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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원광사 주지 청안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마음 속 장애 하나 거두면 세상 고통도 하나 사라져

공안은 바이러스와 같아
처음엔 마음의 열병되지만
수행 지속하는 힘의 원천

 

포기하지 않고 정진하면
세상 비추는 거울 만들어
모든 중생 귀의처 될 것

 

 

▲청안 스님

 

 

여러 불자님들 앞에서 법문을 하게 돼 영광입니다. 이곳은 만공 스님께서 수행하신 곳입니다. 간월암은 참으로 아름답고 대단한 곳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는 이 자리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왜 이곳에 왔을까요. 만공 스님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만공 스님께서는 많은 공안을 남기셨습니다.


우선 화두와 공안의 차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화두는 하나의 질문입니다. 화두에는 사람도, 장소도, 사건도, 문제도,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습니다. 그런데 공안에는 사람, 장소, 문제, 과거, 현재, 미래가 다 있습니다.
우리가 화두를 잘 사용하게 되면 마음이 거울 같아집니다. 거울과 같은 명징함이 공안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안은 어렵습니다. 대답을 찾기도 힘듭니다. 공안을 풀기가 어려운 이유는 머리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질문을 생각을 통해 풀어나가려고 한다면 늘 좌절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공안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분법적인 사고로는 결코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공안을 통해 겪는 좌절, 모르겠다는 마음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우리를 직관의 상태로 돌아가게 합니다. 그것이 공안을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공안은 바이러스와 같습니다. 그것을 풀고야 말겠다는 마음의 열병에 걸리게 합니다. 그러한 과정의 수행을 통해 욕망이 사라지고 마음이 점점 맑아지면서 본질만 남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주 어려운 공안도 대답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공안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만공 스님이 하루는 다른 선사님에게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제가 물고기 꼬리를 하나 얻고 싶은데 괜찮겠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이것을 말의 뜻이 숨겨진 공안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직관이 발달돼 있다면 숨겨진 뜻을 밝혀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만공 스님이 이 편지에 답장을 쓰시기를 ‘물론 금붕어의 꼬리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먹을 수도 있겠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다시는 편지가 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깨달음을 얻게 되면 그것으로 무엇을 하실 것입니까. 많은 서구사람들에게 그 질문을 하면 “내가 아직 아무것도 얻지 못했는데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머리로 생각한 대답입니다. 우리의 큰 서원이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금붕어 꼬리를 갖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화두를 들고 수행을 시작하면 마음이 열립니다. 처음엔 많은 업이 튀어나옵니다. 처음 몇 달은 누구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만 수행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행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상한 것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가 더 큰 것을 위해 노력하다보면 행복은 일종의 부산물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흔들리지 않는다면 인생은 훨씬 더 균형 잡히고 조화롭게 될 것입니다.


공안은 선불교 그 자체입니다. 공안의 문에 들어서는 것은 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작은 바이러스가 처음에는 큰 병이 되지만 나중에는 큰 깨달음이 됩니다. 그런데 공안에 애착하게 되면 이 큰 병이 몇 생애동안 계속되기도 합니다. 물고기 꼬리와 마찬가지로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스님들께서는 ‘할’을 외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할은 그것을 듣는 짧은 순간만이라도 생각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합니다. 잠깐이라도 ‘모르는 마음’의 맛을 보는 것입니다. 구지 선사께서는 손가락 하나를 드셨고 임제 선사는 ‘할’을 외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념의 법을 전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면 안 됩니다. 공에 빠지게 됩니다. 공안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보살도, 부처도, 중생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구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보살의 길 뿐입니다.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은 보살계를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보살계를 받을 때 팔에 새긴 연비는 아주 작은 점이지만 우리의 마음에는 큰 흔적으로 남게 됩니다. 우리가 왜 수행을 하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공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 단계로 진실을 봐야 됩니다. 우리가 진실을 보게 되면 눈, 귀, 코, 입이 모두 깨끗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하늘은 푸르고, 바다는 맑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하늘이 파랗고 땅이 갈색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것을 보듯 스스로의 마음을 볼 수 있을까요. 볼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넉넉합니까. 맑은 마음의 공간이 없으면 진실을 볼 수가 없습니다. 망상 속에서 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하게 시작할 때 아주 쉽게 진실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진실을 본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능이 필요합니다. ‘물고기의 꼬리를 갖고 무엇을 할까’입니다. 깨끗해진 마음은 진실과 실체에 뿌리를 두어야합니다. 그래서 수행을 처음 시작할 때 아주 단순하고 쉬운 부분부터 시작해서 실체가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 다음에 진실이 옵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아주 분명해집니다. 그 후에 기능이 옵니다.


목마르면 차를 내오고,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줍니다. 모든 것이 단순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스스로를 돌아보십시오. 모든 것을 이분법적 사고로 봅니다. 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휘둘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배고프다는 사람에게 음식이 아닌 물을 주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을 믿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사고와 감정이 명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깨끗해지면 큰 믿음의 뿌리가 됩니다. 어떻게 해야 이것이 가능할까요. 바로 큰 질문입니다. 이미 여러분들은 알고 계신 ‘이 뭐꼬’입니다.


공안은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매우 좋은 도구이고 약이지만 그 자체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공안을 통한 수행을 계속하면 자아중심적인 버릇과 업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수행을 하려는 동기가 정직하고 진실돼야 합니다. 위대한 질문을 갖고, 위대한 믿음에 뿌리를 두고, 위대한 진실을 찾아서 수행을 하면 큰 용기가 생기게 됩니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죽기 때문입니다. 큰 용기를 갖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큰 두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야한다는 뜻입니다. 이 두려움이라는 것은 우리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마음속의 장애를 뜻합니다. 지금 이 생에서 장애의 하나 만이라도 제거한다면 다음 생에는 장애가 하나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고통이 덜하고 세상의 고통도 덜할 것입니다.


마음속에 큰 질문을 품으십시오. 어쩌면 그 질문을 다음 생에까지 갖고 가셔야 될지도 모릅니다. 바이러스가 여러분에게 침투하게 될 것입니다. 모르겠다는 병이 점점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멈추지 마십시오. 모르겠다는 그 마음이 큰 거울이 될 것입니다. 모든 중생이 그 거울에 귀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중생을 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장권 대전·충남지사장

 

이 법문은 조계종 덕숭총림 수덕사와 경허선사 열반 100주기 기념사업회가 국제선수행 2차 대회 ‘길 없는 길’ 행사의 일환으로 4월17일 간월암에서 봉행한 법회의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청안 스님
헝가리에서 태어나 1991년 숭산 스님을 만났다. 이듬해 출가, 한국의 화계사, 해인사, 계룡산 신원사에서 수행했다. 1999년 지도법사 인가를 받고, 2000년 고국으로 돌아가 부다페스트에 선원을 세우고 대중을 지도했다. 헝가리에 유럽 최초의 한국식 사찰 ‘원광사’를 창건, 유럽 각국에 불교와 선수행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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