 기대를 갖는다면 누구도 수행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홀인원 같이 깨달음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깨달음의 올바른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30여년 쯤 전에 숭산 스님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계실 때 열심히 수행을 하던 한 미국인 여성 불자가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스님께 물었습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수행하는데 잘 되질 않습니다.” 그러자 숭산 스님께서는 “그대가 깨달음을 원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깨달음을 얻으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되물으셨습니다. 그 여자는 아무 대답도 못했습니다. 그녀는 깨달음의 올바른 진의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테크닉을 가져도 소용없습니다. 밥을 젓가락으로 먹든 숟가락으로 먹든 포크로 먹든 맨손으로 먹든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다 똑같습니다. 음식이 위 안으로 들어가는 데에는 어떤 테크닉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방향이 틀렸다면 어떤 테크닉을 써도 여전히 배가 고플 것입니다. 우리가 수행의 올바른 방향, 인간으로서의 올바른 방향을 모른다면 우리의 마음은 늘 배고플 것입니다. 아무리 말을 잘한다 해도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할 수가 없으니까요. 서울에 있는 사람이 대전으로 간다면 남쪽으로 가라 하겠지요. 하지만 부산에 있는 사람이 대전으로 간다면 북쪽으로 가라할 것입니다. 말은 다르지만 방향은 같습니다. 참선, 염불, 절 또는 가족을 돌보는 일이라도 방향만 옳다면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방향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설거지 할 때 어떻게 하나요. 저는 설거지 하면서 ‘인간은 왜 밥을 먹어야 하는 거야, 인간이 밥을 먹지 않으면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될 텐데’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또 ‘지금 나는 왜 절에 와서 설거지를 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길은 그냥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없고 나와 너, 나와 상황, 나와 우주가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갑자기 흐르는 물이 맑게 느껴지고 내가 누구인가가 명백해지기도 합니다. 그냥하면 됩니다.

 

염불을 하고 계시다면 염불하며 설거지하고, 관세음보살을 염송하신다면 관세음보살을 하면서 설거지하면 됩니다. 그러다보면 지혜가 나타나고, 인간의 바른 기능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나의 본성을 찾고 모든 중생을 돕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중생의 숫자가 한 없이 많고 우리는 이 모든 중생을 구하겠다고 서원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수행의 방향은 무한합니다. 우리가 거기에 도달할지 도달하지 못할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십시오. 그러면 나와 나의 방향은 하나가 됩니다. 그러면 인생 그 자체가 올바른 방향이 됩니다. 그저 따라가십시오. 중국의 대혜선사는 ‘바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바보 같은 생각, 모든 생각을 다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올바른 생각을 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만 버리면 길은 열립니다. 우리가 ‘길 없는 길’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

 

지금 우리가 바로 이 순간으로 돌아와 바로 이 순간을 이루게 된다면 많은 젊은 사람들이 선불교를 통해서 인생의 방향이 무엇인가를 얻게 될 뿐만 아니라 인생의 매 순간, 순간 어떻게 하면 바른길로 갈 수 있게 될 것인가를 알고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중생을 위한 위대한 인생의 길입니다. 성불하십시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장권 대전·충남지사장

 

이 법문은 조계종 덕숭총림 수덕사와 경허선사 열반 100주기 기념사업회가 4월17일 보원사지에서 봉행한 국제선수행 2차 대회 ‘길 없는 길’에서 설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대봉 스님

1950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5년간 병원에서 카운슬러로 근무했다. 1977년 숭산 스님을 처음 만난 후 미국 프로비던스 선센터에서 수행을 시작했다. 1992년 숭산 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1999년 숭산 스님의 법을 전해 받았다. 현재 무상사 조실로 주석하며 미국, 유럽, 아시아 지역에 선수행을 전하는데 진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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